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시 국민 연금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부분은 국민 연금을 국가가 지급 보증, 다시 말해 기금이 떨어지더라도 국가에서 가입자에게 이의 지급을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내용이 많은 분들에게 의외로 다가오실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공단에서 마치 국가가 지급 보증을 하는 것처럼 광고한 게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아래의 문구는 어떻게 된 것일까요 ?
( 출처 : 국민연금 관리 공단 OX 퀴즈
위의 문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마치 국가가 지급 보장을 하는 것처럼 제목은 되어 있으나 본문에는 법적으로 지급 보증의 책임을 진다는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말장난 같기는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냥 국민연금법을 통해 연금 재정을 미리 예측해서 대비해서 연금이 반드시 지급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가 그 지급을 법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좀더 확실한 비교를 위해서 이야기 하면 국민 연금법과 공무원 연금법을 비교해야 합니다.
공무원 연금법 :
"제65조(비용부담의 원칙) ① 제42조에 따른 급여 중 퇴직급여 및 유족급여(제56조제1항제2호·제3호에 따른 유족연금, 같은 조 제4항에 따른 순직유족연금, 제61조제1항에 따른 유족보상금 및 제61조제3항에 따른 순직유족보상금은 제외한다. 이하 이 항에서 같다)에 드는 비용은 공무원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이 경우 퇴직급여 및 유족급여에 드는 비용은 적어도 5년마다 다시 계산하여 재정적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 <개정 2011.8.4>
② 제34조에 따른 급여에 드는 비용과 제42조에 따른 급여 중 공무에 따른 질병·부상·장애 또는 사망 및 순직유족급여에 드는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③ 제42조에 따른 급여 중 퇴직수당의 지급에 드는 비용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다.
④ 공단의 운영에 드는 비용은 국가가 보조할 수 있다."
라고 명시하여 공무원 퇴직 연금을 포함한 퇴직급여와 그에 준하는 연금/보상금의 급여를 공무원/국가/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공무원 급여는 국가와 지방 자체 단체가 부담하므로 실제로는 공무원 연금과 그에 준하는 급여는 모두 국가에서 지급을 보장하도록 법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학 및 군인 연금도 국가에서 지급을 보장합니다. 그런데 국민 연금은 조금 다릅니다.
국민연금법 :
"제50조(급여 지급) ① 급여는 받을 권리가 있는 자(이하 "수급권자"라 한다)의 청구에 따라 공단이 지급한다.
② 연금액은 지급사유에 따라 기본연금액과 부양가족연금액을 기초로 산정한다."
라고 명시되어 일단 급여 (연금) 은 공단이 지급의 책임을 지고 있으며 국가는 국민연금 공단과 건강 보험 공단이 국민 연금 사업을 관리 하는데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할 수는 있지만 ( 제 87 조, 즉 공단에서 모자란 금액은 국가에서 보조할 수 있음)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연금의 지급 자체를 보장할 의무를 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연기금이 바닥나면 국가에서 세금을 올리던 국채를 발행하든지 해서 그 부족분을 메꿔야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죠. 단 비용의 일부를 보조할 수는 있게 되어 있지만 국민 연금 이외의 다른 연금과 뭔가 형평성이 좀 어긋나 보이는 조항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사실상 직장인의 경우 보험료 납부는 강제인데 지급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면 형평성의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고 결국 새누리당 보건 복지 위원회 의원들과 보건복지부, 그리고 야당은 지급 보장을 명문화 하는 방향으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찬성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미 2012 년 7월 23일 남인순 의원외 20 인이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의하면
제안 이유 :
현행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국민연금사업을 보건복지부장관이
관장하도록 하고 실제 사업은 국민연금공단이 위탁하여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연금사업에 대한 책임이 궁극적으로 국가에 있음을 전
제하고 있으나, 국민연금 급여 지급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음.
최근 국민연금기금이 애초 예상한 2060년보다 7년 앞선 2053년에
고갈 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국민연금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크게 나타나는 현 시점에서 연금 지급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음.
사회보험을 최초로 도입한 독일의 경우 사회법전 제6편(공적연금보
험) 제214조(유동성 보장)에 연기금이 부족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도
록 명시가 되어 있음.
이에 국가가 「국민연금법」에 따른 급여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급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국민들
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고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것임
(안 제1조의2 신설).
국민연금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1조의2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제1조의2(국가의 책무) 국가는 이 법에 따른 급여의 안정적·지속적인
지급을 보장한다.
(개정안 : http://likms.assembly.go.kr/bill/jsp/BillDetail.jsp?bill_id=PRC_S1O2B0P7K2J3H1L8V2V5B1P3L6S1H8 )
라는 법안이 올라와 있지만 보건 복지부가 반대하고 여야도 합의를 이루지 못해 통과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기초연금과 연결되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여야 및 보건 복지부가 찬성하는 선에서 법안이 통과될 것 처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 및 기획재정부 등이 다시 제동을 걸었고 이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해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나라에서 당연히 지급보증을 하는 줄로 잘못 알고 있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법적인 지급 보증을 지금까지 한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하지 않기 위해서정부에서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시 논란이 커졌습니다. 여기엔 물론 공단이 당연히 나라에서 지급하는 것 처럼 광고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고를 잘 읽어 보면 국가에서 법적으로 그 지급을 책임진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음. )
반대하는 측 의견은 국민 연금의 지급 보장을 하면 장래 국민 연금의 부채가 국가 부채로 잡히고 이로 인해 국가 신인도 하락 /금리 인상의 부작용과 더불어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연금 개혁 (즉 보험료를 올리거나 혹은 급여를 줄이는 것 ) 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남인순 의원과 반대하는 윤석명 한국 보건사회연 연금 연구센터장의 지상 설전이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기사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50396651 )
위의 기사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전 '국가 부채 129 조원 증가 ? 왜' 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한국은 현금주의 회계 방식과 발생주의 회계를 동시에 발표하고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185700850 참고 ) 현금주의 회계 에서는 국민 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 연금을 모두 합쳐도 국가 부채가 증가하지 않지만 발생주의 기준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발생주의 회계에서는 미래 국가가 지급을 해야 하는 모든 것 - 예를 들어 연금 - 도 그 발생 시점에서 부채로 잡힙니다. 우리 나라의 발생주의 회계 기준 국가 부채는 2012 년 기준으로 902 조 4 천억원이고 현금주의 회계 기준은 443.8 조원입니다. (이 내용은 이전 포스트 참조)
사실 개인적인 생각은 국가에서 지급 보증을 하던 뭘하든 어차피 돈이 없다면 지급 못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또 법이라는 것은 연금 고갈 추정 시점인 2060 년 까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에 연연해서 진짜 더 중요한 문제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지금 부터 지속 가능한 연금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지금의 초고령화 및 저출산을 해결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소수의 경제 활동인구가 다수의 노령 인구를 부양하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고령화 시대에 노인 인구를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 보전 수단을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마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결국은 보험료를 올리고 급여는 낮추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이 복잡한, 그리고 근본적으로 노령화/저출산 이라는 문제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은 국민 연금 문제가 국가에서 지급 보증 한다/ 하지 않는다는 문제로 계속 논쟁을 벌이면 결국 양쪽 모두 의도치 않은 결과 - 국민 연금에 대한 국민적 불신 고조 - 만이 생기지 않을 까 우려됩니다. 국민 연금 개정안의 의도나 이에 반대하는 의견 역시 모두 일리가 있지만 이런식으로 논쟁만 벌이다 보면 결국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몰릴 수 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는 지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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