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 이 자사의 반도체 생산 시설과 특허 일부를 글로벌 파운드리 (Global Foundries, 이하 GF) 에 매각하는데 합의했다고 합니다. IBM 은 GF 및 삼성전자와 함께 최근 미세 공정 개발을 함께 해왔고 다른 굵직한 업계의 거인들과도 협력을 하는 중이었지만 최근 수년간 반도체 부분에서 막대한 적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매각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 뉴스가 놀라운 것은 15 억 달러를 받는게 아니라 주는 조건으로 GF 에 매각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매각 대상이 GF 라는 사실은 일단 놀랍지 않습니다. 같은 타입의 공정을 사용하는 삼성의 경우 이미 자체적인 투자를 통해 거대한 팹들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IBM 의 팹을 굳이 사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고 TSMC 는 본래 이들과는 다른 타입의 공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이질적인 IBM 의 생산 시설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인텔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 현재 인텔은 14 nm 공정 부분에서 주력해야 하는 상황이라 한 레벨 뒤쳐진 공정의 팹을 인수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입니다.
결국 같은 IBM Fab Club 에 속하고 파운드리 부분에서 아직 규모가 작아서 덩치를 키워야 하는 GF 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구매 대상이었습니다. 특히 아부다비에 오일 머니라는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만큼 아직은 규모가 작아도 앞으로 커질 가능성에 있어서는 GF 를 무시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따라서 IBM 이 헐값에라도 GF 에 반도체 생산 시설, 인력, 특허 일부를 통째로 넘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뒤통수를 친 부분은 돈을 주고 가져가게 했다는 것이죠.
IBM 의 반도체 생산 시설은 자체 파워 프로세서 및 소니와 MS 의 콘솔에 들어가는 셀 프로세서들을 양산해 왔습니다. 그런데 파워 프로세서 기반 서버들은 훨씬 저렴한 인텔의 x86 프로세서 기반 서버들의 공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IBM 에서 서버 및 스토리지를 만드는 시스템 테크놀로지 그룹의 순이익은 이번 3 분기에 전년도 3 분기 대비 15%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동안 인텔의 데이터 센터 부분이 16% 의 높은 성장을 이룩한 것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리고 소니, MS 공히 차기 콘솔에서는 x86 CPU 로 칩을 교체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IBM 의 반도체 부분은 지난 수년간 막대한 적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15 억 달러 적자를 냈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면 매각을 고려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입니다. IBM 은 하드웨어의 선구자이지만 수익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는 PC 부분도, x86 서버 부분도, 하드 디스크 부분도 모두 매각한 전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생산 부분도 마찬가지죠.
IBM 의 이런 결정은 앞서 GF 를 탄생시킨 AMD 의 반도체 생산 부분 매각을 떠올리게 하는데 AMD 역시 반도체 생산 부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를 견디지 못해 결국 팹을 모두 매각하고 팹리스 회사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기 때문에 제값에 대규모로 판매를 하지 못하면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결국 IBM 도 같은 길을 걸은 셈인데 그 매각 대상이 모두 GF 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왜 돈을 주고서 매각 (이걸 매각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한 것일까요. 여기에는 몇가지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현재 IBM 의 프로세서를 양산하고 있는 공장을 유지하지 않으면 IBM 은 지금 현재 생산 중인 서버와 슈퍼컴퓨터를 팔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당장 막대한 손해를 내는 공장을 선뜻 인수할 회사를 구하기 힘듭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주고 파는 (?) 결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GF 로써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실한 고객이 필요한데 주 고객인 AMD는 여기저기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IBM 이 향후 22/14/10 nm 공정 프로세서 주문을 GF 하는 조건도 같이 붙여서 이 막대한 적자가 나는 생산 시설을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 같습니다. 또 IBM 이 앞으로 GF 에 5 년간 총 30 억 달러를 투자해 같이 반도체 기술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하니 GF 도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번 매각은 IBM 과 GF 이 모두 윈윈해서 같이 살아남기 위한 묘수라고 할 수 있는데 변수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파운드리 시장입니다. 삼성, 인텔, TSMC 는 이미 덩치가 꽤 커진 상태로 엄청난 투자 비용이 드는 차세대 미세 공정 파운드리 시장에서 살아남을 반도체 회사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연간 100 억달러에 육박하는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GF 가 끼어들기 위해서 덩치 키우기에 나서는 중인데 성공 여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반도체 생산 부분을 매각하므로써 IBM 은 설령 GF 가 위기에 처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GF 가 10 nm 이하의 미세 공정에서 애를 먹으면 삼성이든 TSMC 든 다른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면 되니 말이죠. 장기적으로 봤을 때 IBM 이 큰 손해를 보지 않는 장사를 했을 가능성도 점쳐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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