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십자군 전쟁사 - 십자군의 최후 6





11. 트리폴리 백작령의 최후 


여기서 잠시 트리폴리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티오크를 상실했던 보에몽 6세는 이미 1275 년에 사망했다. 그를 이은 것은 아들인 보에몽 7세 (Bohemond VII, Count of Tripoli) 였다. 보에몽 7 세 치세 역시 그다지 순조롭지는 않았는데 특히 성전기사단의 지원을 받은 엠브리아코 가문의 기 드 제베일 (Guy of Jebail) 과의 내전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 가문은 제노바의 영향력 있는 상인 가문으로 이지역 이권에 이전부터 간섭하고 있었고 트리폴리 자체를 장악하려 들었지만 실패했다.  


 아무튼 이 전쟁에서 승리한 보에몽 7 세는 그나마 트리폴리 백작 지위는 지킬 수 있었다. 그는 1287 년에 사망했는데 자식이 없었으므로 여동생인 루시아 (Lucia) 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트리폴리의 백작부인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여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트리폴리의 루시아 주교 옆에 있는 두건을 쓴 여자라고 추정됨.  public domain image) 


 그러나 불행히도 루시아는 좋지 않은 시기에 백작령을 물려받았다. 1287 년에는 본래 안티오크 공국의 일부로 당시까지 트리폴리 백작의 지배를 받았던 라타키아가 함락되었다. 이어 칼라운이 트리폴리를 노리는 것은 누가봐도 명확했다. 


 트리폴리 백작령 혼자서는 칼라운을 막아내기 불가능했기 때문에 루시아는 몽골 제국은 물론 서유럽에까지 원군을 요청해 보지만 그녀와 트리폴리 백작령을 도와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그보다는 같은 기독교인들이 그녀를 위기에 빠지게 만들었다. 


 기 드 제베일의 동생인 바르톨로뮤 엠브리아코 (Bartolemew Emriaco) 는 이 도시를 자신이 장악하고자 음모를 꾸몄는데 그 음모를 달성하기 위해 칼라운에게 군대를 파병해줄 것을 요청했다. 호시탐탐 십자군 영토를 노리면서도 -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방위상의 이유도 있다 - 휴전 조약에 발이 묶여있던 칼라운은 이제 당당하게 휴전협정을 깰 명분이 생겼다. 비록 종종 지켜지지 않던 협정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칼라운은 1289 년 시리아 방면으로 대군을 파견했는데 병사들은 그 목적지가 어딘지 몰랐으나 그들이 가는 방면이 트리폴리 쪽인 것은 확실했다. 1289 년 3월, 트리폴리는 칼라운에 의해 포위된다. 이상황에 이르자 인근의 십자군 세력들이 아직 포위되지 않은 항구로 많지 않은 병력을 파견했다. 이 병력은 구호, 성전 기사단 및 아크레, 키프로스 왕국들에서 보낸 것이지만 사실 일시적으로 트리폴리의 함락을 지연시켰을 뿐이다. 


 맘루크조의 강력한 투석기 공격에 성벽이 무너지면서 180 년간에 이르는 트리폴리의 십자군 지배는 막을 내렸다. 4월 26일 성으로 난입한 맘루크 병사들은 닥치는 데로 주민을 학살하고 1200 명을 노예로 삼아 알렉산드리아로 보냈다. 그들은 여기에 만들어진 새로운 병기창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결국 2년후 있을 아크레 포위전에 무기를 대주는 셈이었다. 트리폴리 함락에서 한가지 정당한 일이 있었다면 칼라운을 끌여들인 바르톨로뮤 엠브리아코 본인도 이 혼란 중에 죽었다는 사실이다. 



(트리폴리의 함락, 13- 14 세기 기록화   public domain image) 


 트리폴리 함락 당시에도 바다는 기독교 세력이 지키고 있었으므로 루시아를 비롯 몇몇 운좋은 주민들은 항구로 탈출할 수 있었다. 루시아의 이후에 대해서는 기록이 엊갈리지만 아무튼 1299 년 이전에 죽은 것 같다. 이렇게 되서 보에몽 1세로부터 거의 190 년 정도 지속된 안티오크 공작/트리폴리 백작가는 완전히 대가 끊기게 된다. 나름 평지 풍파를 이기고 살아남은 안티오크 공작가의 쓸쓸한 최후였다. 



