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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에 염소를 없애면 포식성 박테리아가 늘어난다.



 (Central slice through a cryotomogram of an intact Bdellovibrio bacteriovorus cell. Scale bar 200 nm. 출처: wikipedia)



(델로비브리오의 생활사. Bdellovibrio Life Cycle. The Bdellovibrio attaches to a Gram-negative bacterium after contact, and penetrates into the prey's periplasmic space. Once inside, elongation occurs and progeny cells are released within 4 hours. 출처: wikipedia)

우리가 먹는 식수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깨끗한 상수원에서 가져온 물이라도 그 안에는 수많은 박테리아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체에 해롭지 않은 방법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은 염소 소독입니다.

하지만 염소 소독의 결과물롸 생기는 클로라민 (monochloramine, NH2Cl)은 다량 섭취시 발암성이 있다는 연구가 있어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그정도 양을 섭취하기가 매우 어려우나 이로 인해 정수기나 생수를 마시는 경우가 있어 결국은 자외선이나 필터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돗물을 정수하게 됩니다.

스웨덴 룬드 대학교의 과학자들은 2020년 염소 소독 대신 고도 정수 시스템을 도입한 스웨덴 바르베리 시의 상수도 시스템의 세균들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사했습니다. 염소 소독을 한 후에도 수돗물 한 컵에는 1000만 마리의 박테리아가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세균들은 사람에 무해한 세균으로 우리 몸은 충분히 이들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정도도 면역 시스템에서 처리 못하면 수돗물이 없던 시절에는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은 염소 소독 대신 고도 정수 시설로 바꾼 후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세균의 구성은 바뀌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클로라민에 대한 내성이 있는 세균은 줄어든 반면 전혀 다른 종류의 세균은 증가했습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다른 세균을 잡아먹는 포식성 세균인 델로비브리오 (Bdellovibrio)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델로비브리오는 이빨이나 발톱은 없지만, 총알처럼 엄청난 속도로 다른 세포의 몸에 구멍을 뚷고 들어가 내부에서 증식하는 독특한 형태의 포식성 박테리아입니다.

델로비브리오 : https://blog.naver.com/jjy0501/221309106933

사실 정수장에서 거른 후 다른 소독제가 없다면 상수도 시스템에서 박테리아의 개체수는 증가합니다. 이번 연구에서도 개체수는 440% 정도 증가했으나 델로비브리오 덕분에 세균 개체수 증가가 억제된 것으로 보입니다.

델로비브리오는 인간 세포에 침투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는 무해합니다. 따라서 델로비브리오는 정수 시스템을 일부 돕거나 혹은 항생제를 대신할 치료제 목적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정수 시스템을 지니지 못한 오지나 개도국, 혹은 재난 및 전쟁 상황에서 유해한 세균을 제거할 목적으로 델로비브리오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 결과도 이런 기대를 더 높이고 있긴 하지만, 대량의 델로비브리오를 먹었을 때는 아무래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체 세포는 파괴하지 않아도 만약 위산을 피해 장으로 침투할 경우 장내 미생물은 공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정수 시스템 대신 사용하는 것은 좀 더 생각해볼 문제 같습니다.

참고

https://newatlas.com/science/predatory-bacteria-safe-drinking-water-without-chlorine/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45-023-0025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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