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 하면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오랜 관행 (?) 이자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기계는 고장이 나게 마련이고 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드는 대형 참사는 어느나라든 피해갈 수 없기 마련이지만 한국에서는 있어서는 안될 참사가 특히 더 잘 일어나는 느낌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일어난 참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잘 기억이 되는 점 또한 고려해야 겠지만 우리에게 안전 불감증이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과거 있었던 수많은 국내 해난 사고에 대해서 잠시 찾아봤습니다. (일부 기사들에 따라서 사망, 실종, 사상자 수가 다른 경우들이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승선 인원이 확실치 않았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 창경호 침몰 (1953 년 1월 9일)
아직 6.25 동란 중이던 1953 년 1월 9일 부산 다대포앞 해상에서 침몰한 정기 여객선 창경호는 약 330 명의 사망하고 32 명의 실종자를 냈다는 기록도 있고 236 명 가운데 229 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는 기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강풍을 만난 소형 여객선이 결국 침몰해 승객 대부분이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 연호 침몰 (1963 년 1월 18일)
전남 영암 가자도 해상에서 침몰한 연호는 138 명이 사망하고 한명만이 구조된 여객선 참사였습니다.
- 한일호 침몰 (1967 년 1월 14일)
정기 여객선 한일호가 남해 가덕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94 명이 사망한 사건.
- 남영호 침몰 (1970 년 12월 15일)
국내에서 역대 최대 해난 사고로 불리는 남영호 침몰 사고는 전남 여수시 소라도 앞바다에서 발생했습니다. 862 톤급 여객선인 남영호는 부산 - 제주간 정기 여객선으로 정원인 290 명 보다 많은 331 명의 승객을 태우고 과적한 채로 항해다가 결국 화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몰 12 명을 제외한 승객 319 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때 역시 정확한 승객수에 대해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임)
- 해군 YLT 선 침몰 (1974년 2월22일)
경남 통영시 장좌섬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있는 충렬사를 참배하고 오던 해군 예인정 (YLT 선) 이 전복되어 159 명의 장병들이 사망한 사건. 당시 정원의 두배인 300 명을 태운 상태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방향을 틀다가 전복됨.
- 극동호 침몰 사고 (1987년 6월 16일)
경남 거제군 해상에서 해금강 관광에 나섰던 목조 유람선 극동호는 사실 24 톤급에 불과한 목조 선박에 폐기 처분된 자동차 엔진을 달아 만든 불법 개조 선박이었습니다. 결국 기관실 엔진과열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는데 소화기는 녹슬어서 쓸 수 없었고 구명 조끼는 도난 방지를 위해 묶여 있었습니다. 결국 승객 86 명 가운데 35 명이 사망/실종 되었습니다.
- 서해 훼리호 침몰 (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해 훼리호는 남영호, 창경호 참사와 더불어 지금까지 가장 큰 여객선 참사 중에 하나였습니다. 110 톤에 불과한 작은 선채에 무려 정원보다 141 명이나 더 많은 362 명이 탑승했는데 파고가 높고 돌풍이 예상된다는 기상청의 경고를 무시하고 운항하다가 결국 292 명이 숨지는 대 참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 충주호 유람선 사고 (1994 년 10월 24일)
이 사고는 특이하게도 바다가 아닌 내륙호인 충주호에서 일어난 사고로 54 톤급 충주호 유람선에서 엔진 과열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 배는 127 명인 정원을 초과하여 승무원 포함 134 명이 타고 있었으나 유람선 안에 화재 진압용 소화전이 없었고 구명조끼도 정원수 만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때 사고로 30 명이 죽고 33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 년간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해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사고가 0% 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당연하기 때문에 그것 자체는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 이후 충주호 사고를 빼고는 대형 참사는 없었기 때문에 한동안 과거 후진국형 사고 (대부분 기본 안전 수칙도 지키지 않고 정원을 초과해 무리한 상황에서 운항하다가 대형 참사를 불러 일으킴) 는 옛날의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면 한국이 재난 선진국이 되려면 역시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사고 원인 및 경위는 현재 조사 중이기 때문에 좀 더 결과를 지켜봐야 겠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해 봐도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나 위기시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기는 매우 힘들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구명 보트 대부분이 펼쳐지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만약 사고가 연근해에서 발생해서 주변의 어선이나 해경, 해군에서 빨리 나타나지 않았다면 생존자는 거의 0 명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여기에 사고 발생시 침착하고 적절하게 승객을 대피시킨 건 아니었다는 점은 아마도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구조할 수 있었던 승객 상당수가 지금 실종 혹은 사망한 상태라는 건 거의 부인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사고 선박 이름처럼 세월이 흐른 만큼 이번 참사는 조그만 배에 정원을 훨씬 초과했다가 사고가 났던 과거의 대형 참사와는 다소 성격은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직후 대응이나 사고 이후 정부의 수습 과정이나 미숙하고 답답한 부분은 이전의 대형 참사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승선 인원 수와 실종/사망자 수가 하루에 몇차례 변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한국이 진짜 선진국 문턱에 와 있긴 한가 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의문은 과연 현재 다른 선박들의 안전 관리는 충분한가 입니다. 여객기, 선박, 기차등 다수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는 교통 수단의 경우 한번 사고가 일어나면 대형 참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높은 수준의 안전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로 드러난 사실은 지금까지도 선박 안전 관리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고 선박은 안전 검사를 통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정부 당국이나 현재의 선박 안전 관리 시스템도 절대 사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이는 부분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게도 지난 2월 검사시에 세월호는 200 여개의 검사 항목을 체크하고 모두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고 시점에서 44 개 중 2개만 펼쳐졌던 구명 보트도 안전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고 다른 구난시설도 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재검증이 당연히 필요할 것 같고 과연 현재의 안전 검사 규정이 적합하고 검사는 제대로 진행되는지 원점에서 철처한 검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객선이 운항 중에도 적절하게 안전 조치를 취하는지도 원점에서 다시 정밀 검토를 해봐야 합니다. 다시는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한명이라도 더 실종자가 구조되기를 기원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참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6&aid=00100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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