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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 억제제가 결핵 치료 효과가 있다?



(This photomicrograph reveals Mycobacterium tuberculosis bacteria using acid-fast Ziehl-Neelsen stain; Magnified 1000 X. The acid-fast stains depend on the ability of mycobacteria to retain dye when treated with mineral acid or an acid-alcohol solution such as the Ziehl-Neelsen, or the Kinyoun stains that are carbolfuchsin methods specific for M. tuberculosis. Credit: public domain)


 선진국에서는 환자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결핵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는 주요 질병 가운데 하나입니다. 항결핵제의 등장으로 인해 과거처럼 불치의 병은 아니지만, 약제에 내성을 지닌 결핵균의 등장으로 인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또 아직 결핵 유병률이 높은 가난한 나라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신약 역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역학 연구에서 PPI (proton pump inhibitor) 계통의 위산 억제제인 란소프라졸 (lansoprazole)이 결핵 발생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결핵의 치료와 예방에 새로운 응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및 런던 위생 및 열대의학 교실 (UCL and the London School of Hygiene & Tropical Medicine)의 연구팀은 런던 지역에서 처방된 약물을 조사해 527,364명의 란소프라졸 사용자와 비슷한 PPI 계통의 위산 억제제인 오메프라졸 (omeprazole) 및 판토프라졸(pantoprazole)을 처방받은 923,500명의 결핵 발생율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란소프라졸군은 인구 10만명 당 10건의 결핵환자가 생긴 반면 판토프라졸/오메프라졸군은 15.3건의 결핵환자가 발생해 란소프라졸군이 훨씬 발생율은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란소프라졸이 결핵균의 cytochrome bc1 complex에 영향을 줘 결핵균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대규모 임상실험을 통해 검증이 필요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결과인 점은 분명합니다. 


 약물의 예상치 않은 작용때문에 새로운 치료 약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대표적으로 아스피린은 진통 해열제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주로 심혈관질환에서 혈소판 억제제로 더 널리 사용됩니다. 심근경색처럼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란소프라졸이 결핵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면 이미 부작용이나 효과가 잘 알려진 약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데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서 결핵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임상 시험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고 


PLOS Medicine (2017). DOI: 10.1371/journal.pmed.1002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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