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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3일 일요일

십자군 전쟁사 - 십자군 전쟁의 총평, 그리고 유산들 (5)





 8. 십자군 전쟁이 비잔티움 제국이 미친 영향


 십자군 전쟁이 발생할 수 있던 또 한가지 이유는 연재 초반에 설명했듯이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 직전 상황에 이른 것도 있었다. 만약 셀주크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이 서로 안정된 상태에서 대립하고 있었다면 극히 실현 가능성이 낮았을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원정은 결정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 이후 셀주크 투르크가 심각한 내분에 빠지면서 초반에 성공을 누렸다. 물론 원정 자체도 비잔티움 제국의 요청은 물론이고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언뜻 보기엔 처음 십자군 운동 자체도 비잔티움 제국의 요청 (엄밀히 말하면 제국의 요청은 성지 회복과는 관계 없었으며 일종의 용병을 요청한 것이었지만) 에 의해 시작되었고 비잔티움 제국의 오랜 적수인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비잔티움 제국에 도움이 되었을 듯 하지만 사실 제국과 십자군의 관계는 매우 복잡했다. 


 초기 의도한 것과는 달리 십자군이 성지를 회복하러 남하한 이후에도 알렉시우스 1 세 콤네누스는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는 작업에 십자군의 도움을 보긴 했다. 십자군이 투르크의 여러 세력을 몰아내는데 분명히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101 년 마이너 십자군 이후 알렉시우스 1세가 주된 목표로 삼았던 롬 술탄국은 더 이상 십자군의 표적이 아니었다. 




(알렉시우스 1세가 즉위한 1081년 당시의 지도. 빨간색이 비잔티움 제국이다. 다만 이 지도에 있는 영역 마저도 지키기가 어려웠던 것이 남 이탈리아의 노르만 족이나 혹은 쿠만 족들이 침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무튼 알렉시우스 1세 시절에는 제국이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한 상황이었다.  I, the copyright holder of this work, hereby release it into the public domain. This applies worldwide.  )



(1173년 비잔티움 제국의 수복기의 비잔티움 제국 영토. 빨간색으로 표시된 쪽이 비잔티움 제국 영토이다. 이와 같은 일시적인 영토 수복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알렉시우스 1세가 그 기반을 다져놓았기 때문이다. CCL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저자 Original uploader was Justinian43 at en.wikipedia)

 적어도 1 차 십자군은 과거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를 되찾고자 하는 알렉시우스 1세의 노력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 이후 설립된 예루살렘 왕국과 십자군 국가들에 대해서 알렉시우스 1세의 후계자인 요한네스 2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는데 특히 안티오크가 그 핵심이었다. 그러나 안티오크는 물론 그 주변 지역을 다시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던 황제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후 즉위한 마누엘 1 세는 남 이탈리아는 물론 롬 술탄국을 정벌해서 이전에 잃어버린 영토를 수복하려 하다가 오히려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만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미리오케팔론 전투 이후에는 다시는 비잔티움 제국이 공세로 나서지 못했다. 


 요한네스 2세와 마누엘 1세 시기 예루살렘 왕국은 스스로 비잔티움 제국의 복종하는 자세를 취했는데 주변에 적들로 둘러싸인 상태에서 도움을 받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러나 특히 마누엘  1세 시기 비잔티움 제국이 연이은 군사적 재난을 당하면서 실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물론 아예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다지 큰 도움이 된 것은 아닌 정도였다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과 십자군의 관계가 더 극적으로 변한 건 바로 4차 십자군 전쟁이었다. 사실 이는 십자군이 문제였던 것 이상으로 비잔티움 제국이 내부적으로 심각한 분열 및 혼란 상태인 시점에 십자군이 연류된 것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났다. 결국 비잔티움 제국은 라틴 제국으로 분열되었는데 더 심각하게는 그 시점에서 불가르 족을 비롯한 여러 이민족들이 제국을 마음대로 유린한 덕분에 사실상 비잔티움 제국은 수복된 이후에도 영토가 이전 보다 심각하게 축소되고 말았다.



 그것이 필연이든 우연이든 간에 십자군 운동은 비잔티움 제국을 크게 약화시켰고 결국 서방입장에서 봤을 때 이슬람의 방파제 역할을 하던 비잔티움 제국이 붕괴되면서 멀게는 오스만 투르크의 서진을 도왔을 수도 있다. 다만 과연 십자군이 없었다고해서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을 피할 수 있었을까 ?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고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4차 십자군은 분명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정리하면 초창기 십자군의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망해도 이상하지 않았던 비잔티움 제국의 재건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12 세기 십자군 왕국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13세기 4차 십자군의 결과로 비잔티움 제국은 해체가 가속되었으며 (사실 그 직후 멸망하지 않은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결국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지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렇듯 십자군이 비잔티움 제국에 미친 영향은 매우 복합적이다.  



 9. 십자군이 이단 심문에 미친 영향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운동이 당대는 물론 후세에 미친 영향 중에 하나는 종교적인 불관용성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일신교를 정신 세계의 근간으로 삼는 중세 기독교 사회는 고대의 로마 시대 같은 넓은 종교적 관용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같은 신을 모셔도 교리가 다르면 이단이나 다른 종교로 생각하는 특징은 이미 로마 제국시절부터 교회의 분열을 가져왔다. 


