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신간에서 언급했던 내용인데 액상과당 - 물론 정확한 명칭은 HFCS (High Fructose Corn Syrup, 고과당 액상 옥수수 시럽) - 이 과연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액상과당이라고 불리는 만큼 앞으로 명칭은 액상과당으로 통일하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잠시 단당류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설탕의 경우 두 개의 당 분자가 결합한 이당류로 α-glucose(포도당)와 β-fructose(과당)이 결합한 것입니다. 포도당이나 과당이나 분자식은 C6H12O6로 동일한데 구조가 다른 육탄당인 것이죠.
아무튼 과당은 이름처럼 과일이나 꿀에 다량으로 분포하며 설탕에도 절반이 들어있습니다. 과당의 가장 큰 특징은 단맛이 강하게 난다는 점이죠. 따라서 과당이 유리 상태로 들어있는 꿀은 설탕보다 달게 느껴집니다.
탄산 음료를 포함해서 음료 회사들은 과거 맛을 좋게 하거나 혹은 탄산수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 설탕을 섞어서 판매했습니다. 그 결과 가당 음료 (SSB, Sugar Sweetened Beverage)라는 새로운 음료의 형태가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 나아가서 1960-70년대 클린턴 옥수수 가공 회사(Clinton Corn Processing Company)에서 일본 연구 기관과 협력 옥수수 전분을 가공해서 과당이 포함한 콘 시럽을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옥수수에 있는 다당류 녹말분자를 효소로 처리해서 이를 작게 쪼개면 포도당이 됩니다. 여기에 다시 효소 처리를 해서 이를 과당으로 바꾸는 것이죠. 그렇게 만든 액상 과당에는 포도당, 과당, 그리고 약간의 올리고당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신제품의 특징은 액체 상태라서 보관 및 운송이 편리하며 물과 잘 섞여서 음료수에 첨가하기 간편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값싼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해서 가격도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단당류 상태의 과당의 비율이 높아서 단맛이 그냥 설탕보다 강하다는 것입니다.
경쟁이 격화되면서 더 자극적이고 강한 맛을 추구했던 식음료 회사들에게 액상과당은 기적의 신물질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 결과 1970년대부터 액상 과당은 탄산 음료를 포함한 여러 가당 음료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액상과당이 이름처럼 과당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며 사실 설탕과 크게 다른 물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 음료수를 통해서 먹는 액상과당은 HFCS 42와 HFCS 55로 각각 42%, 55% 과당 포함한 제품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포도당인데 사실상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된 설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물론 더 농축된 액상과당도 사용되긴 하지만,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은 HFCS 42/55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물에 첨가되던 - 단 45도 이상으로 가열되면 hydroxymethylfurfural 로 변환되는데다 액체 상태라서 물에 잘녹기 때문에 주로는 시원한 음료수에 주로 사용 - 액상과당은 90년대까지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해 전통적인 설탕에 견줄 수준까지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미국에서는 1999년에 정점을 찍고 사용량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액상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설탕과 마찬가지로 추가적인 열량을 섭취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탄산음료 한 캔 (250ml) 은 100-130kcal 정도의 열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물대신 탄산음료로 갈증을 달래는 경우 하루 수백 kcal의 열량을 추가로 섭취하게 됩니다. 만약 하루에 100kcal 씩 1년간 추가 섭취하면 36500kcal를 추가로 섭취하는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열량을 섭취한만큼 다른 걸 적게 먹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실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게만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몸의 단당류 대사는 가장 중요한 단당류인 포도당에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과당의 경우 포도당만큼 흡수가 빠르지도 않거니와 혈중 과당 농도가 올라가도 포만감이 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과당을 다량 포함한 음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당한 추가 열량을 섭취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우리 몸에서는 남아도는 과당을 최종적으로는 포도당과 같이 에너지로 사용하지만, 보통 가당 음료를 마실 때에는 포도당 역시 부족하지 않게 섭취하게 됩니다. 우리 몸은 포도당을 우선 에너지로 사용하고 남는 과당은 빠른 속도로 지방으로 저장됩니다.
당연히 액상과당이 다량 포함된 가당음료를 자주 마시는 경우 비만이나 당뇨, 대사 증후군의 위험도가 올라가게 되며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이제는 신흥국에서도 큰 보건상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사실 액상과당이 앞서 설명했듯이 설탕과 그렇게 다른 녀석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은 액상과당보다는 설탕, 액상과당 같은 첨가당 (added sugar, 본래 음식에 들어있지 않은 단당류나 이당류로 맛을 좋게 만들기 위해 첨가한 것)을 많이 먹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012년 미 내과학 회보 (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는 과당이 다른 종류의 첨가당에 비해서 특별히 더 위험하지 않다는 메타 분석(여러 개의 비슷한 연구 결과를 모아서 결론을 내는 통계적 분석 방법) 및 체계적 문헌 고찰(meta-analysis and systemic review)가 실렸습니다.
연구팀이 지적하는 것은 액상과당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이 섭취했을 때 당뇨, 비만, 대사 증후군, 고혈압 등 여러 질환이 생기는 건 어떤 형태의 첨가당도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즉 하루 설탕 100g 이나 액상과당 100g 이나 (칼로리로 환산하면 하루 필요량의 거의 20%) 동일하게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WHO와 미국, 유럽, 우리 나라의 식생활 가이드라인에서는 전체 열량에서 첨가당 10% 이상을 먹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을 뿐 과당이나 설탕 같은 특정 형태의 당을 피하라고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인을 위한 2015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에서도 역시 ‘총당류 섭취량을 총 에너지섭취량의
10~20%로 제한하고, 특히 식품의 조리 및 가공 시 첨가되는 첨가당은 총 에너지섭취량의 10% 이내로 섭취하도록 한다. 첨가당의 주요 급원으로는 설탕, 액상과당, 물엿, 당밀, 꿀, 시럽, 농축과일주스 등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당류가 포함된 가당 음료는 물대신 마시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음료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음료 이외에 다른 식품에 포함된 첨가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액상과당이나 설탕 모두 사실은 위험한 물질이 아니며 인간이 지상에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있었던 천연 물질입니다. 이들이 건강에 위험하게 된 것은 인간이 지금 이를 남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액상과당의 경우 1999년 미국에서 소비 정점에 도달했을 때 1인당 연간 소비량이 17kg에 달했습니다. 설탕의 경우 2012년 1인당 연간 17.7kg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당류는 일찍이 인류가 접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안전한 물질이라도 사실 대량으로 섭취하면 그 안전성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요즘처럼 달달한 디저트와 단 음료가 넘처나는 시대에서는 절제가 중요한 미덕입니다. 첨가당이 많이 포함된 음료수와 과자류는 (도넛, 케익, 아이스크림류 포함) 종종 디저트 용도로만 섭취하고 매일 습관처럼 먹는 일은 피해야 하겠습니다.
참고
ievenpiper, JL; de Souza, RJ; Mirrahimi, A; Yu, ME; Carleton, AJ; Beyene, J; Chiavaroli, L;
Di Buono, M; Jenkins, AL; Leiter, LA; Wolever, TM; Kendall, CW; Jenkins, DJ (21 February
2012). “Effect of fructose on body weight in controlled feeding trial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Annals of Internal Medicine. 156 (4): 291–304. doi:10.7326/0003-4819-156-4-
201202210-00007
2015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 보건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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