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유전자 가설(thrifty gene hypothesis)은 인류가 최근에 왜 비만으로 고통받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대중적인 가설입니다. 이에 의하면 인류의 조상은 상당히 자주 기근과 굶주림의 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현재의 우리들처럼 슈퍼에서 음식을 어느 때나 살 수 있던 시절이 아닌 만큼 굶주림의 위기는 단순히 불편함을 넘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였습니다.
사실 이 점은 단순히 선사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많은 농경 문명이 현대화 되기 전까지 겪어야 했던 위기였기 때문이죠. 동시에 아직도 일부 가난한 국가와 내전 상태인 국가에서는 기근의 위험이 완전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급적 많은 지방을 축적해서 기근 상태를 오래 버틸 수 있는 쪽이 생존에 유리할 것입니다. 사실 동물에서 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죠. 따라서 이렇게 기아 상태에 대비하기 위한 진화압이 우리가 에너지가 풍부한 상태에서는 쉽게 지방을 축적해서 살이 찌는 방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절약 유전자 가설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 몸에는 많은 절약 유전자가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가설에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꽤 그럴 듯 하지만, 그렇다면 왜 비슷한 환경에서 모두 비만이 되지 않는가라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먹을 게 풍부한 환경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지만, 그 중 일부에서만 비만이 됩니다. 물론 여기에는 주변 환경 및 식생활 습관 (예를 들어 소득 수준이 비슷한 상황에서도 일본과 미국의 비만 유병률은 엄청난 차이가 있음)의 차이도 있지만, 인간의 유전적 성향이 무조건 비만을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중국 과학원 유전학 및 발생 생물학 연구소 (Chinese Academy of Sciences Institute of Genetics and Developmental Biology in Beijing)의 과학자들은 체질량 지수 (BMI)에 관련된 SNPs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 115개의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 데이터는 전장유전체 연구 (GWASs, genome-wide association studies)인 HapMap 컨소시움과 1000 게놈 프로젝트 자료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 결과 9개의 유전자 가운데 4개가 비만을 선호하는 유전자이고 5개는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유전자였습니다. 이는 BMI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특별히 비만을 더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연구팀은 이 결과가 절약 유전자 가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연구는 Cell Metabolism에 실렸습니다.
다만 아직 비만에 관련된 모든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진 것이 아닌만큼 이것만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보입니다. 과연 비만을 일으키는 유전적인 배경과 진화적인 과정이 어떤 것일지 알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상태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참고
Guanlin Wang et al, Analysis of Positive Selection at 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s Associated with Body Mass Index Does Not Support the "Thrifty Gene" Hypothesis, Cell Metabolism (2016). DOI: 10.1016/j.cmet.2016.08.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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