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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의 행동과 수명을 조종하는 기생충

 


(촌충(Anomotaenia brevis)에 감염되어 노란색을 띠는 것이 특징인 템노토락스 닐란데리(Temnothorax nylanderi) 종의 일개미와 감염되지 않은 일개미의 모습. 사진 제공: 수잔 포이치크(Susanne Foitzik))


(뇌와 지방체에서 신경펩티드와 그 수용체의 차등 발현. 출처: BMC Genomics (2026). DOI: 10.1186/s12864-026-12959-6)

일부 기생충들은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듭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중간 숙주의 행동을 변화시켜 최종 종숙주에 쉽게 도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톡소포자충은 중간 숙주인 쥐가 종숙주인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어 종숙주로 쉽게 이동하게 조종합니다.

이렇게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은 곤충에서 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개미를 중간 숙주로 삼는 촌충(tapeworm)인 아노모태니아 브레비스 (Anomotaenia brevis)는 감염된 템노토락스 닐란데리 (Temnothorax nylanderi) 일개미의 수명을 몇 배나 늘려줍니다. 이렇게 말하면 더 좋은 것 같지만, 동시에 게으르고 움직이지 않는 개미가 되어 최종 숙주인 딱따구리에 쉽게 잡아 먹히는 상태가 됩니다.

작은 기생충이 숙주의 행동은 물론 수명까지 조절하는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대학교 마인츠(JGU) 유기체 및 분자 진화 연구소(iomE)의 수잔 포이치크 교수 (Professor Susanne Foitzik from the Institute of Organismic and Molecular Evolution (iomE) at JGU) 연구팀은 마인츠 인근 레네베르크 숲의 개미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은 개미들을 잡아와 여왕개미, 촌충에 감염된 일개미, 그리고 감염되지 않은 일개미의 세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개미의 뇌와 지방체 (fat body)를 해부했습니다. 지방체는 복부에 있는 조직으로, 곤충에서 신진대사와 면역 체계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연구팀은 RNA 시퀀싱을 사용하여 뇌와 지방체에서 어떤 유전자가 활성화되어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기생충인 촌충의 유전체 및 전사체 데이터(유전 물질과 활성화된 유전자에 대한 데이터)를 조사했습니다.

유전자 분석 결과, 기생충은 단순히 개미를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정밀하게 생리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분자 수준에서 감염된 일개미들은 여왕개미와 유사한 특징을 보였는데, 특히 지방체에서 이러한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감염된 일개미의 수명을 크게 늘리는 핵심 기전으로 생각됩니다.

반면 감염된 개미의 뇌에서는 여왕개미와 다른 모습을 나타났습니다. 감염된 일개미는 행동, 먹이 섭취, 사회적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호 전달 분자인 여러 신경펩티드와 그 수용체의 발현이 감소했습니다. 이는 게으른 일개미를 만들어 종숙주인 딱따구리가 둥지를 공격할 때 쉽게 도망치지 못하게 만듭니다.

참고로 기생충이 개미를 조절하는 기전은 유전자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끄는 방식을 통해 이뤄집니다. 여왕개미이든 일개미이든 간에 유전자가 모두 동일한 데도 각자 특정한 형태의 개미가 되는 것은 후생유전학 (epigenetics)적으로 유전자 발현이 달라지기 때문인데, 이를 이용한 것입니다.

특히 기생충은 일개미의 조직별로 후생유전학적 스위치를 다르게 조절하는 치밀함을 보입니다.지방체에서는 여왕개미처럼 대사 및 항산화 관련 유전자 발현을 크게 끌어올려 세포 손상을 막고 스트레스 저항성을 높입니다. 반대로 뇌 조직에서는 행동 및 노동을 유도하는 신경물질과 그 수용체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시킵니다. 일개미가 여왕처럼 오래 살게 만들되, 뇌까지 여왕개미처럼 활성화되어 알을 낳거나 제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도록 행동만 멍하고 게으르게 조종하기 위함입니다.

덕분에 기생충은 호르모 분비 없이도 일개미를 목적에 맞게 치밀하게 조종할 수 있습니다. 기생충의 놀라운 진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6-07-tapeworm-hijacks-worker-ants-queen.html

Giulia Blasi et al, Cestode infection is linked to transcriptional shifts in neuropeptide signalling and caste-specific ageing pathways in a social insect, BMC Genomics (2026). DOI: 10.1186/s12864-026-129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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