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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장으로 말라리아를 진단한다 ?


 말라리아는 과거는 물론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는 전염성 질환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대개는 열대 지역, 그리고 주로 가난한 신흥국 중심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지구 평균 기온 상승과 함께 말라리아를 전파시키는 모기가 사는 지역도 점점 고위도로 올라가고 있으며 우리 나라 역시 말라리아 유행에서 자유롭지는 (매우 다행하게도 흔하지도 그리고 심각하지도 않긴 하지만) 않은 상태입니다. 
 때때로 말라리아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말라리아의 빠르고 정확한 진단은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말라리아의 진단은 지난 수십년간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말라리아가 의심되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한 후 여기에 염색약을 넣고 슬라이드에 밀어서 현미경으로 확인하는 것이 바로 진단인데 이렇게 진단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말라리아는 적혈구 하나보다 더 작은 세포이지만 엄현히 핵을 가진 단세포 동물입니다. 즉 핵이 없는 박테리아보다 고등한 동물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말라리아는 기생충으로 분류합니다. 그런데 포유류의 적혈구는 보다 많은 산소를 운반하기 위해서 핵이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핵을 염색하면 적혈구 내부에서 탐욕스럽게 적혈구의 내용물을 파먹고 있는 말라리아 원충의 핵이 염색됩니다. 



(적혈구 안에 염색된 말라리아 원충의 핵.   A thin-film Giemsa stained micrograph of ring-forms, and gametocytes of Plasmodium falciparum.  Credit : CDC)
 이와 같은 방법은 정확한 종류와 숫자들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반면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고 이를 현미경으로 판독하는데 매우 숙련된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하는 만큼 아무래도 에러의 가능성을 피할 수가 없어서 말라리아 원충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검사자 마다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다른 검사 수단들이 개발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RDT 나 Dipstick 이라고 부르는 혈청학적 방법이 있습니다. 딥스틱은 매우 빠르게 진단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도말버보다 더 많은 원충이 있을 때 진단이 가능하며 정량 검사가 아니라 정성 검사만 가능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말라리아 진단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본문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넘어가는데 아무튼 지금보다 더 빠르고, 간편하고, 저렴하고 에러가 적은 진단법의 개발은 말리라아 뿐 아니라 모든 질환에서 요구된다고 하겠습니다. 최근 MIT 대학과 싱가포르의 합작연구인 Singapore-MIT Alliance for Research and Technology (SMART) 에서는 말라리아를 매우 빠르고 간편하게 기계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바로 자기장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magnetic resonance relaxometry (MRR) 이라고 명명된 이 방식은 MRI 와는 사촌지간이지만 사실 MRI, 보다 훨씬 저렴하고 작은 기계라고 합니다. 일반 검사실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의 이 기계는 0.5 Tesla 의 자기장을 이용해서 말라리아 원충이 남긴 흔적을 검사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말라리아 원충이 헤모글로빈을 먹고 남은 흔적인 헤모조인 (hemozoin) 이 외부의 자기장에 반응하는 상자성체 결정 (paramagnetic crystallite) 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를 이용한 MRR 은 수분에 불과한 빠른 속도로 말라리아를 진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량적으로 말라리아 원충 감염 정도를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필요한 피의 양도 10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합니다. 헤모조인은 감염의 아주 초기 단계에서부터 나타날 뿐 아니라 감염의 모든 시기에 혈액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이를 진단할 수 있다면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확진 및 종류를 파악하기 위해서 여전히 현미경으로 혈액 샘플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누가 감염되었는지 빠르게 알 수 있다면 시간과 비용을 크게 감소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기존의 방법으로는 때때로 놓칠 수 있는 환자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말라리아 원충이 항상 혈액을 활발히 돌아다니지는 않기 때문이죠. 


 한가지 더 중요한 문제는 비용인데 가격이 비싸다면 말라리의 주된 유행 지역인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의 가난한 국가에서는 사용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대규모로 테스트를 하는 랩이 있을 경우 1 회 검사 비용이 10 센트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일단 사람이 검사하는 게 아니고 비싼 시약이 쓰이지 않는 만큼 대량 검사 시스템이 확보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대규모 임상 실험을 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임상에서 널리 활용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가능해 진다면 꽤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래전 제가 전공의 시절에 의심 환자의 혈액을 현미경으로 봤는데 (당시는 밤 늦게여서 물어볼만한 사람도 없었고 일단 응급실로 찾아왔으니 직접 염색해서 찾아보는 수 밖에 없었음) 결국 찾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제대로 염색해서 말라리아 원충을 찾아내려면 어느 정도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진단이 가능하면서 민감도와 특이도가 모두 높고 기계가 자동으로 검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과연 이 MRR 이 그 소원을 들어줄지 궁금하네요. 문득 그 과거 생각이 나서 포스팅 해봅니다.   


 이 연구는 Nature Medicine 에 실렸습니다. 

 참고 


Micromagnetic resonance relaxometry for rapid label-free malaria diagnosis, Nature Medicine, dx.doi.org/10.1038/nm.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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