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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 검출은 오류였다?



 2014년 과학계의 가장 큰 뉴스 가운데 하나는 BICEP2의 중력파 검출 소식이었습니다. 1916년 아인슈타인에 의해 처음 이론적으로 그 존재가 의심된 이후 거의 100년만의 쾌거였습니다. 



 이는 과학계의 큰 경사였으나 불행히 이 결과에 대한 오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 오류의 원인은 우주 먼지 (Cosmic dust) 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 오류를 찾아낸 것은 유럽 우주국(ESA)의 플랑크 위성(Planck Satellite) 였습니다.
 BICEP2/Keck 어레이 관측 기기는 우주 배경 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를 관측하는 장치입니다. BICEP은 Background Imaging of Cosmic Extragalactic Polarization라는 뜻으로 우주 배경 복사의 편광(polarization. 빛의 진동이 일정한 방향으로 늘어서는 것) 현상을 검출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 배경 복사 관측을 통해 빅뱅 이론이 옳다는 것을 검증한 바 있습니다. 우주 배경 복사는 빅뱅 이후 38만년 후 전자와 광자가 직진을 할 수 있게 된 우주의 맑게 갬 현상 이후 발생한 것으로써 우주 어디서든 관측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이 우주 배경 복사에 더 오래전 우주의 역사가 새겨져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Inflation) 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발생 초기에 우주는 순식간에 급팽창을 겪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급속한 팽창으로 인해 우주는 매우 균일한 모습을 하게 되었는데, 상대성 이론이 옳다면 이 급속한 평창은 중력파의 형태로 그 흔적을 어딘가 남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 중력파가 우주 배경 복사에 특수한 편광 현상을 일으켰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curly(B-mode) 와 circular/radial (E-mode) 의 편광이 그것인데, 이 중 BICEP2가 검출하려 했던 것은 우주 배경 복사의 B-mode 편광 현상입니다. 그리고 앞서의 발표에서 BICEP2/Keck 연구팀은 바로 이 B-mode 편광 현상을 관측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빅뱅 직후 38만년 후, 자유 전자와 원자핵이 결합되어 수소와 헬륨으로 변하면서 전자기파의 직진이 가능해지고 우주 배경 복사가 탄생함. 이 때 초기 인플레이션의 잔상인 중력파가 영향을 미쳐 미세한 편광 현상을 일으킴.

(BICEP2 관측소. 남극의 아문센 기지에 위치한다.  출처: wikipedia )    
 문제는 이런 편광 현상이 우주에 매우 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편광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주 역시 마찬가지인데 성간 물질에 의해서도 이런 편광 현상이 나타나 성간 편광(insterstellar polarization)이라고 명명합니다. 우주 배경 복사는 우주 전체에 퍼진 전자기파이므로 당연히 성간 물질, 특히 은하의 가스와 먼지에 의해서 편광 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유럽 우주국의 플랑크 위성은 9개의 밀리미터 및 서브 밀리미터 영역 주파수 관측이 가능하며, 이 중 7개 파장에 대해서 편광 분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플랑크 위성 관측 결과에서는 BICEP2와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BICEP2 관측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연구팀은 플랑크 관측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2014년 가을, BICEP2 팀은 플랑크 팀과 함께 같이 데이터를 분석했고 그 결과 은하의 성간 먼지와 가스에 의한 편광 현상을 배제할 경우 BICEP2 의 B-mode 편광 현상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 처럼 확실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플랑크 위성으로 관측한 남쪽 하늘.  This image shows a patch of the southern sky and is based on observations performed by ESA's Planck satellite at microwave and sub-millimetre wavelengths. The colour scale represents the emission from dust, a minor but crucial component of the interstellar medium that pervades our Milky Way galaxy. The texture, instead, indicates the orientation of the Galactic magnetic field. It is based on measurements of the direction of the polarised light emitted by the dust. The highlighted region shows the position of a small patch of the sky that was observed with two ground-based experiments at the South Pole, BICEP2 and the Keck Array, and yielding a possible detection of curly B-modes in the polarisation of the 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 the most ancient light in the history of the Universe. However, a joint analysis of data from BICEP2, the Keck Array, and Planck has later shown that this signal is likely not cosmological in nature, but caused by dust in our Galaxy. The image shows that dust emission is strongest along the plane of the Galaxy, in the upper part of the image, but that it cannot be neglected even in other regions of the sky. The small cloud visible in red, to the upper right of the BICEP2 field, shows dust emission from the Small Magellanic Cloud, a satellite galaxy of the Milky Way. The image spans 60° on each side. Credit: ESA/Planck Collaboration. Acknowledgment: M.-A. Miville-Deschênes, CNRS - Institut d'Astrophysique Spatiale, Université Paris-XI, Orsay, France)  

(플랑크의 전천 관측 데이터 맵.  This image shows the all-sky maps recorded by Planck at nine frequencies during its first 15.5 months of observations. These were collected using the two instruments on board Planck: the Low Frequency Instrument (LFI), which probes the frequency bands between 30 and 70 GHz, and the High Frequency Instrument (HFI), which probes the frequency bands between 100 and 857 GHz. The Cosmic Microwave Background is most evident in the frequency bands between 70 and 217 GHz. Observations at the lowest frequencies are affected by foreground radio emission from the interstellar material in the Milky Way, which is mostly due to synchrotron radiation emitted by electrons that spiral along the lines of the Galactic magnetic field, but also comprises bremsstrahlung radiation, emitted by electrons that are slowed down in the presence of protons, as well as emission from spinning dust grains. Observations at the highest frequencies are affected by foreground emission from interstellar dust in the Milky Way. The combination of data collected at all of Planck's nine frequencies is crucial to achieve an optimal reconstruction of the foreground signals, in order to subtract them and reveal the underlying Cosmic Microwave Background. Credit: ESA and the Planck Collaboration )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이 결과가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중력파를 검증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만 더 연구가 필요할 뿐이죠. 과연 언제 좋은 소식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머지 않은 미래에 검증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만약 중력파가 실제로는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상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사실 과학은 그런 예기치 않았던 관측 결과에서부터 발전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 더 흥미로운 일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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