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전 KGB 요원이자 그 후속 기구인 FSB 의 핵심 인물이었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가 영국에서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더 유명해진 것은 사상 최초로 폴로늄 210 (Polonium - 210) 이 암살 목적으로 쓰인 사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더불어 폴로늄 210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1.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Alexander Litvinenko) 는 구소련 시절이던 1962 년에 보로네즈 (Voronezh) 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81 년 키로프 고등 사관학교 (Kirov higher command school) 에 입학, 1985 년 졸업후 내무국 소속으로 임관했으며 이후 구소련이 해체되기전인 1986년에 KGB에 들어갔습니다.
구소련 붕괴이후 KGB 는 FSB (Federal Security Service : Федеральная служба безопасност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Federal'naya sluzhba bezopasnosti Rossiyskoy Federatsii ) 로 모습을 변경하게 되는데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역시 FSB 에 몸담게 됩니다. 그는 여기서 고속으로 승진해 90 년대 FSB 의 주요 간부로 활약했습니다. FSB 에서 리트비넨코는 대 테러전 및 2차 체첸 전쟁등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그가 왜 영국으로 망명을 하게되었는지 리트비넨코 측 주장에 의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푸틴이 새로운 차기 지도자로 부상할 90 년대 말 리트비넨코는 러시아의 여러 마피아 및 정치 지도자들과 연관된 부패 및 범죄 혐의를 조사중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푸틴과도 연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이외에도 그는 정치 및 경제계 거물이었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Boris Berezovsky) 등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
2. 폴로늄 210 중독
아무튼 새로운 지도자 푸틴의 눈밖에난 리트비넨코는 2000 년 영국으로 망명 했고 이후 푸틴을 비난하는 내용의 글과 인터뷰를 진행해서 더 푸틴의 눈밖에 나게 됩니다. 그리고 2006 년 11월 1일 갑자기 몸에 이상을 느낀 리트비넨코는 영국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를 치료한 의료진들은 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리트비넨코는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3주 후인 11월 23일 사망합니다. 영국의 HPA (Health Protection Agency) 는 그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그가 죽고난 조금 후에 그의 몸에서 상당량의 방사선 동위원소인 폴로늄 - 210 (Polonium - 210) 을 발견하게 됩니다.
의사들은 이 물질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매우 치명적인 물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구하기 매우 어려운 희귀 물질이고 이전에 인명 살상용으로 사용된 적이 없어서 처음 진단하는데 애를 먹은 것입니다. 여기부터 폴로늄 - 210 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면 이렇습니다.
폴로늄은 원자 번호 84에 해당되는 희귀한 원소로써 1898 년 퀴리 부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이 드문 원소는 안정된 동위원소로는 발견되지 않으며 모두 방사성 붕괴를 통해 다른 원소로 변화합니다. 사실 폴로늄 자체도 우라늄에서 납까지 붕괴하는 과정에서 주로 생성됩니다. 폴로늄의 동위원소는 42 가지 종류가 알려져 있는데 특히 폴로늄 210 은 그 중에서도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폴로늄 210 (210Po) 은 그 반감기가 138.376 일로 비교적 빨리 방사성 붕괴를 일으키며 납 - 206 (206Pb ) 으로 변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알파 붕괴만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다른 폴로늄의 동위원소들은 대개 이보다 다양한 붕괴를 일으킴) 알파 붕괴란 방사성 원자핵이 α입자를 내놓고 다른 입자로 변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알파 입자는 두개의 양성자와 두개의 중성자가 결합에너지 28.2 MeV 로 강하게 결합된 안정된 입자로 이는 헬륨 원자핵과 동일합니다. 폴로늄 210 은 두개의 양성자와 두개의 중성자를 방출하고 이보다 질량수가 4 낮은 납 - 206 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알파 입자만 내놓는다는 사실이 테러에 이용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를 좀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미 라돈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라돈 자체보다는 라돈이 붕괴해서 생기는 폴로늄이 더 위험한 원소라고 설명드린바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126054482 참조) 방사선 붕괴에서 발생하는 알파, 베타, 감마 선 모두가 위험하지만 특히 알파 입자의 흐름인 알파선은 아주 강력한 전리 방사선 (Ionizing radiation) 으로 주변 원자와 쉽게 반응해 5 cm 두께의 공기나 혹은 얇은 종이 한장을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투과성이 좋지 않습니다.
즉 알파선은 주변 원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 공기중에서는 먼거리를 이동하기 힘들며 사실 인간의 피부도 투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세포가 알파선에 노출되면 심각한 피해를 입습니다. 따라서 알파선을 내놓는 방사선 동위 원소가 위험할 때는 특히 흡인하거나 체내로 섭취하는 경우입니다. 인체에서는 라돈의 형태로 흡입해도 폐속에서 폴로늄 -> 납의 붕괴 과정을 거치며 알파선을 주변 조직에 투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라돈이 폐암의 중요한 원인 (대개 담배 다음으로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짐) 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알파선만 내놓는 폴로늄 210 은 체내로 섭취되면 무서운 독성을 가진 물질이긴 하지만 반대로 볼펜 안쪽에 숨겨서 들어와도 알아채기 힘듭니다. 투과성이 좋은 감마선과는 달리 알파선은 이 정도면 투과를 못하기 때문에 어떤 방사선 탐지장치도 알아내기 힘듭니다. 그것이 폴로늄 210 을 처음에 쉽게 찾아내지 못한 이유였습니다.
