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나무로 만든 생분해 반도체?


 ​오늘날 사용되는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는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 세상을 바꿔놓은 주역입니다. 누구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이 비슷한 소재, 비슷한 반도체만 사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더 나은 프로세서를 만드려는 시도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최근 위스콘신-메디슨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의 연구자들은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새로운 반도체 칩을 제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이 내놓은 것은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칩입니다.
 이 대학의 젠키앙 마 교수(UW-Madison electrical and computer engineering professor Zhenqiang "Jack" Ma)가 이끄는 연구팀은 CNF(cellulose nanofibril)라는 물질을 이용한 반도체를 개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무에 존재하는 섬유질은 반도체의 기반 물질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두껍고 다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셀룰로스를 매우 작은 단위의 섬유로 쪼개서 CNF 라는 대체 물질을 만들었습니다.
 CNF는 매우 가볍고 투명하며 실리콘 결정과는 달리 쉽게 구부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CNF는 기존의 전자 회로와는 달리 생분해가 가능합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특성으로 웨어러블 기기나 생체내에 삽입하는 형태의 기기를 개발할 때 아주 유용한 특징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더 많은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CNF 기반의 마이크로웨이브 디바이스를 나뭇잎 위에 올려놓은 것. A cellulose nanofibril (CNF) computer chip rests on a leaf.
Credit: Yei Hwan Jung, Wisconsin Nano Engineering Device Laboratory)
 하지만 여기서 반도체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즉, CNF 한가지 물질로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을 텐데 하는 의문입니다. 당연히 CNF 하나만으로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CNF 가 하는 역할은 반도체의 서브스트레이트(substrate,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부분, 예를 들어 실리콘 웨이퍼)이며 그위에 회로를 구성할 다른 성분이 필요합니다.
 연구의 공저자이자 이 대학의 대학원생인 정예환(Yei Hwan Jung, 이름이 한국분이신 듯)은 CNF 기반의 마이크로웨이브 디바이스를 만들기 위해서 갈륨 비소 트랜지스터(gallium arsenide transistors)를 사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갈륨 비소 기반의 마이크로웨이브 디바이스에 비해 훨씬 많은 수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그에 의하면 갈륨 비소처럼 독성이 있는 물질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 5x6mm 정도의 공간에 1,500개에 달하는 갈륨 비소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물질이 들어간 만큼 독성이 없는 생분해성 반도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여전히 매우 얇은 플럭서블 칩인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꽤 재미있는 시도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꼭 CNF 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종이나 천처럼 얇고 쉽게 변형이 가능한 물질들이 여러 가지 전자기기를 만드는데 널리 사용될 것 같습니다. 그 응용범위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1. Yei Hwan Jung, Tzu-Hsuan Chang, Huilong Zhang, Chunhua Yao, Qifeng Zheng, Vina W. Yang, Hongyi Mi, Munho Kim, Sang June Cho, Dong-Wook Park, Hao Jiang, Juhwan Lee, Yijie Qiu, Weidong Zhou, Zhiyong Cai, Shaoqin Gong & Zhenqiang Ma. High-performance green flexible electronics based on biodegradable cellulose nanofibril paperNature Communications, 2015 DOI: 10.1038/ncomms8170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상에서 가장 큰 벌

( Wallace's giant bee, the largest known bee species in the world, is four times larger than a European honeybee(Credit: Clay Bolt) ) (Photographer Clay Bolt snaps some of the first-ever shots of Wallace's giant bee in the wild(Credit: Simon Robson)  월리스의 거대 벌 (Wallace’s giant bee)로 알려진 Megachile pluto는 매우 거대한 인도네시아 벌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말벌과도 경쟁할 수 있는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암컷의 경우 몸길이 3.8cm, 날개너비 6.35cm으로 알려진 벌 가운데 가장 거대하지만 수컷의 경우 이보다 작아서 몸길이가 2.3cm 정도입니다. 아무튼 일반 꿀벌의 4배가 넘는 몸길이를 지닌 거대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가칠레는 1981년 몇 개의 표본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추가 발견이 되지 않아 멸종되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2018년에 eBay에 표본이 나왔지만, 언제 잡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벌은 1858년 처음 발견된 이후 1981년에야 다시 발견되었을 만큼 찾기 어려운 희귀종입니다. 그런데 시드니 대학과 국제 야생 동물 보호 협회 (Global Wildlife Conservation)의 연구팀이 오랜 수색 끝에 2019년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메가칠레 암컷을 야생 상태에서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메가칠레 암컷은 특이하게도 살아있는 흰개미 둥지가 있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살아갑니다. 이들의 거대한 턱은 나무의 수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워낙 희귀종이라 이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동영상)...

몸에 철이 많으면 조기 사망 위험도가 높다?

 철분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미량 원소입니다. 헤모글로빈에 필수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철분 부족은 흔히 빈혈을 부르며 반대로 피를 자꾸 잃는 경우에는 철분 부족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철분 수치가 높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수준이 있게 마련이고 철 역시 너무 많으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철 대사에 문제가 생겨 철이 과다하게 축적되는 혈색소증 ( haemochromatosis ) 같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도 과도한 철분 섭취나 수혈로 인한 철분 과잉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철 농도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이야스 다글라스( Iyas Daghlas )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데펜더 길 ( Dipender Gill )은 체내 철 함유량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와 수명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은 48972명의 유전 정보와 혈중 철분 농도, 그리고 기대 수명의 60/90%에서 생존 확률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자로 예측한 혈중 철분 농도가 증가할수록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유전자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높은 혈중/체내 철 농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높은 혈중 철 농도가 꼭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건강한 사람이 영양제나 종합 비타민제를 통해 과도한 철분을 섭취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높은 철 농도가 조기 사망 위험도를 높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산부나 빈혈 환자 등 진짜 철분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철분 섭취를 꺼릴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연구 내용은 정상보다 높은 혈중 철농도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본래 철분 부족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분 농도와 빈혈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철...

사막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온실 Ecodome

 지구 기후가 변해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더 많이 내리지만 반대로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도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개도국에서는 이에 더해서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과 물이 모두 크게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막 온실입니다.   사막에 온실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사막 온실이 식물재배를 위해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사막 온실의 아이디어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사막 환경에서 작물을 재배함과 동시에 물이 증발해서 사라지는 것을 막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에티오피아의 곤다르 대학( University of Gondar's Faculty of Agriculture )의 연구자들은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장치를 결합한 독특한 사막 온실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에코돔( Ecodome )이라고 명명했는데, 아직 프로토타입을 건설한 것은 아니지만 그 컨셉을 공개하고 개발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막에 건설된 온실안에서 작물을 키움니다. 이 작물은 광합성을 하면서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네게 되지만, 온실 때문에 이 수증기를 달아나지 못하고 갖히게 됩니다. 밤이 되면 이 수증기는 다시 응결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코돔의 가장 위에 있는 부분이 열리면서 여기로 찬 공기가 들어와 외부 공기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되어 에코돔 내부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얻은 물은 식수는 물론 식물 재배 모두에 사용 가능합니다.  (에코돔의 컨셉.  출처 : Roots Up)   (동영상)   이 컨셉은 마치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담수 장치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잘 작동할지는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