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국에서 경제 부분의 최대 화두는 아마도 엔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추경이나 금리 인하 등 다른 이슈를 다 묻어버릴 만큼 큰 화두가 되는 이유는 수출 의존도가 크고 일부 항목에서 일본 제품과 경합을 벌여야 하는 우리의 특징상 엔저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만큼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2012 년에 엔저가 점차 가시화 되었을 때 엔저가 과연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의견들이 나왔던 게 기억납니다. 당시에는 자동차 등 일부 항목을 중심으로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란 의견 부터 실제로는 제한 적인 영향만 있을 것이다란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달러당 100 엔 수준까지 엔저가 도래한 시점에서는 일단 엔저가 한국 경제에 부담이 되긴 한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정도에는 여기 저기서 시각차가 있는 듯 합니다.
일단 체감적으로 희비가 가장 엊갈리는 분야는 누가 뭐래도 자동차 입니다. 2013 년 1-4 월 사이 현대차의 국내 공장 수출 수량은 38만 5952 대로 전년 동기의 43 만 8511 대로 작년 동기 대비 12% 정도 감소했고 기아 차 역시 5% 정도 감소를 보인 반면 도요타의 경우 2012 년 4월에서 2013 년 3월 사이 2012 년 회계 년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7 배 정도 증가한 1 조 3208 억엔 (약 14 조원) 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두 회사의 주가도 엇갈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외에 일본과 한국의 경쟁 종목이라고 할 수 있는 철강 및 조선 업계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해당 업종은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엔저라는 복병을 만나 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엔저보다 해당 산업의 경기가 부진한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업은 호황기에 너무 지나치게 설비가 과다 투자되었다가 현재는 수요가 급감한 것이 더 중요한 부진의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현재 한국의 경쟁 상대로는 일본 보다는 중국이 더 부상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따라서 엔저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주 영향이 없다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엔저가 한국 경제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말하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인지가 논쟁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엔화는 지난 2012 년 달러당 9 월 13일에는 77.12 엔이었지만 현재는 (2013 년 5월 15일) 102 엔까지 20% 이상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이것이 반드시 일본 경제에 플러스 요인으로만 작용하진 않겠지만 당장에 수출 기업에 유리한 호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 기업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일부 종목에서는 일본의 수출이 늘어나는 만큼 한국의 수출이 줄던지 아니면 수익이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의 경우에는 영향이 좀 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이미 상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한 IT 부분에서는 영향이 제한적이나 디스플레이등 일부 종목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가지 가정을 토대로 과연 엔저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이런 저런 보고서나 추정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무역 협회에 의하면 다른 조건이 다 같다고 볼 때 엔화 / 원화 환율이 10% 떨어지지면 한국의 수출은 4.1% 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물론 사실은 다른 조건들 - 예를 들어 선진국 경제 성장률이나 원자재 가격, 원 달러 환율 등 - 이 모두 계속해서 동일하고 엔/원화 환율만 변동할 가능성이 낮기는 하지만 아무튼 엔저 현상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꽤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리 금융 연구소 같은 민간 금융 연구소에서는 올해 연평균 달러당 엔화 환율이 100 엔, 달러당 원화 환율이 1100 이 되면 조선 업종의 영업 이익은 1.8 조원이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여기에 달러당 엔화 환율이 110 엔, 원화는 1000 원이 되면 영업 이익 감소가 5.2 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엔화 가치가 그렇게 떨어지는데 원화 가치만 단독으로 상승하는 경우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는 합니다.
한편 삼성 경제 연구소는 연내 엔화 환율이 달러당 100 엔, 원화 환율이 달러당 1000 원시 수출이 2% 감소하고 경상 수지가 125 억 달러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는 달러당 원화 환율이 올해 안으로 1000 원 근처로 간다는 것은 조금 상상하기 힘든 상태이지만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긴 합니다. 왜냐하면 작년 말에도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지금쯤 원화가 달러당 1050 - 1100 원 대에 머무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죠. ( http://blog.naver.com/jjy0501/100170366825 참조) 물론 당시에도 환율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특히 한국처럼 외부 변수에 의한 변동이 심한 국가는) 어렵다고 이야기 한바 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과도한 엔저 경계론을 주의할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엔/원화 환율이 지금보다 더 낮았던 시대에도 한국의 수출은 연간 10% 씩 증가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실 2008 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에는 원화 가치가 높고 엔화 가치는 낮은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률은 지금보다 더 높았습니다.
(지난 5 년간 100 엔당 원화 환율. 2008 년 5월 만 해도 지금보다 엔저가 훨씬 심했지만 당시 엔저 때문에 위기라는 의견은 거의 없었음)
그럼에도 2013 년 경제에 엔저 위기론이 부각되는 것은 2007 년 이전과는 달리 글로벌 경제가 부진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안좋은 시기에 나타나는 악재는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일 테니까요.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 생산기지를 많이 확보하고 이전보다 훨씬 경쟁력이 강화되었다곤 해도 한국에서 해외로 수출 비중이 매우 높다보니 환율에 꽤 민감하게 반응 하는 것도 이해를 못할 반응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보일 만한 문제인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낮은 100 엔당 원화 환율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죠. 물론 이게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에서만 호들갑인게 아니라 해외에서도 최근에 엔저로 인해 한국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될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으니까요.
아무튼 개인적인 의견 - 이 의견이 전문가 의견이 아니라는 점은 읽으시는 분들이 감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직업상 이런 주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전문직 종사자이기 때문에 투자에 참조할 만한 수준의 의견이 아닙니다 - 은 과연 지금 엔저가 언론에서 부각시키는 것만큼 위기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에 악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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