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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6일 월요일

역사속 드라큘라(6)





 9. 바르나 십자군의 위기

 사실 헝가리군과 브와디스와프 3세는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여러차례 있었다. 어쩌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신의 손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비극의 주인공들처럼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구원의 손길을 마다하고 죽을 곳을 찾아 사지로 뛰어들었다. 

 일반적인 가정이긴 하지만 보통 공격 측은 방어측에 비해서 훨씬 유리한 전력을 가져야 한다. 일단 방어하는 입장이 더 유리한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침공하는 측은 적국에서 싸워야 하는 만큼 일단 더 불리함을 안고 시작하는 셈인데,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우세한 전력을 지닌 침공군이 열세인 방어군에 패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사실 1444년 당시 바르나 십자군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었다. 무엇보다 전년도에 입은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십자군의 전력은 본래부터 오스만 군에 비해 열세였으나 1444년 침공시에는 더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1443년 당시 오스만 군이 보여줬던 지리멸렬한 대응 때문에 바르나 십자군은 상황을 오판하고 적지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나름 믿는 구석이 있기는 했는데, 그것은 술탄 무라드 2세가 은퇴하고 아직 소년인 메흐메트 2세에게 양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지닌 술탄이 부재한 상황이야 말로 절호의 기회처럼 여겨졌기에 바르나 십자군은 맹세를 어기고 오스만 제국을 침공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상황에서 무라드 2세가 안락한 은퇴 생활만 즐길리는 만무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바로 아버지에게 사자를 보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한다. "당신이 아직 술탄이시라면 당장 와서 적을 물리쳐주십시요. 만약 술탄이 아니라면, 내가 술탄으로써 명하니 군대를 이끌고 적을 물리쳐주십시요"

 이말을 들은 무라드 2세는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술탄의 자리에 올라 군대를 지휘했다. 카라만조와의 평화 협상은 아직 유효했기 때문에 무라드 2세는 십자군에 대해서만 전력을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따라서 1444년의 상황은 여러 모로 오스만 측에 급격히 유리해지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라도 빨리 발을 빼는 것이 현명한 일이겠지만, 인간이란 항상 현명하지만은 못한게 사실이다. 일단 십자군의 대의와 헝가리 수호라는 명분을 내건 이상 아무 성과 없이 그냥 후퇴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꾸물거리다간 적국에서 우세한 병력에 둘러쌓여 겨울을 견뎌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이 시기보다 조금 앞서 왈라키아의 블라드 2세는 오스만 제국으로 호기롭게 침공한 바르나 십자군을 직접 만나 이야기할 기회를 가졌다. 이를 테면 주요 지휘관급을 모아서 회의를 하려 했던 것인데, 왈라키아 역시 병력을 제공했으므로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은 십자군의 병력을 본 블라드 2세는 실망과 우려섞인 표정으로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당신들이 전쟁에 투입하는 병력은 술탄이 사냥을 가러 떠날 때 투입하는 병력보다도 적다" 

 아마도 블라드 2세는 결말을 어느 정도 예측했던 것 같다. 하지만 훈야디와 헝가리의 압박이 우려되었는지 아들 미르세아 2세에게 4000명 정도의 병력을 주어 바르나 십자군에 계속 참전하도록 했다. 이 병력까지 합친 십자군의 병력은 대략 2만 명에서 3만 명이라는 설이 있다. 

 반면, 오스만 제국의 병력은 5-6만명에 달해서 병력면에 있어서는 오스만 제국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여기에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명장인 무라드 2세의 지휘, 그리고 십자군이 조약을 파기하고 무단으로 자국을 침공한데 따른 명분상의 이점 등, 오스만 군이 이길 만한 조건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그해 11월, 이제 술탄으로 복위한 무라드 2세는 모든 병력을 발칸 반도로 집중해 십자군을 포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이제는 종교적 지휘관인 줄리앙 세자리니(Julian Cesarini the Elder)추기경 역시 빠른 후퇴를 할 것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444년 11월, 발칸 반도쪽의 오스만 영토로 깊숙이 진격했던 바르나 십자군은 빠른 속도로 퇴각을 결정하지만 오스만 군이 바로 추격에 나섰다. 결국 이들은 지금의 불가리아의 흑해 연안 호수인 바르나 호수(lake Varna)에서 마주치게 된다. 


