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태양계 이야기 285 - 두개의 위성을 거느린 소행성 87 실비아



 태양계의 소행성 가운데는 위성을 거느린 것들이 존재합니다. 사실 행성이나 왜행성 등의 분류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것이고 작은 천체라고 해서 위성을 거느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죠. 그리고 반드시 하나만 거느려야 한다는 법도 없습니다. 그러나 2000 년대 초반까지 두개 이상의 위성을 지닌 소행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1866 년 소행성대에서 87 실비아 (Sylvia) 라는 소행성이 발견되었습니다. 384×262×232 ± 10 km 정도의 크기를 가진 감자 같은 모습의 이 소행성은 (물론 실제 근접 관측 사진은 없음) 원일점 3.768 AU, 근일점 3.213 AU 정도의 궤도를 6.5 년 정도 주기로 공전하는 소행성입니다. 소행성 중에서는 비교적 큰 축에 속하는 녀석이죠.  


 그런데 2001, 마이클 브라운 (Michael E. Brown) 과 그의 동료들은 하와이에 켁 망원경을 이용해서 실비아가 위성을 하나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위성은 지름 18 ± 4 km 정도로 실비아의 질량을 생각하면 작지 않은 위성이었는데 실비아에서 1356 ± 5 k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3.6 일 정도를 주기로 실바아 주변을 공전했습니다.  


 이 위성에는 마침 적당한 이름이 하나 있었습니다. 실비아라는 이름은 사실 로마 건국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레아 실비아 (Rhea Silvia) 혹은 일리야라고 불리는 이 여인은 전쟁의 신 마르스와 동침해서 로물루스와 레무스 두 쌍둥이를 낳았으나 이 두 형제는 강에 버려지게 됩니다. 이후 이 형제가 구조되어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신화이죠.


 신화니까 진위여부는 사실 상관이 없겠죠. 아무튼 실비아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으니 위성의 이름도 여기서 따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위성은 로물루스 (Romulus) 라고 명명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05 년에 버클리 대학의 프랑크 마르키스 (Franck Marchis) 와 그의 동료들은 실비아에게 두번째 위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태양계에서 첫번재로 두개 이상의 위성을 지닌 소행성의 발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두번째 위성은 먼저 발견된 로물루스보다 더 작아서 지름 7 ± 2 정도였으며 공전 궤도도 로물루스의 절반 정도인 706 ± 5 정도였습니다. 공전 주기는 1.4 일이 조금 안되는 정도였습니다. 자전 주기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거리를 고려할 때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동조화 되지 않았을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쯤 되면 두번째 위성의 이름도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겠죠. 당연히 그 명칭은 레무스 (Remus) 라고 정해졌습니다.



(실비아. 그리고 위성 로물루스와 레무스 Discovery of the two moons Romulus and Remus of the asteroid (87) Sylvia.  public domain.  F. Marchis -http://en.wikipedia.org/wiki/Image:CMSylvia.png )  



(늑대 어미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  이를 보고 있는 사람은 실비아와 강의신 티베리우스, 그리고 양치기인 파우스툴루스  Faustulus (to the right of picture) discovers Romulus and Remus with the she-wolf and woodpecker. Their mother Rhea Silvia and the river-god Tiberinus witness the moment. Painting by Peter Paul Rubens, c. 1616 (Capitoline Museums).http://en.wikipedia.org/wiki/Romulus_and_Remus#mediaviewer/File:Romolo_e_remo.jpg )

 신화에서는 두 형제가 강에 버려져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태양계에서는 반대로 형제가 사이좋게 어머니 옆을 영원히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먼가 아이러니 하면서도 재미있는 발견입니다. 하지만 사실 과학 연구에는 재미 이상의 이유가 있죠.  


 과학자들은 실비아의 궤도와 크기 뿐 아니라 위성의 크기와 공전 궤도, 주기를 모두 알게 되므로써 여기에서 다시 이들의 질량과 밀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관측 결과를 토대로 보면 실비아는 밀도가 1.2 g/㎤ 에 불과한 소행성입니다. 이와 밀도는 물보다 약간 높은 것으로써 만약에 목성이나 토성 궤도에서 발견되었다면 얼음과 암석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소행성이 암석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합리적인 설명은 소행성이 단단한 하나의 구조물이 아니라 내부에 상당한 빈 공간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잡석더미 처럼 중앙에는 중력에 의해 압축된 단단한 핵이 있고 주변에는 빈공간이 꽤 있는 암석과 잡석 층으로 된 구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 위성을 발견한 세티 연구소의 마르키스 ( Franck Marchis, senior research scientist at the Carl Sagan Center of the SETI Institute) 와 그의 동료들은 지상에 있는 8 - 10 미터급 대형 망원경 (켁 망원경과 제미니 노스, 그리고 유럽 남방 천문대) 으로 이 위성들의 궤도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실비아의 내부 분포가 균일하지 않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Icarus 에 발표했습니다.  


 탐사선을 직접 보내지 않고도 내부 구조를 간접적으로 알아낸 것인데 이에 의하면 실비아는 밀도가 높은 핵과 주변부의 낮은 밀도의 균열이 있는 외부 지각을 가진 것 같습니다. 실제 모습이 어떤지도 궁금한데 아마도 이 부분은 탐사선을 직접 보내서 고해상도 이미지를 구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튼 엄마를 보면 아이를 안다거나 아이를 보면 엄마를 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경우는 후자인 셈이겠죠.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신화를 생각하면 꽤 재미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19 세기에 이 소행성의 이름을 실비아로 정한 건 놀라운 일인 것 같습니다.      



 참고  

Berthier, J., F. Vachier, F. Marchis, J. Ďurech, and B. Carry. 2014. "Physical and Dynamical Properties of the Main Belt Triple Asteroid (87) Sylvia." Icarus 239 (September): 118–30. DOI: 10.1016/j.icarus.2014.05.046.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