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하다보면 다양한 분들이 댓글을 달게 마련인데, 잘못 답글을 달면 싸움이 날수도 있고 시간 관계상 답글을 다 보기도 어려워 일일이 답글을 달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댓글란에서 싸움이 나지 않는 건 아니죠. 그런데 꼭 싸움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재미있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처음 글을 쓰신 분의 요지는 아마도 콩이 진화해서 팥이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본문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즉, 진화론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첫 댓글에도 있듯이 사실 팥은 콩과 식물입니다.
아마도 우리 속담의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에서 콩은 팥이 아닌 다른 콩과 식물을 이야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속담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오해의 여지도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그러면 콩이 진화해서 팥이 될 순 없는 것일까요?
재미있다고 한 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팥은 과거 Phaseolus angularis로 불리기도했는데 현재는 동부속 (Vigna)에 속한 것으로 분류합니다. 학명은 Vigna angularis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BC4000년에서 BC2000년 사이 작물화되어 널리 재배되었습니다.
참고로 동부속에 속하는 다른 콩과 작물로는 검은 렌틸콩 혹은 검은 녹두로 불리는 Vigna mungo (Black gram), 중국콩으로 알려진 동부콩(CowPea, Vigna unguiculata), 그리고 우리에게 친숙한 녹두 (Mung Bean, Vigna radiata)가 있습니다. 팥은 red bean 혹은 small red bean이라는 명칭처럼 붉은 색이고 검은렌틸콩은 검은색이며 녹두는 이름처럼 녹색입니다. 근연 관계에 있는 만큼 색상과 크기는 달라도 기본 형태는 흡사합니다.
(위에서부터 팥, 녹두, 검은 렌틸콩, 출처: 위키피디아)
콩과 식물은 19400종에 달하며 사실 벼과 식물 (밀, 대나무, 밀, 보로, 귀리, 기장, 수수, 사탕수수, 옥수수, 갈대 등이 속함) 다음으로 작물화가 많이 진행된 식물입니다. 콩목(Fabales)혹은 장미군에 속하는 식물의 진화는 백악기 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콩과 (Fabeceae)에 속하는 식물의 등장은 대략 5600만년 이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 콩목이 진화한 후 이들은 빠르게 적응 방산해 5000만년에서 5,500만년 전에는 세 가지 큰 분지인 실거리나무아과 (Caesalpinioideae), 미모사아과 (Mimosoideae) , 콩아과 (Faboideae)로 나뉘게 됩니다. 이중에서 콩아과는 14000종의 식물을 포함하는 가장 큰 과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등장 이전에 널리 번성하다가 인류가 문명을 이루면서 여러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작물화 됩니다. 탄수화물은 물론 단백질과 지방, 기타 영양소가 풍부한 씨앗을 가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다양한 콩과 식물이 작물화되면서 이름도 제각각으로 붙여졌는데, 온갖 종류의 이름 때문에 콩이 아닌 다른 작물로 오해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팥이나 녹두가 아마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팥은 아마도 동아시아에서 작물화 된 것으로 보이는데, 초기에는 평범한 야생 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팥의 조상 가운데서 작물화에 중요한 특징 - 빨리 자리고 수확하기 편하며 큰 씨앗을 얻는 등 - 을 가진 것들을 선택해 작물화 시켰으니 사실 콩에서 팥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가 아닌 셈입니다. 고대인이 야생 콩을 가져와 키워서 여러 세대가 흐른 후 우리가 아는 팥이 되었습니다.
물론 더 이전에는 검은 렌틸콩, 녹두, 중국콩, 팥의 공통 조상이 존재했겠죠. 작물화는 이들이 각각의 종으로 분리된 후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생물학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담의 뜻은 앞서 말한 것처럼 문제 없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한 세대만에 야생콩이 팥이 된 건 아닌데다 속담의 뜻은 그것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콩과 식물의 진화와 작물화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속담과는 반대되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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