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소개드린데로 군용 로봇들에 대한 연재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뭐 제목은 거창하지만 내용이야 그렇게까지 기대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참고 정도로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하기 전에 한가지 설명드릴 내용은 이전에 무인기에 대해서 한번 다뤘기 때문에 로봇 가운데서 무인기 형식의 것은 빼고 주로 지상 무기 위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또 무인이나 원격 조정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만 JDAM 같은 스마트 폭탄이나 미사일은 빼고 이야기 합니다.
1. 2차 대전 당시의 원격 조정 무기의 등장
현대적인 원격 및 자율 조종 군용 로봇의 시초는 아마 2차 세계 대전 당시로 거슬로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에서 원격으로 조정하거나 자동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무기 개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죠. 대표적인 원격 조종 무기는 바로 소비에트의 텔레탱크 (Teletank) 와 독일의 골리아테 (Goliath) 이었습니다.
소련은 1930 년대와 1940 년대에 걸쳐서 원격으로 조정이 가능한 탱크의 연구에 착수합니다. 본래 소련은 강력한 탱크 전력을 확보해 서방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스탈린 집권이후 수많은 실험적 탱크를 시도한 바 있습니다. 이전에 한번 설명드린 비행 탱크도 그런 시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 http://blog.naver.com/jjy0501/100089056002 참조 )
텔레탱크는 당시의 열악한 무선 송신을 통해서 약 500 - 1500 미터 정도 거리에서 작은 탱크를 원격으로 조정하려 했던 시도입니다. 베이스 탱크로는 T-16, T-26, T-38, BT - 5, BT - 7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중 어느 것이든 비교적 작은 크기의 탱크를 원격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름 이유는 있었습니다.
작은 크기의 탱크 들은 아주 얇은 장갑을 가지게 마련이고 이중에 정말 작은 것들은 중기관총이나 소화기 사격에도 장갑이 뚫리는 황당한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2차 대전 전과 초기에 특히 소련이 대량으로 생산한 중소형 전차들은 가벼운 장갑과 저출력 엔진 덕에 대량 생산에는 매우 적합했지만 불행히 방어력은 매우 약한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또 내부도 매우 좁아서 사람이 들어가서 조작하기도 불편합니다.
(소련의 T - 26 탱크. 9.6 톤 정도의 당시로써는 아주 작은 소형은 아니고 준중형 정도되는 탱크였음.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T26_parola_1.jpg )
(소련의 T - 18 탱크. 5.9 톤에 길이 4.38 미터 정도로 소형 승용차 만한 크기.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File:MS-1.jpg )
따라서 저렴하지만 대신 생존성이 빈약한 소형 탱크를 무선으로 원격 조종 하면 전차병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금같이 비디오로 화면을 보면서 원격으로 조정할 순 없었고 텔레탱크가 앞서 전진하면 뒤에서 컨트롤 탱크가 따라가면서 조종을 했습니다. 컨트롤 탱크는 무선 송신기와 조작수 외에 역시 무장을 가지고 있어 텔레탱크를 엄호하는 역활을 수행했습니다.
텔레탱크는 중기관총이나 화염 방사기 등으로 무장을 했지만 자폭 목적으로 내부에 200 - 700 kg 정도의 폭탄을 탑재해 적의 요새화된 진지를 폭파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전과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화학 무기를 탑재한 버전도 고려되었다고 합니다.
(겨울 전쟁 당시 전투에 참가했다 피격된 텔레탱크 (TT - 26). Shot-up TT-26 remotely-controlled tank (teletank) with TOZ-IV telematics equipment from 217th separate tank battalion of 30rd tank brigade. Two antenna leads on the turret roof and two-colour camouflage of the vehicle are visible. Karelian Isthmus, February 1940.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Tt-26.jpg )
텔레탱크는 핀란드와의 전쟁인 겨울 전쟁 (1940) 에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독소전 당시 적어도 2개의 텔레탱크 대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전과가 썩 좋지 못했는지 - 당시 원격 조종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 이후 널리 사용되지 않았고 독일군 역시 이 전법을 그대로 모방하진 않았습니다. 사실 당시 빈약한 기술 수준으로 인해 적진으로 진격한 텔레탱크가 인민과 조국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았고 (즉 무선 신호가 끊어짐) 그러면 뒤따라오던 컨트롤 탱크가 적의 손에 노획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주포로 반동 텔레탱크를 처단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한편 독일군 역시 다양한 크기의 무인 원격 조종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특히 잘 알려진 것은 바로 골리아테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텔레탱크와는 달리 꽤 유명한 이 무인 자폭 로봇은 독일군이 서방 연합군 측을 상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사실 잘 알려졌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즉 동부전선에서 사용된 텔레탱크는 그다지 큰 활약을 하지도 못했지만 서방 측과 접촉할 일이 없다보니 알려지지 않았던 셈입니다.
골리아테는 자폭 전차 혹은 Tracked mine (궤도 지뢰) 등의 명칭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합군들은 딱정벌레 탱크 (Beetle Tank) 라고도 불렀습니다. 독일어로는 Leichter Ladungstrager Goliath (Sd.Kfz. 302/303a/303b) 인데 경 폭발물 수송장치란 뜻 입니다. 대략 1.5 미터 정도 길이에 50 kg 정도의 폭발물을 탑재할 수 있으며 650 미터 정도 길이의 케이블로 유선 조종해서 목표물에 다가가 폭발시키는 소형 이동식 폭발물이었습니다.
