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56% 정도가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여론 조사가 아니더라도 작년부터 독일내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는 의견 이상으로 그냥 유로존을 탈퇴하기 희망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는 건 사실입니다.
사실 미래에 대한 예측, 특히 경제문제에 대한 예측 처럼 어려운 문제가 없지만 만약에 진짜로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했을 때 독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꽤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정치적인 면이 아니라 경제적인 영향에서)
일단 기본적인 지표만 살펴보면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은 국가 입니다. 유로존 17 개국 전체 인구는 3억 3196 만명인데 반해 그리스 인구는 1132 만명으로 전체의 3% 를 약간 넘는 수준입니다. GDP 에 있어서는 2011 년 기준으로 12조 4600 억 달러 (혹은 9.2 조 유로) 의 3% 미만인 3300 억 달러 수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이런 수치만 감안해보면 그리스 하나만 유로존을 탈퇴하게 되는 경우 유로존에 그렇게 치명적인 결과 - 물론 지금까지 빌려준 돈을 못받는 비율이 더 늘어나겠지만 - 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긴 힘듭니다. 이점은 독일 한 국가를 기준으로 살펴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일단 참고로 독일의 무역 구조를 알아봅시다.
2011 년 독일 연방 통계청에 의하면 독일의 총 수출액은 1조 600억 유로였으며 수입액은 9020 억 유로로 무역 수지 흑자폭은 1581 억 유로 였습니다. (대략 1980억 달러) 이 막대한 무역 수지 흑자의 근원은 EU 멤버 국가들로 전체 수출의 59% 가 EU 국가에게서 이루어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 독일 연방 통계청 (Statistisches Bundesamt) 자료에 의하면 2002 년 이후 독일의 무역 흑자는 매년 1000 억 유로 이상이었으며 1999 년 처음으로 5000 억 유로 수출액을 달성한지 12 년만인 2011년에 전년 대비 111.4% 증가한 1조 600 억 유로의 수출을 달성해 최초로 1조 유로 (1조 2600 억 달러 / 1484 조원) 를 돌파했습니다.
사실 독일은 GDP 에서 2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 에 달해 비슷한 GDP 의 선진국 중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에 달하는 국가입니다. 이 높은 제조업 비중은 수출에 의해 지탱되는 부분이 큽니다. 상품 수출은 독일 경제에 중요한 활력소 역활을 했기에 EU 및 유로존 출범은 독일 기업의 상품 시장 개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GDP 가 2조 5700 억 유로인데 수출이 1조 600 억 유로라면 그 중요도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럼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리스가 독일의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일까요.
(2011 년 독일의 주요 무역 상대국, 자료 : 독일 연방 통계청 )
독일의 가장 중요한 수출 상대국은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영국, 중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벨기에, 폴란드, 스페인 등입니다. 사실 그리스는 독일의 수출 부분에서 한국, 타이완, 싱가포르, 우크라이나 보다 비중이 낮아서 50 억 7980만 유로 정도이고 수입은 20억 유로조차 안됩니다. 요컨데 그리스는 독일의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 0.2 % 정도 되는 국가입니다. 그런만큼 사실 그리스가 아예 독일과의 교류 자체가 없다고 해도 독일 경제에는 별 영향은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그리스 정부와 금융 기관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사태만 별개로 생각하면 그리스가 유로화를 탈퇴하든 말든간에 독일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들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일과의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 물론 유로존이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한 수준 - 그리스를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정치적인 부담을 지면서 까지 막대한 구제 금융 - 1차 1100 억 유로, 2차 1300 억 유로, 합계 2400 억 유로 - 을 주도하는 한축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설령 독일 금융 기관의 익스포저된 그리스 국채와 다른 채권을 생각하더라도 독일이 지금까지 그리스를 구제하기 위해 작은 비용을 치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솔직히 독일 정부, 특히 메르켈 총리는 상당히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를 도와왔습니다.
구제 금융의 핵심이었던 유럽 재정 안정화 기금 (EFSF) 7798 억 유로중 27% 에 달하는 2110 억 유로는 독일에서 부담했습니다. 그리고 EFSF 중 총 1640 억 유로가 그리스 구제 금융을 위해 집행되었거나 집행 될 예정입니다. 이 비용의 27% 라고 해도 그리스 구제 금융 비용 중 442.8 억 유로 (약 66조원) 를 독일에서 부담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채권 형식이나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만큼 원금 + 이자를 독일 국민들이 부담한 셈입니다.
그러니 독일으로써는 유로존 불량 국가들을 위해 거의 GDP 의 8% 에 근접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2 년 사이 빌려서 마련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앞으로 독일 국민들이 십 수년에 걸쳐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합니다. (국민 1인당 대략 2600 유로 정도/ 한화 386 만원, 그리고 노동 인구당으로 따지면 그 두배가 됨. 그리고 정규직이면 더 부담이 올라갈 것임.)
