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2009 년에 쓰여짐)
이번에는 1918년 기승을 부린 스페인 독감과 현재의 2009 인플루엔자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스페인 독감 이야기다.
스페인 독감 (Spanish flu, 1918 flu pandemic)
이 스페인 독감은 사실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류 역사상 짧은 시간 이내에 가장 많은 인명을 숨지게 만든 전염성 질환중 하나이다. 이 인플루엔자는 Infleunza A H1/N1 으로 - 나중에 보겠지만 H5N1 형이라는 설도 있다 - 2009년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타입이지만 극히 이례적일 만큼 강력한 병원성을 가진 인플루엔자로 현재까지도 의료인들과 보건 당국을 긴장시키는 주역이라고 할 수있다. 물론 이런 비슷한 강력한 병원성 (extreme virulent) 을 가진 인플루엔자가 범유행을 일이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1918 년 당시 완전 무장 (?) 한 간호사 둘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This is a press photograph from theNational Photo Company Collection at the Library of Congress. According to the library, there areno known restrictions on the use of these photos.)
이 인플루엔자는 1918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가 되었는데, 환자들은 당시 세계 1차 대전 때 유럽에서 건너온 듯 했다. 당시에 많은 뉴스들은 스페인을 이 독감의 전파지로 보았기 때문에 이를 스페인 독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연구들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사실 극동에서 건너왔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또 일설에는 미국 - 켄자스 (Kansas)- 이라는 설도 있다) 아마 당시의 의료 보건 및 역학 수준을 고려할 때 정확한 근원지는 사실 알기 어려울 듯 하다.
아무튼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 독감이 스페인에서만 유행한 독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1918년 범유행(pandemic)은 글자 그대로 전대 미문의 범유행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을까?
오늘날 추산으로는 당시 전세계 인구 16억 가운데서 약 1/3인 5억명이 감염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증례당 사망률은 2.5% 이상이며, 최종적인 평균 사망률은 무려 10 %에 달해서 최종적인 사망자 수는 5천만 이상으로 생각하고, 일부에서는 1억 까지 추산하기도 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3- 6% 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이다.
지금까지 전염성 질환 중 단기간 내에 흑사병을 능가하는 사망자 숫자를 기록한 유일한 질환으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한 질환이다. 1차 대전의 사망자 천만명을 능가하는 수치인 것은 물론이다. 그런 연유로 이 인플루엔자 범유행은 '모든 범유행의 어머니 (Mother of all pandemic)' 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역사상 가장 큰 의학적 인종 청소 (the greatest medical holocaust in history) 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이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최소 3차례의 쓰나미처럼 밀려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시간적으로 표현하면 여름 / 가을 - 겨울 / 겨울의 세차례였다.
(세차례의 인플루엔자 파동을 보여주는 그래프 : This image is a work of 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part of the United States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taken or made during the course of an employee's official duties. As a work of the U.S. federal government, the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
이 패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플루엔자는 주로 겨울에 더 심해지는 특징이 있다. 일단 그해 봄에 인플루엔자의 통상적인 유행이 있었고, 초여름에 여러 국가에서 이 질환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9월 이후로는 매우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져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인구의 28%가 감염되었다고 생각되었고, 적어도 50 - 67.5 만명이 사망했다. 일본에서는 2300만명이 감염되고 39만명이 사망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되 아마 14만 명이 사망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영국에서는 25만명, 프랑스에서는 40만명의 사망이 보고되었다.
(1918년 당시에는 엄청난 수의 환자 때문에 이렇게 강당에서 임시 병동을 차리고 환자를 입원시켰다. 이곳은 오클라호마이다. This media file is in the public domain in the United States )
한편 인도에서는 더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사망만 1700만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는 인도 인구의 5% 였다. 이 질환은 심지어 알래스카나 피지나 사모아 같은 태평양의 섬에까지 번져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알래스카에서는 원주민 마을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오지의 마을이 없어지는 일도 있었다.
사실 보통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치사율 (Mortality rate) 가 0.1% 미만이다. 그런데 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이렇게 강한 병원성을 나타내는 메카니즘은 무엇이었을까? 현재까지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의 강한 병원성이 사이토카인 폭풍 (Cytokine Storm) 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이토카인 폭풍이란 우리 몸의 면역 기능을 관장하는 신호물질인 사이토카인과 면역 세포들이 과다하게 반응하여 이로 인해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마디로 강한 면역 체계 때문에 사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특징 때문에 이 스페인 독감은 다른 인플루엔자와는 달리 면역이 강한 젊은 층에서 높은 치사율을 나타낸다.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의 연령대별 사망률 다른 인플루엔자에서는 소아와 고령층의 사망률이 높았지만 이 스페인 독감 당시에는 20 - 40 대의 사망률이 비 정상적으로 높았다. This work is in thepublic domain in the United States )
일단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면 고열 및 몸살 기운 외에도, 점막 및 피하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환자들은 바이러스에 의해 폐 조직이 파괴되고 출혈 및 부종이 발생하게 되며, 2차적으로 발생하는 폐렴에 의해 사망했다.
