본래 한창 잘 나가던 IT 기업이었다가 최근에 휘청이는 기업의 명단에 달갑지 않게도 HP 도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노키아와 소니가 같던 길을 다시 걷는 듯한 HP 의 행보는 사실 정확히 HP 가 무엇을 할 지 방향성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2 년 7월 31일 끝나는 HP 의 2012 년 3분기 실적은 매출액 297 억 달러에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 순손실 89 억 달러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비슷한 시기 닌텐도, 소니는 물론 노키아도 뛰어넘는 손실입니다. 한 분기에 무려 10조원에 가까운 손실이 난 것은 사실 2008 년 E.D.S 를 139 억 달러에 인수 후 그 가치를 감가 상각하고 이전에 진행 중이던 2만 7 천명 감원 계획으로 다시 10 억 달러가 추가 지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보정하면 3분기에 20 억 달러 순익을 거둔 셈이지만 그럼에도 매출액이 작년 동기 줄어들고 엄청난 인력을 구조 조정해야 하는 상황은 변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실적 악화는 바로 주가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2012 년 9월 10일 종가 기준으로 HP 의 주가는 17.43 달러이며 시가 총액은 347 억 달러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1년 반전으로 돌리면 HP 의 주가는 48 달러가 넘었습니다. 그러던 주가는 실적을 반영해서 이제 1/3 근접하는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지금 HP 의 시가 총액은 VMware 보다 작습니다. (VMware 는 400 억 달러)
( Source : 야후 파이낸스)
삼성이나 애플 같은 기업의 깜짝실적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HP 가 소리 소문 없이 매출까지 줄어든 상황에 놓인 것이 놀라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재난은 수년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일단 HP 는 주력 분야들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PC 부분에서 HP 는 1위 회사였지만 사실 2,3 위 회사와 특별히 차별화된 제품을 전혀 만들지 못했고 더 중요하게는 PC 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아포테커 전 CEO 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PC 부분에서 소비자들이 HP 제품을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HP 의 PC 부분은 점유율 하락의 쓴잔을 맞봐야 했습니다. 결국 후임 멕 휘트먼 CEO 가 이를 번복했지만 HP 의 실적은 그다지 신통하게 호전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HP 의 모바일 전략 역시 마찬가지인데 웹 OS 를 인수하고 스마트폰과 타블렛을 출시한 한 후 시장의 예상대로 실패만 했을 뿐 시장의 대세가 된 안드로이드를 수용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윈도우 모바일에서 저조한 성적을 냈지만 안드로이드 부분에서 순식간에 1위로 떠오른 삼성 전자와는 반대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버 제품군에 있어서도 오토노미 인수를 통해 솔루션 중심의 회사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지만 썬을 인수한 오라클이나 이미 소프트 - 하드웨어 융합을 완수한 IBM 에 비해 한참 뒤진 상황이라 경쟁자들을 물리칠 특별한 장점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HP 의 갈지자 행보는 1999 년 이후 7 차례 CEO 가 바뀌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애플은 2 명, IBM 은 2명, 오라클은 1 명, MS 는 2 명의 CEO 가 있었던 것에 비해 너무 잦은 수장 교체가 있었고 특히 전임 아포테커 CEO 는 올라가자 마자 내려와 HP 의 정책에 큰 혼동만 준 사례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지난 5월 27000 명 감원을 발표한 HP 는 다시 9월에 29000 명 감원을 발표했습니다. 이를 통해 2014 년까지 34 억 달러를 절감한다는 목표지만 과연 원가 절감을 못한 것이 HP 의 패인이었나를 분석하면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PC 사업의 1위 업체로써 정체상황에 이른 PC 시장을 어떻게 리드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인지, 프린터에만 주로 머무른 주변 기기 사장에서 HP 의 영향력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서버와 엔터프라이즈 제품 시장에서 HP 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 HP 의 모바일 전략은 어떤 것인지 확고한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직원들이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원을 감원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멕 휘트먼 CEO 의 비전과 전략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게 더 중대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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