 10. 바르나 전투 

 1444년 11월 10일, 오스만 군은 바르나 호수 북쪽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십자군을 포위했다. 바르나 십자군은 좌우로 바르나 호수와 흑해에 막혀있어 헝가리로 귀국할 수 있는 통로는 오직 북쪽 길 뿐이었다. (아래 그림 참조) 이런 상황에서 십자군은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매우 열세인 상황이지만 마지막 혈로를 뚫고 탈출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지형과 마차 요새를 이용해서 방어를 할 것인가? 전자는 승리의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고 후자는 결국 보급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립되어 스스로 괴멸될 가능성을 자초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세자리니 추기경은 방어를 주장했고 일부 지휘관들도 여기에 동조했다. 반면 훈야디와 브와디스와프 3세는 이 의견에 반대했다. 훈야디는 탈출도 불가능하고 항복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인만큼 우리가 해야할 일을 용감하게 싸워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이유는 항복을 할게 아니면 싸워 이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국왕이 총사령관을 맡고 훈야디는 자신의 부대와 왈라키아 부대를 지휘했다. 각 지역에서 온 다양한 출신의 부대들이 각자의 지휘관 밑에서 싸웠는데, 마차요새로 적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기병 전력을 이용해서 적의 주력, 특히 무라드 2세를 격파하는 것이 십자군의 계획이었다.   




(바르나 전투의 배치도. 


(바르나 2세의 기록화. A scene from the Battle of Varna (1444) on the Kronika wszystkiego świata of Marcin Bielski, published in 1564. ) 

 전투의 결과는 사실 뻔했지만, 실제 전투는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십자군은 우세한 오스만 군의 전력앞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왕이 이끄는 본대와 훈야디의 부대는 전투의 중반까지 매우 잘 버티고 있었다. 마차 요새 역시 오스만의 경기병에 대해서 잘 버티고 있었다. 

 전투의 결과를 결정한 것은 왕의 실수였다. 위기에 처한 아군을 구하러 떠나면서, 훈야디는 왕에게 자신이 올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왕은 정면에 놓인 무라드 2세의 천막을 보고 훈야디를 기다리지 않고 돌격을 감행했다.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결정을 내린 셈이었다. 

 브와디스와프 3세와 그의 500명의 근위대는 매우 맹렬하게 술탄의 중앙 부대를 향해 돌격했다. 예니체리를 격파하고 전진하는 용맹한 십자군 앞에 적수가 없는 듯 했지만, 기적 같은 전진은 술탄의 천막 앞까지였다. 술탄의 천막앞에는 구덩이 함정이 있었는데, 여기로 호기롭게 뛰어들어간 왕과 용맹한 기사들은 순식간에 형세가 역전되어 이제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술탄의 충성스런 예니체리 전사들은 즉시 이들에게 달려들어가 칼로 난도질을 했다. 결국 왕은 목이 잘려 장대위에 내걸리게 되었다. 한편, 본진으로 돌아온 훈야디는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알게되었다. 그는 마지막 충성심을 발휘해서 왕의 시신이라도 구하려고 술탄의 본진을 향해 공격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이 정도 상황이 되자 이제 십자군은 와해되기 시작했고 남은 병력은 살기 위해 혈로를 뚫고 달아났다. 이 패잔병의 무리에는 훈야디는 물론 미르세아 2세도 있었다. 

 바르나 십자군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헝가리의 재앙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승패와 관련없이 볼모로 있던 두 소년 - 블라드 드라큘라와 그의 동생인 라두 - 의 생명을 크게 위협하는 일이었다. 아마도 바르나에서 십자군이 승리했다면 보복하는 차원에서 두 소년은 참수되거나 극형에 처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승리를 한 상황에서는 조금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술탄은 블라드 2세가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승리한 지금 블라드 2세의 충성이 다시 자신을 향할 것이라는 점도 짐작했을 것이다. 따라서 아직 이용가치가 있는 두 소년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나중일이고 당시에 소년 드라큘라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의 생명을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 알았을 것이다. 이 소년은 아버지라고 해도 믿을 수 없고 생명의 가치는 매우 싸게 거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드라큘라 본인이나 혹은 동시대를 살았던 제 3자가 남긴 기록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당시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길은 없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드라큘라가 부모의 사랑을 확신하기 보다는 세상은 믿을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아마도 우리가 나중에 보게 되는 드라큘라의 잔인성의 원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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