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포스트에서 저탄수화물 식이 혹은 당질 기아 (전체 에너지는 부족하지 않은데 탄수화물 성분이 부족한 경우)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탄수화물의 섭취가 매우 적을 경우에는 케톤증(ketosis)가 발생하게 되는데, 여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개념과 위험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케톤증은 누구나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하면 생길 수 있지만, 대개 일반인에서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1형 당뇨 환자나 급성 알콜 중독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치명적인 수준의 케톤증 역시 보기 어렵습니다.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섭취합니다. 탄수화물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단당류는 바로 포도당 (글루코스)인데 특히 뇌의 일차 에너지원으로 포도당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서는 적정량의 혈중 포도당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적정 포도당 농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 저혈당 쇼크에 빠져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물론 포도당은 뇌 뿐만 아니라 우리 신체의 모든 세포에서 에너지로 사용되기 때문에 충분히 공급이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은 여러 개인데 비해 혈당을 내리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 뿐인 것입니다. 혈당이 내려가면 죽기 때문에 혈당을 올리려는 강력한 진화압이 작용하고 구조적으로 혈당이 만성적으로 증가하는 당뇨가 생기기 쉬운 것이죠.
포도당은 우리가 먹는 녹말 (전분)이나 첨가당의 형태로 들어가는 설탕에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밥을 먹으면 그 속에 있는 녹말 (포도당이 축합 반응에 의해 여러 개로 결합된 다당류 탄수화물입니다)이 소화되면서 포도당이 되어 우리 몸의 세포에 에너지원으로 공급됩니다.
포도당은 피브루산으로 쪼개진 후 아세틸 CoA가 되어 TCA 사이클로 들어갑니다. 지방산 역시 베타 산화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아세틸 CoA가 된 후 TCA 사이클로 들어가게 됩니다. TCA 사이클에 대해서 학교에서 이미 배우신 독자라면 복잡한 회로를 따라 아세틸 CoA가 여러 개의 ATP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지구 생명체는 ATP를 에너지의 기본 단위로 사용합니다. 에너지 대사의 기축통화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물질이죠. 그런데 포도당이 모자란 경우에는 어떻게 ATP를 생산할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지방이든 아미노산이든 가리지 않고 대사시켜 ATP를 만들어냅니다.
(TCA 사이클. 출처: 위키피디아 )
보통 일반적인 식사에서는 발생하기 어렵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포도당으로 분해될 수 있는 탄수화물 섭취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지방산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섭취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경우 다량의 아세틸 CoA가 생성되지만, 탄수화물에서 생성되는 물질인 옥살로아세트산(Oxaloacetate)의 공급이 부족해지게 됩니다. 즉 TCA 사이클의 마지막 단계에서 더 진행이 안되면서 회로가 충분히 돌지 못하는 것이죠. 이러면 여분의 아세틸 CoA가 쌓이게 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세틸 CoA는 에너지를 만드는 원료물질이지 ATP 같은 에너지 기본 물질이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굶어죽을 수 밖에 없지만, 다행히 탈출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간에서 남는 아세틸 CoA를 축합반응을 통해 아세토아세트산, 베타 하이드록시부티르산, 아세톤 (acetone, acetoacetic acid, beta-hydroxybutyric acid) 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 물질을 합쳐 케톤체(Ketone body)라고 부르며 대체 에너지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케톤체는 보통 정상 대사 상태에서는 매우 소량만 만들어지는 물질입니다. 일단 산성 물질이라 다량으로 혈액에 흐르면 케토산증(ketoacidosis)를 일으킬 뿐 아니라 심한 경우 대사성 산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정상적인 대사 기능을 지닌 사람에서 이런 심한 케토산증이 생기는 경우는 드물지만 1형 당뇨환자의 경우 DKA (Diabetic KetoAcidosis)라는 매우 심한 형태의 대사성 산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우리 몸에는 pH를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전이 있어서 보통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쉽게 몸이 산성화되거나 알칼리화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혈액에 대량의 케톤체가 돌아다니는 경우는 예외입니다. DKA는 특히 인슐린이 부족한 1형 당뇨환자에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 몸은 좁은 pH (7.35~7.45)에서 대사 균형을 이루기 때문에 대사성 산증이 심하면 사실 생명이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한 DKA 환자는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들어오며 케톤체로 인해 소변과 입에서 아세톤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상인에서 케톤증을 예방하기 위한 탄수화물 섭취량은 하루 50~100g 정도로 다행히 많지 않습니다. 하루 밥 한공기만 먹어도 케톤증이 생기는 경우를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식사를 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탄수화물을 먹으므로 케톤증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식사를 하는 경우 케톤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식사를 모두 거부하고 지방만 먹는 독특한 다이어를 할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이 경우 처음에는 체내에 저장된 글리코겐 및 옥살로아세트산으로 어느 정도 케톤증을 예방할 수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케톤증이 유발되면서 관련 증상 (흥미롭게도 식욕 부진이 그 중 하나입니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런 식사를 오래 견디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같은 경우에도 100% 지방만 먹는 경우는 드문 것입니다. 무리하게 지방만 계속 먹으면 결국 몸이 견디지 못하고 다시 적정량의 탄수화물을 먹는 쪽으로 가게 되는데 특히 한국인처럼 탄수화물 중심 식이를 하는 경우 더 분명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위에 이야기는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이야기를 추가한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낸 책에서 설명한 부분은 보통 다이어트 목적으로 시행하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가 장기간 체중 조절에 효과가 없다는 내용인데, 나중에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다루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케톤증의 효과의 부작용입니다. 케톤증을 의도적으로 유발하는 케톤식단(ketogenic diet)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일부 질환에서 치료효과를 얻기 위한 것으로 건강식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입니다. 물론 단기 및 장기 부작용이 존재해서 질병이 없는 건강인이 시도하기에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좀 어려울수도 있는데 나중에 기회되면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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