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거대 바이러스 유전자의 기원은?


('Brown tide virus' is a member of a class called the giant viruses. Researchers have discovered genes for key cellular metabolic cycles in many giant viruses, suggesting that these microbes may be interacting with their hosts in more diverse ways than previously thought. Credit: Dr. Chuan Xiao and Yuejiao Xian, the University of Texas at El Paso.)


 바이러스는 대부분 일반적인 현미경으로 관찰이 불가능할 정도로 작습니다. 바이러스의 자기 복제에 필요한 필수 유전자 몇 개 만을 지니다보니 크기가 커질 이유가 없는 것이죠. 크기가 작아질수록 한 번 세포에 감염된 후 더 많은 바이러스를 증식시킬 수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바이러스는 점점 작아져 대부분 전자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크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에 역행하는 바이러스들이 존재합니다. 거대 바이러스 (Giant Virus)로 알려진 이 새로운 바이러스 그룹은 사실 너무 커서 1992년 이전에는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바이러스 이외의 생물체를 거르기 위한 필터에 걸려 역설적으로 큰 크기에도 바이러스로 분류되지 않거나 혹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대 바이러스는 여전히 세균에 비해서 작지만, 유전자의 복잡도는 다른 바이러스의 수백배에서 수천배에 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대사를 할 수 있는 세포 소기관이나 단백질/효소를 지니고 있지 않고 단지 다른 세포의 자원을 이용해서 스스로를 복제할 뿐이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기준에 맞습니다. 


 버지니아 공대의 프랭크 아일워드 교수(Frank Aylward, an assistant professor of biological sciences in the College of Science)와 포닥 연구자인 모니르 모니루자만 (Monir Moniruzzaman)은 501종의 거대 바이러스 유전자를 분석해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 유전자를 들고 다니는지 분석했습니다. 사실 남의 세포를 빌어 유전자와 필요한 물질을 생산하는 바이러스 입장에서 큰 유전자는 매우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뿐입니다. 같은 세포에서 만들 수 있는 바이러스 입자가 줄어들어 후손을 남기는 데 불리할 뿐 아니라 크기가 커지기 때문에 한 번에 완벽하게 조립될 수 있을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한마디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셈입니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거대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은 어떤 이점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연구팀은 거대 바이러스의 커다란 유전자 중 상당수가 사실 숙주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바이러스가 이런 숙주 유전자를 지니고 다니는 이유입니다. 이 유전자들은 세포의 대사 과정을 바꿔 바이러스 증식을 돕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정확한 기능과 기원에 대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거대 바이러스는 단순히 독특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해양 및 수중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들이 조류 (Algae) 같이 생태계의 일차 생산자에 감염되어 개체수를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큰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있었던 바이러스에 대해 우리는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참고 


Nature Communications (2020). DOI: 10.1038/s41467-020-15507-2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