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소행성 가운데는 위성을 거느린 것들이 존재합니다. 사실 행성이나 왜행성 등의 분류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것이고 작은 천체라고 해서 위성을 거느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죠. 그리고 반드시 하나만 거느려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2000 년대 초반까지 두개 이상의 위성을 지닌 소행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866 년 소행성대에서 87 실비아 (Sylvia) 라는 소행성이 발견되었습니다. 384×262×232 ± 10 km 정도의 크기를 가진 감자 같은 모습의 이 소행성은 (물론 실제 근접 관측 사진은 없음) 원일점 3.768 AU, 근일점 3.213 AU 정도의 궤도를 6.5 년 정도 주기로 공전하는 소행성입니다. 소행성 중에서는 비교적 큰 축에 속하는 녀석이죠.
그런데 2001, 마이클 브라운 (Michael E. Brown) 과 그의 동료들은 하와이에 켁 망원경을 이용해서 실비아가 위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위성은 지름 18 ± 4 km 정도로 실비아의 질량을 생각하면 작지 않은 위성이었는데 실비아에서 1356 ± 5 k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3.6 일 정도를 주기로 실바아 주변을 공전했습니다.
이 위성에는 마침 적당한 이름이 하나 있었습니다. 실비아라는 이름은 사실 로마 건국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레아 실비아 (Rhea Silvia) 혹은 일리야라고 불리는 이 여인은 전쟁의 신 마르스와 동침해서 로물루스와 레무스 두 쌍둥이를 낳았으나 이 두 형제는 강에 버려지게 됩니다. 이후 이 형제가 구조되어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신화이죠.
신화니까 진위여부는 사실 상관이 없겠죠. 아무튼 실비아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으니 위성의 이름도 여기서 따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위성은 로물루스 (Romulus) 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05 년에 버클리 대학의 프랑크 마르키스 (Franck Marchis) 와 그의 동료들은 실비아에게 두번째 위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태양계에서 첫번재로 두개 이상의 위성을 지닌 소행성의 발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두번째 위성은 먼저 발견된 로물루스보다 더 작아서 지름 7 ± 2 정도였으며 공전 궤도도 로물루스의 절반 정도인 706 ± 5 정도였습니다. 공전 주기는 1.4 일이 조금 안되는 정도였습니다. 자전 주기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거리를 고려할 때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동조화 되지 않았을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쯤 되면 두번째 위성의 이름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겠죠. 당연히 그 명칭은 레무스 (Remus) 라고 정해졌습니다.
(실비아. 그리고 위성 로물루스와 레무스 Discovery of the two moons Romulus and Remus of the asteroid (87) Sylvia. )
(늑대 어미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실비아와 강의신 티베리우스, 그리고 양치기인 파우스툴루스 Faustulus (to the right of picture) discovers Romulus and Remus with the she-wolf and woodpecker. Their mother Rhea Silvia and the river-god Tiberinus witness the moment. Painting by Peter Paul Rubens, c. 1616 (Capitoline Museums).http://en.wikipedia.org/wiki/Romulus_and_Remus#mediaviewer/File:Romolo_e_remo.jpg )
신화에서는 두 형제가 강에 버려져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태양계에서는 반대로 형제가 사이좋게 어머니 옆을 영원히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먼가 아이러니 하면서도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하지만 사실 과학 연구에는 재미 이상의 이유가 있죠.
과학자들은 실비아의 궤도와 크기 뿐 아니라 위성의 크기와 공전 궤도, 주기를 모두 알게 되므로써 여기에서 다시 이들의 질량과 밀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관측 결과를 토대로 보면 실비아는 밀도가 1.2 g/㎤ 에 불과한 소행성입니다. 이와 밀도는 물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써 만약에 목성이나 토성 궤도에서 발견되었다면 얼음과 암석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소행성이 암석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합리적인 설명은 소행성이 단단한 하나의 구조물이 아니라 내부에 상당한 빈 공간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잡석더미 처럼 중앙에는 중력에 의해 압축된 단단한 핵이 있고 주변에는 빈공간이 꽤 있는 암석과 잡석 층으로 된 구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 위성을 발견한 세티 연구소의 마르키스 ( Franck Marchis, senior research scientist at the Carl Sagan Center of the SETI Institute) 와 그의 동료들은 지상에 있는 8 - 10 미터급 대형 망원경 (켁 망원경과 제미니 노스, 그리고 유럽 남방 천문대) 으로 이 위성들의 궤도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실비아의 내부 분포가 균일하지 않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Icarus 에 발표했습니다.
탐사선을 직접 보내지 않고도 내부 구조를 간접적으로 알아낸 것인데 이에 의하면 실비아는 밀도가 높은 핵과 주변부의 낮은 밀도의 균열이 있는 외부 지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실제 모습이 어떤지도 궁금한데 아마도 이 부분은 탐사선을 직접 보내서 고해상도 이미지를 구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튼 엄마를 보면 아이를 안다거나 아이를 보면 엄마를 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인 셈이겠죠.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를 생각하면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19 세기에 이 소행성의 이름을 실비아로 정한 건 놀라운 일인 것 같습니다.
참고
Berthier, J., F. Vachier, F. Marchis, J. Ďurech, and B. Carry. 2014. "Physical and Dynamical Properties of the Main Belt Triple Asteroid (87) Sylvia." Icarus 239 (September): 118–30. DOI: 10.1016/j.icarus.2014.0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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