 이런 와중에서 십자군 운동은 이단에 대한 불관용의 강도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악한 이교도와의 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단 역시 더 이상 파문이나 설득, 그리고 약한 수준의 제재로는 통제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결국 이단에 의한 최초의 십자군인 알비주아 십자군이 13세기 초반에 탄생한 것은 앞서의 과정을 보면 필연이었을 수도 있다.


 십자군 운동 자체가 종교적인 불관용의 강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교황의 요청으로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군대 (십자군) 을 동원해 이단을 처벌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특히 본문에서 설명한 베지에 학살 (The massacre of Beziers )은 역사에 길이 남게될 십자군의 오점이었다. 


 알비주아 십자군이 마무리 단계에 이를 때 교황청에서는 비정기적으로 모집되는 십자군에 의한 이단 척결이 아니라 보다 항구적으로 체계적으로 이단을 척결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한다. 이른바 이단 심문관 (Inquisitor) 의 도입이 그것이었는데 교황 그레고리오 9세 (Gregory IX) 는 1230 년대에 일련의 조치를 통해 향후 수백년간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만명을 고문하고 처형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이단을 화형하는 내용의 15 세기말 유화. Pedro Berruguete 작. ) 


 사실 십자군과 이단 심문 (그리고 마녀 사냥 Witch hunt) 은 사실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보게되었을 때 '나와 종교가 다른 자는 용납할 수 없다'는 사상적 배경이 이와 같은 사건이 동시적으로 발생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또 때때로 이단 처단을 위해 십자군이 동원되었고 최초의 이단 심문관 제도 역시 알비주아 십자군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생각하면 이들이 완전히 연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십자군 운동 자체가 이단 심문을 탄생시킨 건 아니지만 이단 심문 및 종교 재판에 성행하고 더 잔인하게 진행하게 되는데 도움을 주었으리라 추론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10. 현재의 십자군  


 현대에 이르러 십자군 전쟁은 재평가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현대의 연구자들은 십자군 운동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들을 내놓고 있으며 그 의도가 단순히 성지 회복이나 혹은 종교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당대에 십자군이 미친 긍정적인 효과 못지 않게 그들의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이 연재 포스트를 보신 분들도 비슷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십자군의 이미지는 사악한 이교도와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로 유럽 문화에서 긍정적인 모티브로 생각되었다. 이점은 20세기 들어와서도 한동안 그랬다. 


 공산주의를 새로운 악으로 규정하고 볼세비즘에 대한 십자군 (Crusade against Bolshevism) 을 주장했던 나치 치하 독일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 시기 독일은 볼세비즘을 또 다른 이교도 내지는 악으로 규정하고 이들일 타도하는데 유럽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금도 이들이 만든 수많은 선전 포스트가 남아있다. 



(유럽 각국의 깃발이 그려진 볼세비즘을 향한 십자군. 당시에는 이런 종류의 선전포스트가 수없이 제작되었다 )


 21세기 와서 십자군이 다시 생각나게 만드는 이유가 있다면 서방과 아랍의 갈등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아랍의 지식인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화와 침략을 보고 십자군을 떠올렸다면 21세기에는 서구인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자 및 과격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를 보고 과거 사악한 이교도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911 테러 이후 이 같은 이미지는 더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일부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을 10 차 십자군 (10 th Crusade) 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실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대통령은 2001 년 9월 16일 백악관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에 비교하기도 했다. (... No one could have conceivably imagined suicide bombers burrowing into our society and then emerging all in the same day to fly their aircraft — fly U.S. aircraft into buildings full of innocent people — and show no remorse. This is a new kind of — a new kind of evil. And we understand. And the American people are beginning to understand. This crusade, this war on terrorism is going to take a while. ...  ) 그외에 몇몇 연설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에 비교했다.


 아마도 이점을 보면 부시 대통령의 십자군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현대의 서구인에게 십자군은 아직까지 크게 부정적인 이미지라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되면 그다지 칭찬할 만한 내용을 보기는 쉽지 않다. 십자군들은 종종 야만스럽고 잔인했으며 인간적인 탐욕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이점은 일반 병사나 지휘관급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히 이런 모습은 전쟁에서 일반적이기 마련이고 상대인 무슬림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신의를 지키고 용맹을 과시하며 진짜 종교적 열정에서 참가한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소수가 다수가 저지른 범죄 (예를 들어 마라트 알 누만, 안티오크 및 예루사렘 학살, 콘스탄티노플 약탈 등) 를 정당화 시켜주긴 어려울 것이다. 십자군과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베지에 학살 같은 이단 학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십자군의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다면 스스로를 십자군이라고 칭할 대통령이나 지도자를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십자군의 오점은 사실 십자군이기 때문에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 속한 것중에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을 끝내는 것 뿐이다' '도덕적인 살인이 없듯이 선한 전쟁도 있을 수 없다' 라는 식의 격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쟁을 오래하게 되면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은 점점 적게 나타나고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은 점점 자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확한 역사 지식이 없는 경우 아직도 십자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십자군이 후세 역사에 미친 긍정적인 역할도 물론 있다는 것은 앞서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십자군 그 자체가 긍정적이고 그들이 한 행동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들의 일종의 '십자군' 으로 묘사할 수 있으나 이는 사실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특히 서방과 아랍의 갈등 국면에서 이런 묘사는 아랍권에 불편했던 과거를 다시 기억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이미 오래된 일인데도 십자군이 무슬림을 학살하고 이슬람 교를 모욕했던 과거를 다시 회생하게 만들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볼 것인가 ? 전쟁과 갈등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비유는 매우 적절치 않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음이 마지막 입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167865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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