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 도서 쇼핑몰에 들어가면 위와 같은 내용의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 정가제라고 알려진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이 2014 년 11월 2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나온 광고입니다. 이 개정안은 2014 년 5월 20일 개정되었는데 그 중 제 22 조에
① 출판사가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물을 발행할 때에는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이하 "정가"라 한다)을 정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간행물에 표시하여야 한다. <개정 2012.1.26., 2014.5.20.>
② 발행일부터 18개월이 지난 간행물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정가(定價)를 변경할 수 있다. 이 경우 정가표시는 제1항을 준용한다. <신설 2014.5.20.>
③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전자출판물의 경우에는 출판사가 정가를 서지정보에 명기하고 전자출판물을 판매하는 자는 출판사가 서지정보에 명기한 정가를 구매자가 식별할 수 있도록 판매사이트에 표시하여야 한다. <신설 2012.1.26., 2014.5.20.>
④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는 이를 정가대로 판매하여야 한다. <개정 2014.5.20.>
⑤ 제4항에도 불구하고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는 독서 진흥과 소비자 보호를 위하여 정가의 15퍼센트 이내에서 가격할인과 경제상의 이익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판매할 수 있다. 이 경우 가격할인은 10퍼센트 이내로 하여야 한다. <신설 2014.5.20.>
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중 4 와 5 항을 보면 이제 책은 정가대로만 판매해야 하며 가격 할인은 정가에서 10 % 라는 내용이 명시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상의 이익 (주로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말함) 을 포함해도 15% 가 넘어서는 안됩니다. 즉 10 % 할안에 5 % 마일리지까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안된다는 말이죠. 18 개월이 지난 간행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정가를 변경할 수 있는 예외는
④ 법 제22조제4항제5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간행물"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간행물을 말한다. <개정 2012.6.19>
1.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그 밖에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의 도서실ㆍ자료실에 판매하는 간행물
2. 군부대, 교도소, 그 밖에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하는 보호시설에 판매하는 간행물
3. 외국에서 발행된 간행물
4. 최종소비자에게 판매되었던 간행물로서 다시 판매하는 중고 간행물
로 일반 서적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 전에는 2 만원짜리 책이라도 몇년 후엔 50% 할인되어 1 만원 구매 가능했지만 이제는 15% 이상 할인을 받을 방법이 전혀 없어진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이런 희안한 법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몇개의 대형 / 온라인 서점이 독식하는 현재의 도서 유통 구조를 바꿔보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국내 도서 시장은 그렇게 규모가 큰 편도 아닌데 그마저도 몇개의 우월적 사업자가 독식을 하다보니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책을 싼 값에 납품받은 후 이를 마구 할인해 판매하는 것입니다. 결국 중소 서점은 이런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써 이미 동네 책방들은 몇개 남지 않고 대부분 문을 닫은 상황입니다. 그럼 이들 소수의 온라인/대형 서점의 힘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여기에 힘없는 중소 출판사들은 납품 단가를 낮춰서 공급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경영난이 매우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도서 정가제(도정제)로 알려진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가격을 고정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정가제가 있었긴 했지만 할인율이 최대 19% 에 달했고 18 개월이 지난 구간이나 실용서, 초등학생용 참고서 등은 예외로 두고 있어서 소비자들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매할 방법이 열려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는 11월 21일 부터는 이와 같은 길이 막히게 됩니다. 이 법이 제 2 의 단통법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사실 단통법은 일부 사용자에게만 보조금이 많이 지급되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 법은 아예 소비자가 물건을 할인받을 수 있는 권리 자체를 원천 봉쇄하는다는 데서 더 반발의 소지가 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출판 시장은 어찌 되었든 간에 누구나 18 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를 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데 이걸 막겠다는 것이니까요.
특히 매년 참고서를 어쩔 수 없이 구매해야 하는 학부모들은 여기에 더 민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말씀드리면 학부모는 아니지만 책을 구매하는데 돈을 많이 쓰는 편이라 저 역시 도서 정가제가 별로 달감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만약 이런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출판 시장이 제자리를 잡는다면 해볼 만한 가치는 있을 수도 있겠죠.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도서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자리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단통법에서도 보듯이 의도한 효과가 아니라 전혀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일단 도서를 정가대로 판다고 해서 이미 대부분 사라진 동네 서점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더 큰 문제는 대형 서점들이 여전히 우월한 사업자 지위를 이용해서 할인된 가격에 책을 받고 정가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단통법 시행 이후에 최대 수혜자가 이통사인 것처럼 도정제 시행 이후의 최대 수혜자가 대형 서점들이 될 수도 있다는 예측인 것이죠.
두 번째 문제는 출판 업계의 건전한 토양이 형성되기도 전에 수요 급감으로 인한 업계의 붕괴 위기입니다. 과거에는 안팔리는 책이나 재고로 남은 책이 있으면 특가 판매로 해결이 가능했는데 앞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악성 재고가 쌓이면 출판사는 경영이 매우 힘들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소비자들은 갑자기 책값이 오르는 만큼 책 구매를 줄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을 겪는 출판업계에 더 큰 어려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 지하철을 타면서 느끼는 게 과거에는 책보는 사람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주로 소비하는 컨텐츠에서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데 이와 중에 가격을 내릴 수 없다면 과연 어떻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미래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단통법에서 보듯이 국가에서 가격을 조절하려는 시도는 시장 경제에 역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 현재 상태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치려는 것인데 그게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현재 한국 출판 시장이 처한 딜레마와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21 일이 되기 전에 구매하고 싶은 구간 도서 (18 개월 이상 도서 가운데서 할인율이 큰 도서) 를 최대한 구매한 후 한동안은 꼭 사고 싶은 책 이외에는 구매를 중단할 것 같네요. 물론 도서관에서 빌려보거나 해외 서점에서 이북을 구매 (영문 서적) 하는 대안들이 있으니 독서를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꼭 이런 방법 밖에 없나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참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