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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도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유전자는 우리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 세대 역시 그 이전 부모세대에서 유전자를 물려받죠. 결국 우리가 가진 유전자는 우리의 조상들이 물려준 것입니다. 이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유전자가 여기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이전부터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HGT) 이라는 현상을 관찰한 바 있습니다.  이는 한 생물체에서 다른 생물체로 유전자가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인류에게 별로 유익한 일이 아니지만,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박테리아가 항생제 내성이 없는 박테리아에게 내성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플라스미드(plasmid)의 형태로 전달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유전공학이나 유전자 조작 작물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인간이 인위적으로 한 수평적 유전자 이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전달 받아 내성을 보유하는 박테리아의 모식도 

 이런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박테리아보다 더 고등한 생물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광합성을 하는 에메랄드 푸른 민달팽이(Elysia Chlorotica)가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 http://jjy0501.blogspot.kr/2015/02/Photosynthesis-in-Sea-Slug.html 참조) 이 민달팽이는 자신이 주식으로 삼은 조류(algae)에서 엽록체를 흡수한 후 다시 먹이에서 유전자를 흡수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합니다. 

 이렇듯 유전자는 부모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일반적이긴 하나 일부 예외는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연구에 의하면 이와 같은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흔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알라스테어 크리스피(Alastair Crisp from the University of Cambridge, UK)와 그의 동료들은 여러 동물에서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얼마나 흔하게 일어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그룹의 동물들을 조사했습니다. 이들은 초파리 12종, 선충류(nematode) 4종,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 10종의 유전자를 서로 비교했습니다. 

 연구팀은 각각의 동물들의 유전자 가운데서 위에서 설명한 외부 유전자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서로 비교했습니다. 만약 다른 동물에서 온 유전자들이 있다면 서로 비교하므로써 실제로 외부에서 획득한 유전자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연구팀에 의하면 ABO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처럼 이미 잘 알려진 외부 유전자가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외부 유전자들은 대사 과정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17개의 이전에 알려진 외부 유전자를 인간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128개나 되는 외부 유전자를 인간 유전자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발견된 외부 유전자들 중 일부는 지방 대사에 관여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면역 반응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아미노산 대사와 단백질 변형, 그리고 항산화 활동에 관련된 유전자도 있었다고 하네요. 

 이런 외부 유전자를 실어나른 장본인들은 대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들이라고 합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바이러스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50 개 이상의 외부 유전자를 영장류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유전자들에 대해서 정말로 외부 기원인지에 대해 앞으로 여러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많은 외부 유전자가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팀의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 삽입된 유전자는 사실상 다른 유전자와 함께 오랜 세월 후손에게 전달되어 기원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은 아마도 생물체의 진화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 즉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유전자가 전달 - 을 뒤집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쉽게 수평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등한 다세포 동물일수록 더 진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끔씩 삽입되는 새로운 외부 유전자 역시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모릅니다 그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생명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1. Alastair Crisp, Chiara Boschetti, Malcolm Perry, Alan Tunnacliffe, Gos Micklem.Expression of multiple horizontally acquired genes is a hallmark of both vertebrate and invertebrate genomes. Genome Biology, 2015; 16 (1) DOI:10.1186/s13059-015-06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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