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대체 에너지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은 최근 에너지 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서 자국내에서 두번째로 많은 전력을 공급해 왔던 원전을 단계적으로 퇴역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내 반핵 움직임이 더 강해지는 가운데 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갑자기 정책을 선회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원전 폐기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집권 여당인 독일 기독교 민주 연합 (기민당) 은 녹색당과의 정책 차이를 줄일 수 있었고 이는 곧 선거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 나니 역시 원전 퇴역에 드는 돈이 만만치 않다라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모두 예상했던 결과라고 해야겠죠. 그런데 새로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석탄 발전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큰 발전원은 표면적으로 보면 태양광 처럼 보입니다. 이전에 포스팅 한 것처럼 지난 2014년 6월 9일에는 전체 전력 생산량의 절반이 태양에너지로부터 얻어지는 역사적인 일도 있었습니다. ( http://jjy0501.blogspot.kr/2014/06/solar-energy-in-germany.html 참조) 하지만 실제 독일 전력 발전의 중추는 석탄 발전이라는 사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문제는 화석 연료 발전 가운데서 석탄이 가장 오염 정도가 심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입니다.
(2014년 상반기 동안 독일에서 전력 생산량. 출처: 위키 )
현재 독일 내 환경주의자들은 이런 이슈로 인해서 석탄 발전도 같이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첫번째 이슈는 석탄 산업이 독일의 주요 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독일은 다른 에너지 자원은 부족하지만 석탄은 자체적으로 공급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막대한 독일의 석탄 자원은 에너지 자급의 핵심이었으며 독일 산업의 핏줄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탄광 조합 및 연관 조합들은 기민당과 연립을 구성한 사민당 (SPD) 의 주요 지지 기반이기도 합니다.
최근 독일 내 석탄 산업은 미국내 세일 가스 붐으로 인해 새로운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 하지만 세일 가스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국제 석탄 가격이 하락하게 되고, 그 결과 독일 내 석탄 발전은 더 가격 갱쟁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때 마침 러시아와의 껄끄러운 관계로 말미암아 독일내 천연 가스 가격이 상승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요인이 독일 내 석탄 발전 의존도를 낮추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죠.
그러나 바바라 헨드릭스 (Barbara Hendricks) 환경부 장관은 2020년까지 30년전 대비 온실 가스 배출을 40% 줄이려는 야심찬 계획은 사실 석탄 발전을 줄이지 않고는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반면 연정의 한축인 사민당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 (Vice Chancellor Sigmar Gabriel, 에너지 및 경제부 장관 겸임) 는 원전과 석탄 발전을 동시에 없앨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아마도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헨드릭스 장관의 말이 옳을 것이고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가브리엘 부총리가 옳을 것입니다. 둘다 옳은 말을 한다는 게 사실 독일이 처한 딜레마죠.
이미 2022 년까지 원전을 없애고 그 자리에 태양광이나 풍력, 바이오매스 같은 신재생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독일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전기료를 내고 있습니다. 석탄 발전까지 없애려 한다면 독일 경제가 져야 하는 부담은 훨씬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다 전적으로 태양광과 풍력, 바이오 연료에만 의존하기 힘든 이유도 존재합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풍력이나 태양광이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동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태양광이 문제입니다.
(독일의 하루 중 전력 생산 변화 Germany electricity generation on May 25 and May 26, 2012 - 22 GW of solar each day. http://en.wikipedia.org/wiki/Solar_power_in_Germany#mediaviewer/File:Germany_Electricity_Generation_5-25-26-2012.png )
이 문제를 함축적을 보여주는 것이 위의 그래프입니다. 전기는 산업 사회의 산소와 같은 것으로써 전기가 1 분만 끊어져도 큰 불편과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기는 매우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태양광에서 나오는 전력은 하루중 변동이 매우 심합니다. 또 계절과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여기에 밤에는 전력 생산이 0 이 되는 문제 역시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태양광 에너지 생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석탄 발전이나 원자력 같이 백업을 해줄 수 있는 에너지원이 필요하게 됩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원자력이 빠진다면 백업 용도로의 석탄 발전의 중요성은 역설적으로 더 커지게 됩니다.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면 사실 석탄 발전이야 말로 가장 심각한 오염을 (온실 가스나 기타 오염 물질 모두를 포함해서) 만드는데도 말이죠.
물론 대안이 있습니다. 향후 독일 정부는 태양광 외에도 풍력과 바이오매스 등 다른 에너지에 대한 투자도 늘릴 계획입니다. 설이 용량은 적어도 풍력이 비교적 꾸준히 에너지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풍력 역시 시간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해상 풍력 발전이 많이 시도 되는데 상대적으로 꾸준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죠.
미래에는 변할 수 도 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당장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화석 연료는 고갈 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구 환경에 주는 충격을 생각할 때 빠르게 대체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원전은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현재 가장 이상적인 대안 같지만 문제는 세상에 100% 안전한 수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데 독일 국민의 선택은 우선 원자력을 퇴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청정 에너지의 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겠죠.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리려는 독일 정부의 계획 앞에는 앞서 말한 것 말고도 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차세대 에너지원에 대한 독일 정부의 과감한 투자는 다른 나라의 귀감이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만 되는 일은 없는 법이죠. 과연 독일인들이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습니다.
우리가 독일의 사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독일 처럼 우리 역시 새로운 에너지원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에너지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써는 그 필요성이 더 크죠. 우리가 풍력이나 태양에너지를 통해 에너지 자급을 이룩할 수 있다면 단순히 친환경 에너지 이상의 큰 의미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때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독일이 겪었던 어려움과 선택은 우리에게 좋은 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화석 연료에 대한 낙관론을 늘어놓거나 친환경 에너지의 대한 장미빛 꿈을 그리는 것은 모두 현실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의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실제 현실에서 부딪힐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뭔가를 배운다면 우리 나라의 미래 에너지 계획을 세우는 데도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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