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출범 예정인 신기후체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대책이 처음 나왔습니다. 최종안을 도출한 것은 아니고 1-4안까지 네 가지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수렴 과정을 거쳐 확정하겠다는 계획인데, 선진국들에 비해서 상당히 늦은 발표이지만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선진국 포지션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보다 문제된 것은 이제까지 우리 정부가 공언한 것과는 다른 매우 소극적인 목표를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 이전에 공언한 온실 가스 감축안
본래 한국 정부는 전통적으로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수출 주도형에다 중화학 공업 위주의 특징을 가진 한국 경제의 특성상 온실 가스 배출량이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시간에 이 구조를 변경할 순 없는 일이고 여기에 드는 비용을 기꺼의 감당할만큼 기업이나 국민 대다수 모두 기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라 정부의 소극적 대응 역시 예상할 수 있는 수순입니다.
하지만 이 예측을 깬 것이 바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였습니다. 갑자기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한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저탄소 녹색 성장을 한다면서 이렇게 과감한 선언을 했고 이는 저탄소 녹색 성장 기본법에도 명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이는 말뿐이었습니다.
2014년 1월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서 2020년 BAU인 7억7160만t의 30%를 감축해 5억4300만t으로 배출량을 억제하겠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정부는 이제와서 이 약속을 완전히 뒤집었던 것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한다면 처음부터 BAU 대비 30% 감소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습니다.
- 새로운 post 2020 장기 감축 목표
일단 정부는 올해 6월에 4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우선 정부는 2030년 기준 BAU
를 8억 5060만톤(CO2-e. 이산화탄소 환산 온실 가스라는 의미로 이하 모든 내용은 이 단위임)으로 보고 각각의 감축안을 제시했습니다.
를 8억 5060만톤(CO2-e. 이산화탄소 환산 온실 가스라는 의미로 이하 모든 내용은 이 단위임)으로 보고 각각의 감축안을 제시했습니다.
▪ (제1안) BAU 대비 14.7% 감축(감축후 배출량 726백만톤, '12년 대비 +5.5%)
▪ (제2안) BAU 대비 19.2% 감축(감축후 배출량 688백만톤, '12년 대비 0%)
▪ (제3안) BAU 대비 25.7% 감축(감축후 배출량 632백만톤, '12년 대비 △8.1%)
▪ (제4안) BAU 대비 31.3% 감축(감축후 배출량 585백만톤, '12년 대비 △15.0%)
으로 각각 주요 감축 수단은
(제1안) 산업, 발전, 수송, 건물 등 각 부문별로 현재 시행·계획 중인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강화하고 비용효과적인 저감기술을 반영하였으며
(제2안) 제1안의 감축수단에 석탄화력 축소, 건물․공장 에너지관리시스템 도입, 자동차 평균연비제도 등 재정지원 및 비용부담이 수반되는 감축수단을 포함하였음
(제3안) 제2안의 감축수단에 원자력 비중 확대, CCS 도입․상용화, 그린카 보급 등 추가적인 대규모 재정지원 및 비용부담이 필요한 감축수단을 적용하였으며,
(제4안) 제3안의 감축수단에 추가하여, 국민적 동의에 기초한 원전비중 추가 확대, CCS 추가 확대, 석탄의 LNG 전환 등 도입 가능한 모든 감축 수단을 포함하였음
그런데 가장 강력하다는 4안 역시 배출량이 5억 8500만톤으로 본래 공언한 2020년의 5억 4300만톤보다 사실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2020년까지 배출량을 5억 4300만톤으로 감축하겠다는 약속은 정부 발표에서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정부 제시 시나리오 1-4. 출처 : 환경부)
사실 이 부분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부가 자신 만만하게 30% 감축 같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꺼낸 의도부터가 이상했는데 (이상하다는 의미는 실제로 이를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국제 사회에 공언을 하기 때문) 결국 이렇게 약속을 뒤집을 생각이었다면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녹시 기후 기금 유치 및 기타 이유로 인해서 당시 행정부가 이런 약속을 했던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는 됩니다. 어차피 약속 이행은 다음 대통령이 해야 하니까요.
다만 이로 인해서 지난해 페루 리마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 후퇴 금지 조항을 세계 최초로 위반하는 국가가 될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구속력은 없지만 이로 인해 국제 사회에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감축 목표를 제시한 상태라서 비난하는 대열에 설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제출을 못한 개도국들은 내심 반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이 먼저 나서서 총대를 멜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요.
물론 아직 기뻐하기는(?) 이른 것이 아직 정부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 안을 내놓은 것은 여론의 눈치를 좀 보겠다는 생각으로 보입니다.
- 이전보다 과감한 감축으로 돌아선 선진국
선진국들은 BAU 방식 대신 기준 연도 대비 절대량 방식을 사용합니다. 현재 미국은 2005년 대비 절대 배출량을 26-28% 감축 (2025년까지)를 제출했고 EU는 이보다 훨씬 엄격한 1990년 대비 40% 감축안을 내놓았습니다. 스위스는 한발 더 나가 1990년 대비 50% 감축안을 내놓았습니다.
일본은 2013년 대비 26% 감축안으로 내용이 굳어지는 것 같고 캐나다는 2005년 대비 30%, 러시아는 1990년 대비 25-30% 감축안을 내놓았습니다.
아직 최대 배출국인 중국이 제출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작년에 오마바 대통령과 함께 감축안에 합의를 본 만큼 감축안을 조만간 제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 대안은 원전 뿐?
한국의 대안에서 중점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원전입니다. 3안과 4안에서 국민의 동의하에 원전 비중을 늘리면 더 많은 온실 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 자체는 맞겠지만, 국민이 동의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리 당국이 안전하다고 해도 최근 옆나라에서 큰 사고가 있었는데다 우리 나라 역시 각종 비리로 인해서 큰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죠.
물론 한국이라는 나라가 국토는 좁고 인구밀도는 높다 보니 신재생 에너지 확대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주거 형태도 개인 주택보다는 밀집된 아파트가 많다보니 주택용 태양광 보급도 여의치 않은게 사실이고 풍력 발전도 설치가 가능한 지점이 많지 않은데다 일부 지자체의 반대도 예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원전만이 대안인 것 같은 대책을 내놓은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다른 국가에서는 전기료나 에너지 요금을 올리더라도 더 지속 가능한 대안을 검토하는 반면 한국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단 온실 가스 배출을 억제하고 기후 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할지 몰라도 일단 전기 요금이 오르는 상황을 과연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일지는 저도 의문입니다. 물론 산업계의 반발이 아주 클 테니 현실적으로 더 어렵겠죠.
- 결론
결국 개인적으로는 올게 왔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제목처럼 소극적인 온실 가스 감축으로 돌아섰다기보다는 본래 정부가 그다지 의지가 없었다고 해야하겠죠. 립 서비스를 남발하다 이제 실제 감축안을 내놓을 시간이 다가오자 결국 현실론이 고개를 든 셈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최종안에 적극적인 온실 가스 감축안이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다만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인만큼 더 지켜봐야 하겠죠.
참고
그냥 대책없이 한 발표가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분명히 대기 오염 문제 때문에라도 감축이 되어야 하는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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