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나침판의 N 극이 북쪽을 가르켰던 시절이 있었다" 라고 후손들에게 말하는 시기가 올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구 자기는 갑자기 방향을 180 도 바꾸는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지구 자기 역전 현상은 100 만년에 1-5 회 정도 발생하는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지구 내부의 자기 다이나모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 자기장이 약화되는 현상이 관측되고 있어서 일부 연구자들은 향후 수천년 이내로 지구 자기가 역전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UC 버클리 대학이 이끄는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의 다국적 연구팀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지구 자기 역전 이벤트인 Matuyama-Brunhes 역전 이벤트가 100 년 이내라는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발생했다는 연구 결과를 Geophysical Journal International 에 발표했습니다.
UC 버클리 대학의 폴 레네 교수 (Paul Renne, director of the Berkeley Geochronology Center and a UC Berkeley professor) 와 대학원생인 코트니 스프레인 (UC Berkeley graduate student Courtney Sprain) 은 여러 동료들과 함께 이탈리아 로마 동쪽의 아펜니노 산맥 (Apennine Mountains) 에 있는 술모나 분지 (Sulmona basin) 의 고대 호수에 침전된 퇴적층을 연구했습니다.
이 퇴적층을 연구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사그노티 (Leonardo Sagnotti of Rome's National Institute of Geophysics and Volcanology) 와 그의 동료들은 이 퇴적층에 주변 화산에서 주기적으로 분출한 화산재가 섞여 있으며 이 화산이 폭발했을 때의 자기 방향에 따라 자기장을 미약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들은 UC 버클리의 연구자들과 함께 아르곤 연대 측정으로 이 화산재의 연대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해서 이제까지 없던 정밀도로 그 연대를 복원했습니다. 그 결과 78 만년전의 Matuyama-Brunhes 역전 이벤트가 매우 짧은 시간동안 일어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Matuyama-Brunhes 역전 이벤트 중 '자북극' 의 변화. 실제 역전 이벤트 자체는 불과 100 년 이내의 짧은 시간에 발생했음. The ‘north pole’ — that is, the direction of magnetic north — was reversed a million years ago. This map shows how, starting about 789,000 years ago, the north pole wandered around Antarctica for several thousand years before flipping 786,000 years ago to the orientation we know today, with the pole somewhere in the Arctic. Credit: University of California - Berkeley )
이 시기 동안 현재의 자북극 (magnetic north pole, 자기장이 가르키는 북극, 즉 N 이 가리키는 방향) 은 남쪽에 위치했다가 78 만 6100 년에서 78 만 6000 년 사이 급격히 현재의 위치 (즉 북극권) 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실제 자기 역전이 100 년보다 더 짧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 동안 자기장이 뒤집히는 일도 가능할 지 모릅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자북극이 진짜 북쪽이었다" 등의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와 같은 급격한 자기 역전 현상은 또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자기 역전 현상이 일어날 때 지구의 자기장의 힘은 약해진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지구 자기장은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에너지 입자의 흐름인 태양풍과 전리 방사선을 막는 역할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만약 자기장이 사라진다면 지구 표면에 사는 동식물들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벤트가 매우 짧은 시간안에 발생한다면 생각보다 영향이 적을 수도 있죠. 실제로 자기 역전은 꽤 여러차례 발생했지만 이 자기 역전과 관련해서 대량 멸종의 증거는 이제까지 발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자기장 약화가 지표면의 생물체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번 연구 결과가 옳다고 해도 한 번의 이벤트를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과연 평균적으로 자기 역전 이벤트가 아주 짧게 일어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향후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과연 지구 자기 역전 현상이 얼마나 신속하게 일어날 수 있을지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역전이 일어난지 78 만년이나 되었고 이제 자기 역전이 가까운 미래 (다만 지질학적으로 말하면 수천년 후나 수만년 후도 가까운 미래임) 에 발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관심이 가는 이야기 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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