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CC0 Public Domain)
매년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나 많은 임야를 태우고 환경 파괴와 재산 손실은 물론 심한 경우 인명 손실까지 일으킵니다. 특히 이런 산불의 대부분이 인간의 부주의로 인한 잘못이기 때문에 담뱃불이나 화기 취급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불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자원 순환을 돕고 일부 식물의 번식을 돕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화석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라배마 대학의 타케히토 이케지리 박사(Dr. Takehito Ikejiri)가 이끄는 연구팀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불의 흔적을 찾아서 데본기 지층을 연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산불이라는 것은 육지 식물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식물이 육지에 상륙한 후 한참 후에야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오래된 일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데본기 지층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산불의 기원이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전인 3억 8300만년 전이라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연구팀은 지상 식물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불이 붙는 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초기 지상 식물은 습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이었고 좀처럼 불이 붙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진화했습니다. 그러다가 뿌리를 통해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관다발 식물이 진화하면서 물가에서 떨어진 장소로 점점 식물이 퍼지게 됩니다. 데본기는 초기 관다발 식물이 진화해서 다양화 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만큼 초기 산불의 증거가 이 시기 지층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초기 관다발 식물은 현재 볼 수 있는 형태의 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목재가 탄 흔적인 숯의 형태를 지층에 남길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데본기 다음 시대인 석탄기 양치 식물에서는 화재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데본기 초기로 올라갈수록 그런 흔적을 찾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따라서 연구팀은 지층에서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의 흔적을 찾아 산불의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이 물질은 높은 온도에서 농축된 벤젠 고리 물질이므로 탄화수소가 고온에 노출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데본기 지층에서 찾아낸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분자를 근거로 연구팀은 이미 데본기 중반에 초기 관다발 식물에 의한 숲과 관목 지대가 형성되었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특히 데본기 후기인 3억 7200만년에서 3억 5900만년 전 사이에는 서유럽, 그린란드, 북미를 합친 대륙인 유라메리카 (Euramerica) 대륙 넓은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이 시기에 내륙으로 식물이 진출해 초기 숲을 형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연구 결과가 옳다면 산불의 시작은 사지동물의 육지 상륙보다 더 오래 전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초기 산불로 희생된 동물은 대부분 아주 작고 원시적인 절지동물이나 무척추동물이었습니다. 물론 숲과 초원을 구성하는 식물도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화마의 위력은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1-05-earliest-forest-evidence-ancient-tree.html
Man Lu et al. A synthesis of the Devonian wildfire record: Implications for paleogeography, fossil flora, and paleoclimate, Palaeogeography, Palaeoclimatology, Palaeoecology (2021). DOI: 10.1016/j.palaeo.2021.110321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