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 즉 가청 범위 (audible range) 의 범위는 동물마다 다 차이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경우 가청 범위 혹은 가청 주파수 대역이란 대략 16 - 20000 Hz 정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가끔 이 이상 영역도 감지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외 동물이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의 영역은 상당히 다양해서 사람은 감지할 수 없는 높은 주파수대의 음파를 감지하는 동물들도 존재합니다. 사실 상당수 포유류가 인간보다 높은 주파수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개의 경우 인간보다 높은 주파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개가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내는 호루라기 같은 것도 존재합니다. 개의 최대 가청 범위는 60 kHz 까지 도달할 수 있으며 초음파를 통해 주변을 탐지하는 박쥐 가운데는 200 kHz 라는 상당히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종도 존재합니다. 물속에 사는 돌고래 역시 최대 160 kHz 라는 높은 주파수를 감지하는 종이 있다고 합니다. 때때로 곤충 가운데도 높은 주파수의 가청 범위를 가진 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역대 최고 주파수 감지 동물은 정말 의외의 종류로 나타났습니다. Strathclyde 대학 (University of Strathclyde ) 의 Dr James Windmill 과 그의 동료들에 의하면 꿀벌부채명나방 (Greater Wax Moth : Galleria mellonella ) 는 무려 300 kHz (즉 300,000 Hz) 의 주파수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꿀벌부채명나방 Galleria mellonella dorsal view Author : Simon Hinkley & Ken Walker, Museum Victoria )
꿀벌부채명나방은 한국에도 서식하는 나방으로 그 유충은 꿀벌이나 야생 말벌류의 벌집에 기생하기 때문에 인간 입장에서는 해충으로 생각되는 종류입니다. 몸길이 2 cm 수준의 이 작은 나방이 이렇게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나방의 천적인 박쥐 때문입니다. 박쥐는 어둠속에서도 초음파를 이용한 반향정위 (echolocation) 을 사용해서 - 즉 소리가 물체에 반사되는 것을 이용해 위치를 알아냄 - 장애물을 피해 비행할 뿐 아니라 먹이도 찾아냅니다. 나방이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이에 따른 진화적 군비 경쟁의 결과로 여겨진다고 연구팀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박쥐의 존재를 탐지하면 이 나방은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죠. 반대로 박쥐는 더 높은 주파수를 진화 시켜 먹이인 나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화적 군비 경쟁이 이뤄지면 결국 양측 모두 한계에 이를 때까지 엄청나게 높은 주파수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명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팀은 박쥐가 내는 주파수의 최대값이 212 kHz 인데 왜 이 나방은 300 kHz 까지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나방이 더 높은 주파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진화적 군비 경쟁에서 다소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자연계에서 가장 높은 가청 주파수를 가진 동물 하면 박쥐나 돌고래를 먼저 떠올리게 마련인데 챔피언의 자리는 전혀 엉뚱한 동물이 차지한 점은 재미있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 H. M. Moir, J. C. Jackson, J. F. C. Windmill. Extremely high frequency sensitivity in a 'simple' ear. Biology Letters, 2013; 9 (4): 20130241 DOI: 10.1098/rsbl.2013.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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