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게임물 평가 계획 무엇이 문제인가?




 게임 셧다운제라고 알려진 청보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다룬바 있습니다. 흔히 선택적 셧다운제라고 불리는 게임 시간 선택제와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 과 게임 셧다운제로 불리는 청보법 개정안은 혼동되어 불리기는 하지만 주관 부서도 다르고 법률 근거도 다르다는 점은 설명드린바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161405737 참조)   


 하지만 이 법들의 한가지 공통 분모가 있다면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중독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단 게임법 자체는 성인까지 대상이 포함) 하지만 게임 셧다운제는 시작 되기도 전에 적지 않은 반발을 일으키면서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이 법이 해당 산업 종사자는 물론 정당한 여가 활용 및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 (헌법 10조) 으로써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은 물론 성인층에까지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 법 자체에는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지만 이 법을 시행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부서들 -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 가족부가 - 이 게임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규제하려 들고 있기 때문 입니다. 여성 가족부 (이하 여가부) 및 기타 게임 규제 쪽에 찬성하는 국회 의원, 재야 시민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게임 = 나쁜 것' 이라는 전제를 깔고 모든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주고 있습니다. 


 반면 과도한 게임 몰입 및 중독을 일으키는 일부 이용자에 대한 규제 및 치료는 필요하지만 게임은 악이 아니며 이를 즐기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측이 이에 맞서고 있어 근본적으로 쉽게 타협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후자는 게임 산업이 21 세의 큰 문화 사업이므로 규제를 하기 보다는 육성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게임 셧다운제 실행 후 실제 청소년의 수면 시간이 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 사실 심야 이용자 수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점으로 볼 때 처음부터 예상했듯이 별 효과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 기본적으로 게임을 규제하려드는 측은 결국 게임 셧다운제나 게임 시간 선택제가 목표가 아니라 게임 자체를 규제하고 특히 청소년이 게임을 못하도록 막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후속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 불 보듯 뻔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여가부가 지난 9월 11일 홈페이지를 통해 고시한 '청소년 게임 건전이용 제도 대상 게임물 평가계획' 때문에 새로운 평지 풍파가 일고 있습니다. 이 평가기준은 게임을 '강박적 상호 작용' '과도한 보상 구조' '우월감 경쟁심 유발' 등 가진 유해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대상도 PC 뿐 아니라 콘솔, 스마트 폰과 태블릿 게임까지 확장했고 이중 대표성 있는 게임 100 개를 선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습니다.    


    
(여가부가 밝힌 청소년 게임 건전이용 제도 대상 게임물 평가계획 중 평가표. 웬지 항목을 게임에서 공부나 회사로 바꿔도 괜찮을 듯 한 건 필자만의 생각인지.... ) 


 이 평가 기준은 셧다운제를 확대 적용할 대상을 정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콘솔 및  스마트폰 게임까지 확대 적용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내용이 알려지자 기존부터 셧다운제를 반대해 왔던 단체들은 더 강하게 반발했고 인터넷 상에서도 꽤 논란이 일었습니다. 


 지난 9월 27일 이런 규제를 밀어부치는 주무 부서인 여가부와 문화 체육 관광부, 그리고 아이사랑국민연대 처럼 게임 규제를 찬성하는 단체와 문화 연대 및 게임 문화 재단 등 여기에 반대 의견을 가진 단체들이 모여서 청소년 게임이용 평가계획 관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전병헌 민주통합당 의원실 및 문화 연대가 공동 주최) 


 이날 토론회는 한마디로 양측의 메울 수 없는 인식 차이를 보여준 토론이었다고 합니다. 전병헌 의원도 이 평가기준을 게임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일이나 회사로 바꾸면 긍정적인 평가 기준이 된다고 비판했고 개콘 소재감이라고 풍자했습니다. 


 또 여가부가 기본적으로 게임을 청소년을 병들게 하는 유해 매체로 보고 규제하려 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내용이 나올 수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날 토론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것은 아이사랑 국민연대라는 단체의 김민선 사무총장이 '아이들이 죽어 가고 있다' 면서 격한 발언을 쏟아내면서 부터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합의점을 찾을 수 없는 토론이었다는 게 적절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게임 셧다운제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 진짜 아이들의 수면권과 건강을 위해서라면 과도한 학업은 왜 규제를 안하는지 입니다. 그리고 지난 1 년 가까이 사실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여가부 뿐일 것입니다. 또 성인들의 정당한 게임 이용을 제한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지 역시 궁금합니다. 이는 사실상 위헌의 소지 (헌법 10조) 가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왜 청소년이 규제대상인데 성인들까지 피해를 보는 지는 앞서 한번 언급했듯이 청소년 게임 셧다운제 및 게임 시간 선택제를 시행하기 위해 별도의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고 외국계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별로 팔리지도 않는 한국 시장을 위해 그런 추가적 조치를 도입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 서비스를 중지하는 경우 이를 이용하려는 사용자들의 권리는 물론 재산권 (이미 비용을 주고 획득한 계정에 접속 불가) 침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실제 이로 인해 PSN 스토어는 서비스가 중단되었고 그 피해는 대부분 성인들일 게이머들이 봤습니다. 그리고 과연 스팀이 한국만을 위해서 이런 시스템을 갖추려고 할까요 ?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제로는 효과도 없는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 사용자와 업계 모두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시행된 금주법도 의도는 좋았는지 몰라도 결국 국민들과 국가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갱단에게만 큰 수익을 안긴 후 사라졌습니다. 지금 시행하는 셧다운제는 중독이나 과몰입된 대상을 치료하려는 게 목적인 법이 아니라 (의도가 그렇고 방법이 적절하다면 오히려 찬성입니다) 정당하게 이용하는 대상도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악법입니다.  


 이제는 국민이 직접 항의를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전에도 이로 인해 스타크래프트 1 이 배틀넷 서비스를 중단하려 하자 그때는 여가부가 한발 물러나서 스타 1 은 예외로 하기로 한적도 있었습니다. 사용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죠. (  http://blog.naver.com/jjy0501/100141746441 참고 ) 무슨 법이 사용자 의견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하지만 스타 1 과는 달리 사용자가 많지 않은 게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죠.


 아마도 여가부는 어떤 비난이 있더라도 이를 밀어부칠 생각인 것으로 보이며 이 날 토론회에서도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할 뜻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습니다. 제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부서가 이런 짓을 한다니 더 열받는 일이긴 한데 처음부터 모두의 의견을 경청할 사람들이었다면 지금처럼 하지도 않았겠죠. 결국 이런 이야기를 널리 알려 왜 그래서는 안되는지를 홍보하고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을 확산시킬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