1918년의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지나고 난 후 수많은 연구자들은 왜 이 스페인 독감이 이렇게 강력하고 치명적이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문제는 바이러스 균주 (Viral strain) 를 분리를 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1998년 알래스카의 영구 동토층에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 사망한 환자의 시체를 발견하면서 시작했다. 환자에 몸에 냉동상태로 보전되어 있는 바이러스의 RNA 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샘플을 이용해 균주를 분리해 나가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2005년에 이르러 이 작업이 완료되어 유전자가 해독되었고, 연구진들은 이 바이러스가 조류 독감을 일으키는 H1N1 subtype 의 하나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연구자 (Taubenberger et al) 들은 이 바이러스가 마치 H5N1 과 비슷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스페인 독감의 바이러스 균주는 아마도 현재 존재하는 4가지 종류의 H1N1 의 조상인 듯 하며 일부 H3N2, 그리고 멸종된 H2N2 균주의 조상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구조는 현대의 조류 독감을 일으키는 고병원성 H5N1 과 많이 닮아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H5N1 이 나중에 결국 매우 심각한 범유행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 복원된 스페인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자 현미경 사진 - 10만배 확대한 사진이다. This negative stained transmission electron micrograph (TEM) shows recreated 1918 influenza virions. This image is a work of 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the image is in thepublic domain. )
이 역사적인 인플루엔자 감염 이후 다행히 현재까지는 이에 견줄만한 인플루엔자는 없는 상태이다. 대개의 인플루엔자는 각종 만성 질환을 가진 고위험군 및 고령과 소아 환자에게 위험하며 매년 25- 50 만 명의 사망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대개의 치사율은 0.05 - 0.1 % 정도이다.
2009 년 범유행 (2009 pandemic, swine influenza)
그러면 이제 현재의 2009년 범유행을 말해보자. 바로 신종 인플루엔자 (Influenza A H1/N1) 이다. 이 인플루엔자는 멕시코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며 - 이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데이터에 근거한다 -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파된 이후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로 전파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조류와 사람을 감염시킨 인플루엔자의 여러 균주들이 돼지에 감염된 후 다시 여기서 유전자가 혼합되어 이 새로운 신종 인플루엔자를 만든 것으로 생각한다. (Antigenic Shift) - 아래 그림 참조.
현재까지 유전자 분석에 의하면 이 신종 인플루엔자는 북미의 돼지에서 발견되었으나 아시아와 유럽의 돼지와 조류, 인간에게서 유행하는 것 같은 인플루엔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 quadruple reassortant virus 라는 특이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Antigenic shift 가 일어나는 메카니즘 :This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because it contains materials that originally came from th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
사실 외국에서 사용하는 돼지 독감이라는 표현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신종 인플루엔자가 더 좋은 표현이라고 보는데, 왜냐하면 돼지 독감이라고 표현하면 사람들이 손씻기나 백신 접종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돼지 고기와는 아무 연관이 없다고 설명해도 아마 소용없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이 인플루엔자는 돼지에게는 그다지 치명적인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스페인 독감은 돼지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이것 말고도 좋은 뉴스는 현재까진 인간에게도 아주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인플루엔자와 호흡기 질환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다행히 현재까지 신종 인플루엔자의 사망률은 이전의 통상적인 인플루엔자와 비슷한 수준 같긴 하지만 지속적인 주의가 필요하다.
2009년의 신종 인플루엔자는 일단 스페인 독감 처럼 강력한 사이토카인 폭풍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이로 보이며, 따라서 다행히 1918년의 치명적인 범유행의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RNA 바이러스의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변화 무쌍하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2009년에 신종 인플루엔자는 주의 깊게 대비해야 한다. 이전 포스트에서 말했듯이 개인 위생에 신경쓰고 위험군에 있는 환자는 우선적으로 백신에 접종할 필요가 있다. 고열과 오한등 증상이 의심되는 환자는 가까운 병원에서 항원 검사 kit 및 확진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고, 필요시 치료도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호들갑을 떨 것도 없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이전에 없던 미증유의 새로운 질환이 생기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기회로 인플루엔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백신 접종 및 개인 위생에 신경쓰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독감이라는 표현 때문에 그냥 감기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고위험군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매년 이 문제는 반복되기 때문에 인플루엔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필요가 있다. 너무 겁낼 필요는 없지만 이에 대해서 미리미리 예방하는 습관은 빨리 들일 수록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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