리트비넨코를 암살한 암살자는 아마도 폴로늄 210을 몰래 숨겨와서 음식에 섞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국 경찰의 대테러 부서는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해서 단서를 찾았는데 이들은 미량의 폴로늄 210 을 탐색했습니다. 일단 체내에 들어간 폴로늄 210 은 강력한 알파선의 힘 덕택에 극소량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론적으로는 1 그램의 폴로늄 210 이 2000 만명에 나누어 투여될 경우 1000 만명이 사망하게 됩니다. 폴로늄의 LD50 (median lethal dose 50% 치사량) 은 경구 섭취시에 50 나노 그램이고 흡인시에는 10 나노 그램에 불과합니다.
폴로늄 210 이 알파선만 내놓기 때문에 일단 체내에 흡수되면 밖으로는 알파선을 내놓지 못해 (피부도 통과하지 못함) 진단을 내리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극미량의 폴로늄이 땀을 통해 밖으로 배출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경찰은 리트비넨코가 밀레니엄 호텔에서 폴로늄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당시 언론에는 홍차에 폴로늄을 탄 것으로 보도)
(사망 직전의 리트비넨코)
사실 당국이 폴로늄 210 을 추적한 또 다른 이유는 다른 피해자는 없는지, 그리고 아직도 위험한 수준의 폴로늄이 측정되지 않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직접 피해자인 리트비넨코는 10 마이크로그램의 폴로늄을 섭취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50% 치사량의 200 배에 달하는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다른 누구도 치사량에 달하는 폴로늄에 노출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동물 실험에 의하면 폴로늄에 중독되면 Chelation agent 인 dimercaprol 이 폴로늄을 제거하는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정도로 노출된 사람은 리트비넨코를 제외하곤 없었고 리트비넨코의 경우엔 폴로늄 중독이 너무 늦게 밝혀져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dimercaprol 치료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3. 우리 주변의 폴로늄
이렇듯 무서운 폴로늄은 대량으로는 자연계에 물론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 극 미량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전에 설명드린 라돈이 궁극적으로 폐속에 들어가 폴로늄으로 붕괴합니다. 라돈으로 인해 미국에서만 매년 21000 명 정도가 폐암이 발생하는 것으로 통계학적으로 추정된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사실 별로 유명하진 않지만 라돈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방사선 동위원소 입니다. 천연적으로 존재한다고 꼭 안전한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 폴로늄은 담배에도 존재합니다. 비료등에 포함된 방사선 동위원소가 뿌리에서 흡수되어 담배잎에 축적되기 때문에 담배를 피거나 혹은 담배를 피지 않더라도 우연이든 필연이든 담배 연기를 흡입하면 폐속으로 폴로늄 210 이 들어갑니다. 폴로늄 210 은 이전에 설명드린 플루토늄 처럼 폐속에 흡인될 때 제일 치명적입니다. 50% 치사량도 섭취시엔 50 ng 이지만 흡인시엔 10 ng 에 불과합니다.
담배에는 수많은 독성물질이 존재하지만 특히 방사선 동위원소로 중요한 것은 납 - 210 과 폴로늄 - 210 등 입니다. 실제로 담배의 폐암 발생 기전 가운데 하나는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놀랍지만 바로 방사선 동위원소 때문입니다. 폴로늄을 치사량 만큼 흡인하지 않더라도 극미량씩 장기간 담배연기와 함께 흡인하면 폐암이 증가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폴로늄은 지구의 물과 토양에도 극미량 존재하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적인 식품, 특히 해산물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인체에도 물론 극미량이 존재하고 있으나 폐에 존재하는 폴로늄 동위원소를 제외하고 그 외의 신체부위에서 암발생율을 의미있게 증가시킨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011 년 3-4 월경 후쿠시마 1 원전에서 유출된 극미량의 방사선 동위원소가 한국에서도 비와 함께 떨어진다는 보도가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이 비를 정제해서 마시더라도 방사선 동위원소에 의한 피해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담배를 장시간 피는 경우 의미있는 폐암 발생 증가가 가능하며 이중 일부는 방사선 동위원소에 의한 것입니다.
흡연 습관 및 담배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담배를 재배하는 지역의 방사선 동위원소 레벨에 따라 차이) 일반적으로 담배를 하루에 1.5 갑 정도 1년간 피게 되면 60 - 160 mSv/year 수준의 내부 방사선 피폭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통상적인 자연 방사선 피폭량인 2-3 mSv/year 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며 사실 일반적인 원자력 발전소 근무자의 1년 허용 피폭량인 10 - 20 mSv/year 보다 높습니다. 심지어 현재 후쿠시마 1 원전에서 비상 근무를 하는 근무자의 피폭 허용치에 근접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로늄은 2006 년의 리트비넨코 홍차 테러 사건 이후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 아마 순수한 폴로늄 - 210을 정제한 점으로 봐선 이 테러를 계획한 측은 일반적인 범죄 집단이 아니라 국가가 배후에 있다는 추정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위험한 물질을 그냥 정제하진 못하니까요 - 실제로는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드물지 않은 물질이며 여러분이 담배를 피거나 혹은 남이 핀 담배연기를 흡입할 때 가장 위험한 경로인 폐로 흡인되게 됩니다. (물론 라돈의 붕괴과정에서도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방사선 내부 피폭이 걱정된다면 라돈에 대한 대비 못지 않게 금연이 중요합니다. (일본 여행은 들어가지 말라는 지역을 제외하곤 안전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식품도 마찬가지) 우리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폴로늄 - 210 은 어차피 피부도 투과할 수 없기에 걱정할 필요가 대개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크게 간과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피부가 강력한 면역학적 방벽이라는 것입니다. 왠만한 알파선이나 자외선은 막아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서 노파심에서 이야기하면 그래도 못믿겠다는 분이 계실까봐 아래 읽어볼만한 내용들을 링크로 (물론 영어지만) 걸었으니 흥미있으신 분들은 읽어보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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