 12. 유럽의 반응


 당시 유럽의 반응은 한마디로 싸늘했다. 이미 십자군의 인기는 바닥을 찍은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교황 니콜라오 4세는 새로운 십자군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앞서 말한대로 일 한국의 아르군 칸과의 협상 때문이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1291 년 새로운 연합군이 생겨날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은 게 유럽의 국왕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이 요청에 전혀 응하지 않은데다 더 중요하게는 아르군 칸이 1291 년에 사망하기 때문이다. 아르군 칸의 사망과 더불어 맘루크조와의 전쟁 계획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아르군 칸의 뒤 이은 가이크하투 (Gaykhatu) 는 그의 동생으로 지폐를 도입하는 업적을 세운 후 신속하게 암살되었다. 그 뒤를 이은 바이두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등 한동안 일 한국은 맘루크조와 전쟁을 할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튼 1289 년에 우트르메르 현지에서는 트리폴리 까지 함락되고 이제 점점 남은 도시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아크레도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래서 명목상의 예루살렘 왕국 국왕인 키프로스의 앙리 2세 (Henry II of Jerusalem) 는 유럽으로 Jean de Grailly 라는 귀족을 보내 현지의 심각한 상황을 알리고 군사 원조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로 이 요청에 응한 군주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십자군 원정을 통해 서유럽의 주요 군주들이 국력을 탕진하고 막대한 손실만 입은 것을 잘 봐왔다. 더구나 1차 십자군 때와는 달리 이슬람 세력은 맘루크 조라는 강력한 통일 제국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으므로 성공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했다. 이제 십자군의 이상은 널리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후세의 상상화인 마지막 십자군. 노인 혼자 외롭게 가는 모습이 당시의 십자군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는 듯 하다.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은 고루하고 실현가능성 없는 이념으로 받아들여졌다.   public domain image)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병사가 필요했던 아크레와 앙리 2세는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을 모집하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이 오히려 아크레의 명을 재촉했다. 급하게 병사를 뽑아 갤리선에 실어 아크레까지 데려오는 것은 좋았는데 곧 돈이 모자라 급료가 제대로 지불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병사보단 부랑자나 기타 무직자 등 여러모로 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들은 급료가 연체되자 곧 본색을 드러냈다. 우선 부유한 무슬림 상인들을 약탈하고 도시를 유린했다. 비록 이들이 무슬림 상인만 살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건은 휴전 협상을 파기하고 전쟁을 벌일 구실을 원하던 칼라운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R 스튜디오 설치 및 업데이트

 R을 설치한 후 기본으로 제공되는 R 콘솔창에서 코드를 입력해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그렇게 하기 보다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R 개발환경인 R 스튜디오가 널리 사용됩니다. 오픈 소스 무료 버전의 R 스튜디오는 누구나 설치가 가능하며 편리한 작업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에 R을 위한 IDE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어 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습니다.    https://www.rstudio.com/  다운로드 R 이나 혹은 Powerful IDE for R로 들어가 일반 사용자 버전을 받습니다. 오픈 소스 버전과 상업용 버전, 그리고 데스크탑 버전과 서버 버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오픈 소스 버전에 데스크탑 버전을 다운로드 받습니다. 상업 버전의 경우 데스크탑 버전의 경우 년간 995달러, 서버 버전은 9995달러를 받고 여러 가지 기술 지원 및 자문을 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데스크탑 버전을 설치하는 과정은 매우 쉽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스톨은 윈도우, 맥, 리눅스 (우분투/페도라)에 따라 설치 파일이 나뉘지만 설치가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라면 R은 사전에 반드시 따로 설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R 스튜디오만 단독 설치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죠.   설치된 R 스튜디오는 자동으로 업데이틀 체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업데이트를 위해서는 R 스튜디오에서 Help 로 들어가 업데이트를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업데이트 할 내용이 없다면 최신 버전이라고 알려줄 것이고 업데이트가 있다면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R의 업데이트와 R 스튜디오의 업데이트는 모두 개별적이며 앞서 설명했듯이 R 업데이트는 사실 기존 버전과 병행해서 새로운 버전을 새롭게 설치하는 것입니다. R 스튜디오는 실제로 업데이트가 이뤄지기 때문에 구버전을 지워줄 필요는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