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농업이 시작된 직후 인류의 유전자가 채식에 적응했다?



(This graphic shows the frequency of a vegetarian allele and a seafood/meat allele, two versions of the same gene, over the past 30,000 years in European populations. The trends were opposite for the two alleles and both took a turn after the Neolithic revolution. Credit: Kaixiong Ye/Provided)



 인류의 식생활은 농경이 시작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전에는 가공되지 않은 다양한 식물성 음식이나 혹은 동물성 음식이 주종을 이뤘던 반면 1만년 전부터 농경이 시작되면서 몇 가지 종류의 곡물에 주로 의존하게 됩니다. 수렵 채집인에 비해서 심하게 편식을 하게 된 셈이지만, 대신 비교적 안정적인 식량 공급과 더불어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되어 문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본래 먹던 것과 다른 음식에 의존하게 되면서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던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의 유전자 관련 연구는 이 시기에 인류가 이런 식단에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본래 먹지 않던 우유를 먹었던 그룹에서 빠르게 유당을 분해해서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먹을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 것입니다. 





 포유류 가운데 성인이 되어서도 유당을 분해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이는 유전자에서 발생한 돌연변이에 의해 가능한 일입니다. 당연히 곡물 위주의 식단을 선택하면서 이와 비슷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큽니다. 


 코넬 대학의 연구팀은 고인류의 유골에서 채취한 3만년에서 2천년 전까지의 DNA를 분석해서 유럽인이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 유전자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추적했습니다. 이들이 주목한 유전자는 지방산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3종류의 FADS (Fatty Acid Desaturase) 유전자입니다. 


 이 유전자의 역할은 오메가 - 3 및 오메가 - 6 지방산 가운데서 긴 사슬을 지닌 긴사슬 다불포화지방산 LCPUFAs(Long Chain PolyUnsaturated Fatty Acid)을 합성하는 일입니다. 본래 이 유전자는 고기와 물고기를 통해서 충분한 양의 지방산을 섭취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활성화될 필요가 없었지만, 식단이 곡물 위주로 바뀌게 되면서 상당히 중요해집니다. 특히 FADS1 유전자의 발현이 필요합니다. 


 연구팀은 1만년 - 8천년 정도 시점에서 이 유전자에 급격한 변화가 와서 거의 0%에 근접했던 FADS1 활성 유전자의 빈도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즉, 곡물 위주 식단으로 바뀌면서 유전자 역시 여기에 맞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식단에 적응하는 것은 현재처럼 생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기 때문에 매우 강한 진화압으로 작용해서 빠르게 진화가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제가 쓴 책인 과학으로 먹는 3대 영양소에서 우리가 탄수화물이 중심이 된 곡물 위주의 삶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이를 지지하는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유전자 수준에서 증명했다는 것은 더 의미가 있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곡물 위주의 식생활 습관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적응을 한 것과 바람직한 것은 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원시인 식단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인류의 몸이 곡물 위주의 식단에 적응을 못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생존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적응은 생각보다 매우 빠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은 FADS1 유전자가 심혈관 질환 등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응이라는 의미가 반드시 좋은 뜻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이 연구 결과는 앞으로 곡물 위주의 식단을 가지지 않는 인구 집단 - 원시 생활을 영위하는 원주민이나 혹은 유목민 등 - 과의 비교 등 흥미로운 주제를 생각나게 합니다. 동시에 이런 식으로 변화된 유전자가 여럿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추적하는 것도 흥미로운 미래 연구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고 


Kaixiong Ye et al. Dietary adaptation of FADS genes in Europe varied across time and geography, Nature Ecology & Evolution (2017). DOI: 10.1038/s41559-017-0167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