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CC0 Public Domain)
무성 생식을 하던 유성 생식을 하던 간에 후손을 남기는 것은 생명체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상 생명 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정의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명활동을 하지 않는 바이러스도 사실 무한 증식과 후손 남기기라는 목표에는 충실한 입자들입니다. 생명체가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자기 복제와 유전자 남기기는 포기할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도 생물체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이 짝짓기입니다. 심지어 목숨을 내놓고 짝짓기를 해서 후손을 남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짝짓기가 모든 행동을 지배한다면 오히려 후손을 남길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일단 내가 살아야 짝짓기도 하고 후손도 보는 것이지요. 따라서 짝짓기도 적절한 시기를 노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버밍햄 대학의 캐롤라이나 레자발 박사 (Dr. Carolina Rezaval)는 굶주린 수컷 초파리가 짝짓기와 식량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는지 연구했습니다. 굶주린 수컷 초파리에게 짝짓기와 식량은 모두 중요한 사안이지만,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을 때는 적절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일단 당장에 먹어서 생존을 도모하고 후일 짝짓기를 노릴 것인지, 아니면 일단 짝짓기 기회부터 놓치지 않고 잡은 후 먹이를 노릴 것인지는 매우 고민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구팀의 목적은 초파리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단순한 뇌를 이용해서 적절한 판단을 하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초파리의 뇌는 20만 개에 불과한 뉴런으로 여러 가지 복잡한 인지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중요한 실험 대상입니다. 물론 초파리의 뇌와 인간의 뇌는 분명 다르지만, 860억 개나 되고 마음대로 실험할 수 없는 인간의 뇌를 바로 연구하는 것보다 초파리의 뇌를 모델로 연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뇌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연구팀은 초파리에게는 상당히 긴 시간인 15시간 정도를 굶긴 후 수컷 초파리의 선택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일단 초파리는 먹이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먹이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짝짓기부터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일단 먹이를 먹고 나면 수컷 초파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근처에 있는 암컷과 짝짓기를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유전자를 이용해서 특성 뉴런에 형광 표시를 한 후 뉴런을 차단하거나 활성화시키는 방식으로 초파리의 의사 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뉴런과 신경 경로를 확인했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초파리의 의사 결정 과정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어떤 경로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지 알아내서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한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튼 굶주린 상태에서는 일단 먹기부터 하는 것은 초파리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내가 살아야 후손도 남길 수 있는 것이니까요. 모두 생명의 근본적인 욕구지만, 둘 다 부족할 땐 식욕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1-08-food-sex-fruit-flies-insight.html
Rezaval et al (2021). "A neuronal mechanism controlling the choice between feeding and sexual behaviors in Drosophila." Current Bi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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