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순환 단전은 가정용 부터 ? - 전력 대란 관련 논란들



 사상 유래 없는 원전 부품 비리와 수요 예측 실패, 그리고 갈수록 심해지는 무더위라는 여러가지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2013 년 여름은 블랙아웃의 위험성이 전례 없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여러가지 형태의 절전 및 비상 대책을 수립했는데 이것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여러가지이지만 그 중 하나는 최근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이 순환 단전 계획과 순서에 대해서 의의를 제기하면서 생긴 논란입니다. 


 일단 2011 년 9월 15일에 있었던 순환단전 사태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당시에도 순위가 있기는 했지만 2013 년 이미 블랙 아웃의 우려가 커진 시점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내부 매뉴얼이 있다는 주장이 여기 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이 가정용 전력을 1 순위로 단전할 것이라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 되고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1 순위 단전은 아파트와 단독 주택이며 2 순위는 백화점 대형마트, 3 순위는 기업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언론 주장에 의하면 1 순위 단전은 아파트와 단독 주택 그리고 교육용 및 상가등 단전 피해가 적은 곳으로 441 만 호/ 전체 전력 부하 18% 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2 순위는 경공업 및 일단 공단으로 100 만호 (혹은 사) 로 전력 부하 13% 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3 순위는 산업용 전용 선로 및 다중 이용시설로 단전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입니다. 중앙 및 지자체 행정기관, 국군 및 유엔군 부대, 중요 방위산업·전력시설, 공항(비행장), 금융기관, 의료기관, 교통·수자원 시설, 탄광, 통신 및 언론사 등의 경우 마지막까지 단전에서 제외되게 되며 전체 부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언론 보도 및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 민주당 박완주 의원에 대해 일단 산업 통상 자원부 측은 순환 정전을 예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 전력 수요 관리와 전력 수급 대책을 적극 시행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 구체적인 순환 정전 규모와 대상을 미리 공개하지 않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도 공개한 바가 없고 불필요한 불안을 조성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일단 논리적으로 보면 단전시 피해액수가 가장 적은 곳부터 단전을 하는 것이 순리에 맞긴 하겠죠. 160 만 가구가 순환 단전된 9.15 단전 때도 주택 및 상업용 건물 부터 단전되고 중요 시설 및 대형 기업체 단전은 되지 않았는데 논리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긴 합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이나 철강 공장이 단전되면 손해 액수가 엄청날 테니 말이죠. 


 다만 한전과 정부의 수요 예측 실패, 그리고 비리를 막지 못한 안이한 감사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무슨 일만 생기면 왜 일반 국민만 참아야 하는지 답답한 느낌이 드시는 분들은 꽤 많으실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고 말입니다. 솔직히 한국의 경우 가정용으로 사용되는 전기의 양은 전체의 14% 에 지나지 않고 산업용이 절반을 넘게 되기 때문에 가정에서 전기를 절약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여론을 감안했는지 지난 5 월 31일 산업 통상 자원부 보도 자료에서는 관공서와 기업들을 포함한 상당히 포괄적인 절전 대책이 나왔습니다. 그 내용은   


 - 모든 공공기관은 월간 전력사용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감축하고, 피크시간대(오후 2~5시)엔 20% 이상 감축한다. 

- 피크시간에 전등은 절반을 소등하고 냉방온도를 28℃ 이상으로 유지하는 한편, 냉방기는 순차로 운휴한다.  

- 계약전력 5000kW 이상인 2836호에 대해서는 8월 5일~30일 오전 10~11시와 오후 2~5시 전력사용량을 3~15% 의무적으로 감축

- 계약전력 5000kW 미만인 6만호에 대해서는 선택형 피크요금제를 적용한다. 7~8월 중 피크일과 피크시간대에 전기요금을 할증하는 대신, 비(非) 피크일과 피크일의 비(非) 피크시간대에는 할인해 줌으로써 전력 수요의 분산을 유도하는 것이다.

- 일반 가정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절전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주택용 전력 사용자가 7~8월 전년 동월과 비교해 일정률 이상 전기사용량을 줄이면 다음 달 전기요금에서 차감해주는 것이다.  

- 7~8월 피크시간 중 문을 열어놓고 영업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계도기간 없이 1차 경고 후 과태료를 부과하고, 대형건물의 냉방온도는 26℃ 이상으로 제한한다. 

- 피크시간대 수도권 지하철도 운행간격을 1~3분 연장 한다



 등입니다. 이런 대책이 나온 이유는 2013 년 8월 둘째주의 전력 예비율 예상치가 - 198 만 kW 라 아무 조치가 없으면 순환 단전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순환 단전 순서보다 더 중요한게 순환 단전이 없도록 하는 것이겠죠. 순환 단전은 전력 예비율 100 만 kW 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적어도 예상대비 300 만 kW 이상의 전력을 감축해야 합니다. 


 결국 돈을 더 주고라도 기업체에 단전, 자가 발전을 유도하고 각 사업장과 공공 기관의 냉방 수요를 엄격하게 줄인다는 계획입니다. 여기에 피크 시간대 수도권 지하철 운행간격을 1-3 분 정도 연장 (즉 운행 차량수를 줄인다는 의미) 한다고 하는데 이로 인한 대중 교통 이용자의 불편 역시 우려됩니다.


 이번 전력 대란은 국민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실상 전력 당국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고통은 모두가 분담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블랙 아웃이나 순환 정전/단전 사태가 오게 되면 모두에게 막대한 손해와 불편이 예상되기 때문이죠. 


 한가지 더 우려되는 문제는 이런식으로 전력을 팔지 못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지급하면 2012 년 기준 95 조원이라는 한전의 부채 규모가 2013 년에도 훨씬 더 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당장에는 전력난이 문제긴 하지만 공기업 부채 문제도 결국 나중에 꽤 문제가 될 것이고 이것도 국민들이 부담하는 공적 자금의 형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개인적으로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원전 비리 척결을 위한 강한 의지와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국민들이 불편을 참는 대신 적어도 납득이라도 할 수 있게 향후 전력 수급 대책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당장에는 국민들이 참고 절전에 참여하는 게 순리긴 하지만 뭔가 참는 것 말고도 대책은 있어야 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