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음모론은 음모론이 본고장(?)인 미국에서 나왔던 음모론 가운데 하나로 설탕 혹은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판매하는 기업 (예를 들어 과자, 디저트, 탄산 음료를 포함한 가당 음료 제조사)들이 연구자를 돈으로 매수해서 설탕의 위험성을 희석시키고 포화지방 위험성을 부각시켰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음모론이 지금에서는 별 의미가 없는 게 포화지방, 설탕 모두가 과도하면 위험하다는 증거가 제법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를 과도하게 섭취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첨가당(added sugar)은 미국과 같이 전체 열량의 10% 이내로 제한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며 포화지방은 미국의 10%보다 강화된 7%를 권장 기준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공 식품의 경우 포장지에 함량과 더불어 하루 섭취 권고량의 몇 %인지 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를 표시하는 이유는 하루 100% 이상 먹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제 책인 과학으로 먹는 3대 영양소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내용을 소개하는 이유는 사실 본래 이 책에 설탕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삭제된 것입니다.
아무튼 설탕 음모론이 과거 이야기했던 내용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졌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두 가지를 규제하므로) 과연 과거에는 그런일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에 대해서 콜롬비아 대학 및 시티 대학 (Columbia University's Mailman School of Public Health and the City University of New York challenge)의 연구자들이 문헌을 고찰해 그 가능성을 검증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음모론과 마찬가지로 설탕 음모론 역시 근거가 없는 이야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the historical evidence does not support these claims) 이 이야기의 근원은 1960년대 하버드 대학의 마크 헤그스티드(D. Mark Hegsted)가 이끈 연구에서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비해 설탕의 효과는 미미하게 나왔던 데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연구는 버터처럼 포화지방 함량이 높은 유제품을 만드는 관련 기업과 단체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이로 인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하버드 연구자들이 설탕 관련 기업에서도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누구에게 돈을 더 받았느냐보다는 당시 연구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과도한 설탕 섭취가 나쁘다는 사실을 잘 몰랐는데, 이를 입증할 연구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금처럼 많이 먹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게된 것은 첨가당 섭취가 크게 증가하고 이에 따라 비만 인구도 크게 증가한 20세기 후반의 일입니다. 버터 같은 유제품의 문제가 먼저 알려진 이유는 아마도 과도한 섭취 증가가 첨가당 (설탕 및 액상과당 등) 보다 더 먼저 발생해서 연구가 더 잘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설탕회사에서 돈을 받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연구와 가이드라인은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사실 이런 연구가 미국 한 국가에서만 진행되지도 않을 것이고 하버드 대학만 연구하는 것도 아닐 텐데 연구비를 일부 지원하는 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역학 연구의 경우 국가 지원이 가장 흔하기 때문에 회사 한 두 곳에서 결과를 장기간 조작하기도 어렵습니다.
대표적으로 담배 산업의 경우 담배가 해롭지 않다는 연구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결국 압도적으로 많은 증거 앞에 실패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때 기업이 배운 교훈은 대학 한 두 곳을 지원하는 게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보다 더 많은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할 것이고 연구비를 담배회사에서 지원받은 연구에 대해서는 상당히 신뢰성이 의문시 되면서 연구자의 경력에도 큰 흠집이 날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나중에 가면 지원받겠다는 연구자도 없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 음모론에도 한 가지 진실은 있습니다. 그것은 기업이나 단체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연구를 지원하려는 동기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논문을 저널에 제출할 때 반드시 어디서 자금을 지원받았는지 공개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약 회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연구에서 이 회사 약물이 경쟁사 대비 효과적이라는 내용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송곳 검증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는 이런 의무가 없어 나중에 자금을 어디서 지원받았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던 것이고 설탕 음모론 역시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구 문헌을 검토한 결과 비록 양대 산업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긴 했어도 담배의 사례처럼 의미있는 결과는 얻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미국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 설탕과 포화지방 두 가지 다 섭취를 제한할 것을 권고하기 때문이죠. (제 책에서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다시 말해 기업들의 노력에도 과학적 사실을 바꾸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음모론은 그냥 음모론일 뿐입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다행히 어디서도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해서 논문 제출할 때 비교적 편합니다. 받은 연구비가 없다고 적기만 하면 되니 다른 해명도 필요없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고 할까요.
참고
"Was there ever really a "sugar conspiracy"?" Science (2018). science.sciencemag.org/cgi/doi … 1126/science.aaq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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