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청자고동의 독을 약물로 개발한다?



(In the wild, cone snails harpoon their prey as it swims by. In the lab, the cone snail has learned to exchange venom for dinner. Here, a snail extends its proboscis and discharges a shot of venom into a latex-topped tube. Credit: Alex Holt/NIST)


 청자고둥 (Cone snail)은 아름다운 껍데기 때문에 수집가에게 인기가 좋지만, 사실 과학자들에게는 강력한 독을 가진 무척추동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청자고둥은 작은 물고기나 무척추동물을 잡아 먹는 포식자로 속도는 느리지만, 매우 강력한 독을 이용해서 먹이를 잡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독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물질일 뿐 아니라 의료용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인슐린을 독으로 사용하는 청자고둥도 그런 사례입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 연구소 (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NIST))의 프랭크 마리(Frank Marí)와 그의 연구팀은 15년 동안 다양한 청자고둥의 독을 연구해왔습니다. 이중에는 사람에게 위험한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독특한 독의 작용 기전을 연구하면 유용한 약물 개발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이 집중 연구한 청자고둥은 캘리포니아에서 페루까지 태평양 동쪽 연안에서 서식하는 종인 보라색 청자고둥 purple cone snail (Conus purpurascens)입니다. 이 청자 고둥은 매우 느린 생물체지만 매우 독특한 무기를 통해 자신보다 빠른 물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몸안에 작살 모양으로 생긴 이빨을 지니고 있어 이를 발사해 먹이를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이빨은 1회용이며 20개 정도 내장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가장 독특한 발사 무기 가운데 하나인 셈입니다. 먹을 때는 이빨을 사용하지 않고 통채로 삼켜서 소화시킵니다. 


 연구팀은 이 독을 연구해서 3편의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Scientific Report에 발표된 논문은 신경독인 Conotoxin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독과 마찬가지로 보라색 청자고둥의 독 역시 여러 가지 독성물질이 혼합된 것이지만,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순식간에 신경을 마비시키는 신경독입니다. 이 빠른 작용 기전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속효성 약물, 특히 항암제 개발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동시에 이 독이 신경뿐 아니라 면역 시스템에도 영향을 준다는 흥미로운 발견도 같이 보고되었습니다. 


 두 번째 논문은 Journal of Proteomics에 발표되었는데, 다른 독성 물질인 Conohyal-P1에 대한 것입니다. 다른 많은 동물독과 마찬가지로 청자고둥에 독에도 세포막을 약하게 하거나 녹이는 성분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독과 비슷한 성분이 포유류의 정자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그 목적은 난자의 세포막을 녹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Conohyal-P1을 ultrahigh-resolution mass spectrometer로 분석해 연구했습니다. 어쩌면 여기서 불임치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 결과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논문은 journal Neuropharmacology에 발표되었으며 conotoxin을 이용해서 초파리의 뇌의 반응을 조사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초파리 동물 모델을 통해 이 물질이 운동이나 중독에 관련되는 신경 중추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앞으로 파킨슨 병 같은 질환에 치료 물질로 개발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청자고둥의 독을 비롯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독은 약물로 개발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약물이 자연독에서 개발되었으니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 사실은 우리가 희귀종을 포함해서 자연 생태계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줍니다. 지금은 아무 경제적 가치가 없는 생물종이 미래에는 인류를 위해 귀중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Alberto Padilla et al, Effects of α-conotoxin ImI on TNF-α, IL-8 and TGF-β expression by human macrophage-like cells derived from THP-1 pre-monocytic leukemic cells, Scientific Reports (2017). DOI: 10.1038/s41598-017-11586-2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