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가장 획기적인 의학적 성과 중 하나입니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실제 감염 전에 획득해서 병에 아예 잘 걸리지 않거나 혹은 걸리더라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경과로 끝나게 만드는 일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항원을 인식시키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 이미 인식된 항원에 대한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일입니다.
본래 면역 시스템은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세포나 바이러스를 공격해야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게 마련이라서 인간의 면역 시스템은 종종 자신의 세포와 조직을 공격합니다. 대표적인 질환이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1형 당뇨, 다발성 경화증, 자가 면역에 의한 갑산성염 등입니다.
이렇게 잘못 인식된 면역 반응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면역 반응을 전반적으로 억제하는 면역 억제제를 사용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면역 반응도 일어나지 않아 기회 감염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부작용과 더불어 여러 가지 다양한 부작용이 생길 위험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과학자들은 선택적으로 항원 반응을 차단하기 위한 대안을 연구해 왔습니다. 중요한 단서는 사실 우리 몸에 존재합니다. 사실 T 세포는 종종 아군을 적군으로 오해하는데, 이 경우 지속적인 자가 면역 반응을 막기 위한 피아식별 시스템이 우리 몸안에 존재합니다. 이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것은 간의 역할입니다. 이미 죽은 세포가 적이 아닌 아군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기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앤드류 트리메인과 레이첼 왈레스 (Andrew C. Tremain, Rachel P. Wallace)가 이끄는 연구팀은 T 세포의 항원 인식 기능을 막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연구팀은 항원에 N-acetylgalactosamine (pGal)라는 물질을 붙여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아군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과정을 모방할 수 있다고 보고 동물 모델을 이용해 이를 검증했습니다.
다발성 경화증(MS)처럼 신경세포를 둘러싼 피막인 수초 (myelin sheath)를 공격하는 자가 면역 질환 쥐 모델을 이용한 연구에서 pGal을 붙인 항원은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1상 임상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고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선택적 면역 반응 억제가 가능하다면 상당히 많은 질병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식 장기의 거부 반응을 막는 새로운 방법이 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참고
https://newatlas.com/medical/inverse-vaccine-reverses-autoimmune-disea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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