골리아테는 초기엔 전기 배터리 방식을 써서 이동거리가 짧았으나 후기엔 가솔린 엔진으로 바뀝니다. 이 유선 로봇 (?) 은 극악으로 느린 속도와 (시속 9.5 km) 약한 장갑으로 인해 일단 눈에 띄면 쉽게 파괴당했기 때문에 전투에서의 효용성은 별로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유명세를 탄 무기입니다.
한편 독일군은 골리아테 보다 더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스프링거 (Springer : Mittlerer Ladungstrager Springer, Sd.Kfz. 304 ) 라는 자폭 무기를 개발했는데 무려 330 kg 의 고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골리아테에서 문제로 지적된 약한 장갑과 느린 속도도 개선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무기를 조작하는 조종사는 골리아테 조종수 보다 훨씬 용감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유선 케이블과 조이스틱으로 조종하는 대신 스프링거의 뒤에 타서 조작하다 목표물에 닿기 전 마지막 순간에 뛰어내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기폭은 유선이나 무선으로 콘트롤 했습니다.
2차대전의 마지막 해인 1945년에서야 생산되어 실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 무기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엔 조종사가 뛰어내리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같은 추축국이라도 거의 제대로 미친 일본의 경우라면 아마 조정사가 같이 특공으로 산화하게 디자인 했을 텐데 독일은 아무튼 조종사는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살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역시 미쳐도 곱게 미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독일 국방군 (Wehrmacht)은 경량의 골리아테와 중량급의 스프린터를 개발하면서 나름대로 무인 무기의 라인업을 완성하고자 헤비급 원격 조종 무기인 보그바트 IV (Borgward IV : Schwerer Ladungstrager Borgward B IV (heavy explosive carrier Borgward B IV) Sd.Kfz. 301 ) 라는 무기를 개발합니다. sd.Kfz 301 - 304 까지를 이들 원격 조종 무기들이 차지하는 걸로 봐서는 연속된 시리즈로 개발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세 무기중 보그바트 IV 가 가장 먼저 실용화됩니다.
최초 보그바트는 B IV 탄약 수송 차량을 개조해서 만들어졌으나 상당히 불안정해서 프랑스 전역 이후 거의 쓸데 가 없어진 1호 전차 (Panzer I Ausf. Bs) 를 개조해서 테스트 되었으며 이후 1942 년 이후 초기형인 Ausf. A 에서 B, C 형이 차례로 만들어집니다. 말기형이랄 수 있는 Ausf. C 형은 4.1 미터 길이에 78 마력 엔진을 탑재하고 장갑되 최대 두께 20mm 로 보강되었습니다. 무게도 3.45 톤에 달했고 수송할 수 있는 폭탄의 양도 450 kg 으로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폭탄을 제외한 기본형도 길이 3.35 미터, 너비 1.8 미터, 높이 1.25 미터로 크기도 거의 경차만했습니다.
(보그바트 IV. 앞쪽에 있는 것이 분리식 폭탄.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 )
무엇보다 이 무기가 후세의 무인 전투 로봇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선 라디오로 원격 조종이 가능했다는 점과 자폭하는 것이 아니라 폭탄을 내려놓고 후퇴가 가능해서 여러번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평시에는 보그바트 IV 에 조종수가 타고 유인으로 조종합니다. 105 리터의 연료 탑재가 가능해서 120 km 이동이 가능하며 최고 속도는 40 km/h 로 전차 부대와 함께 이동했습니다. 보그바트 IV 는 모차라고 할 수 있는 전차와 함께 다니다가 목표물 (파괴시켜야할 교량이나 혹은 건물등) 이 발견되면 조종수가 내리고 뒤따라오던 전차에 탑승 무선 조종으로 전환하여 목표물에 접근 시킵니다. 그리고 목표물에 도달하면 폭탄을 내려놓고 다시 후퇴하여 아군과 합류하고 폭발물은 무선으로 기폭시킵니다. 따라서 재활용도 가능했고 조종수가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면서 장렬하게 같이 폭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구조상 전면부에 400 kg 도 넘는 고폭탄을 탄 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조종수는 극도로 위험했습니다. 재수없게 중기관총이나 혹은 대전차 저격총, 혹은 유탄 등에 장갑을 뚫려 폭탄이 유폭하면 조종수가 살아남는 경우는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정도 폭탄이 터지면 근처의 아군도 안전할 순 없었겠죠.
보그바트 IV 는 독일 전차부대에 널리 보급되긴 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인 무기라곤 할 수 없었고 때때로 아군에게도 위험했습니다. 총 1181 대가 생산된 보그바트 IV 는 결국 1944년 9월 생산이 중단됩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군이 이런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앞선 기술력을 지녔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보그바트 IV 는 소련군의 텔레탱크와 더불어 원격 조종 전투 무기의 효시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는 전투 로봇의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한 무기이지만 당시엔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고 전후에 이와 비슷한 무기가 널리 개발되거나 생산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의 전자 기술로는 아주 제한 적인 성능의 원격 조종 만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본격적으로 로봇 기술 및 원격 조종, 자동 제어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로봇 무기의 재등장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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