만약 여러분이 독일에서 주당 40 시간 정도 일을 하는 평균적인 정규직 종사자이고 납세자인데 대략 1000 만원 정도 되는 빚 + 그 빚의 이자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물론 그 돈은 당신이 한번도 만져보지도 써보지도 못한건 말할 것도 없고 사실 빌리겠다고 한적도 없는 돈인데 독일 정부에서는 그리스와 다른 유로존 취약 국가 구제를 위해 의무적으로 당신이 내야 한다고 하면 혼쾌히 내겠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
상황이 이런데도 그리스 위기가 해법이 보이지 않고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어디까지 계속될 지 알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당연히 독일 국민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의 희생을 치르기 보단 차라리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탈퇴시켜야 의견이 대세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독일 정부는 그리스 구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점은 다른 유로존 정부 및 유로존 외 주요 국가들의 의견도 비슷합니다.
왜 이렇게 유로존이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얼마 안되는 그리스를 위해서 노력하는지, 그리고 독일이 막대한 비용을 지금까지 부담해 왔는지는 사실 앞서 여러 포스트를 통해 본 블로그에서 설명드린 그대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 위기가 순식간에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유로존이나 독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국가로 전이될 가능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는 부채 규모가 2조 유로에 근접해 가고 있기에 이탈리아가 디폴트에 빠지게 되면 세계 경제에 메가톤급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파장은 심지어 리먼 브라더스 사태도 능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개인적인 추정입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및 디폴트 상황은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안전 자산 선호 현상을 도미노 처럼 촉발할 가능성이 높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처럼 경제 규모가 큰 국가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 심리를 유발, 남유럽 국가들에서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위기 국가에서는 뱅크런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법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혼란상은 수출의 59% 를 유럽 연합에 의존하는 독일 경제에 아주 큰 치명타를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독일 정부는 국민들의 반발에도 막대한 부담을 지면서 구제 금융을 지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정말 실제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일어나면 독일 경제까지 흔들릴까요 ? 가능성이 높지만 100% 라고 확신할 수도 없는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충분히 반영된 악재라고 생각하고 다른 국가의 추가 이탈만 없다면 그리스가 유로존 전체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기 때문에 의외로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 국민들은 엄청난 댓가를 치룰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어떻게 수습되도 한동안은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왜냐면 이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 과연 회생가능성이 있을지 이미 의구심이 크게 퍼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악재는 수습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어찌 되든 간에 엄청난 충격이 불가피 합니다.
현재 남유럽 유로존 취약 국가들, 특히 그리스에서는 독일의 경제 성장이 유로존 취약 국가들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독일이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어왔습니다. 확실히 독일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처럼 무역 적자가 계속 발생하거나 혹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 국가들과 화폐 통합을 하므로써 큰 이득을 본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독일의 무역 수지 흑자폭이 거의 10년 째 1000 억 유로나 되기 때문에 만약 마르크화 체제 였다면 마르크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독일의 가격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을 텐데 유로존 통합으로 대 유로존 수출은 물론이고 역외 수출에 있어서도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독일처럼 경쟁력이 없는 국가들은 유로존 가입 이후 화폐 가치가 상승하면서 수출 경쟁력을 심각하게 잃었는데 스페인이 특히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보단 스페인에 더 잘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그리스는 경제 규모가 적어서 앞에서 이야기한 환율 효과가 있었다 치더라도 미미했을 것이기 때문이죠. 반면 스페인은 교역 규모가 그리스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독일 경제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된게 사실입니다. 솔직한 이야기로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 안했더라도 2008 년 이전에도 독일이 딱히 큰 손해볼 부분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를 포함한 여러 경제 취약 국가들 덕분에 유로화는 통일 이후 힘겨워 하던 독일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 명약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취약한 국가들을 받아들인 댓가로 지금은 부작용이 더 심한 약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유로존 전체가 위기라고 할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마 유로화 자체가 사라지긴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새 화폐를 도입하는데는 꽤 큰 비용이 드는데다 그로인한 혼란상을 우려할 수 밖에 없기에 유로존 핵심국가인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북유럽의 재정 안정국가들 (네덜란드, 스웨덴 등) 은 유로존에 그대로 잔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독일은 무역 및 경상 수지 흑자 때문에 가능한 유로존에 많은 국가들을 잔존시키려 할 것이며 - 그렇지 않고 마르크화 복귀시 만성적인 무역 흑자로 마르크화 가치가 상승해 수출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 할 가능성이 높음 - 최악의 사태라도 그리스만 퇴출 시키는 선에서 마무리 하려고 들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예상하듯이 일단 그리스가 시작되면 이 사태가 얼마나 확산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순 없는 일이기에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주요국들은 어쩔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도 막으려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불행한 점은 2012 년 5월 선거 이후 그리스 정국이 바로 그 어쩔 수 없는 상태에 근접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6월 선거 이후 구제금융 이행 반대 연정이 들어서게 되면 모두가 바라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일이 생기기를 바라진 않겠지만 말이죠.
참고
https://www.destatis.de/EN/Homepag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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