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생충도 식이섬유 필요하다?



 (The rat tapeworm Hymenolepis diminuta remains in good condition when the diet is rich in fiber (A). Under a low-fiber diet, it becomes significantly smaller and enters a hibernation-like state (B). Credit: Biology Centre CAS)


우리 장 안에는 우리 몸의 세포 숫자보다 많은 장내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은 우리가 매일 먹지만 소화시킬 수 없는 식이섬유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장내 미생물 환경을 위해서는 적절한 식이섬유 섭취가 꼭 필요합니다.

​

체코과학원 생물학센터 기생충학 연구소의 카테리나 지르쿠(Kateřina Jirků from the Institute of Parasitology, Biology Center CAS)가 이끄는 체코 과학원의 연구팀은 장내 기생충도 식이섬유가 필요하다는 뜻밖의 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습니다.

​

사실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사실 장내 기생충은 인류 진화 역사의 대부분 동안 인간 소화계의 흔한 구성 요소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위생 개선과 현대 의학의 발달 덕분에 최근 수십 년 동안 장내 기생충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

따라서 인간이 더 건강해질 것 같았지만, 그후 역설적으로 자가면역 질환과 염증성 장 질환의 발병률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기생충들이 숙주의 면역 반응을 억제해 자신이 살길을 찾는데, 역설적으로 이들이 없으니 면역 반응에 브레이크가 없어 심한 자가면역 질환 및 염증성 장질환이 쉽게 생기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과학자들은 기생충 치료 (helminth therapy)라는 새로운 치료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병원성이 낮은 기생충을 일부러 투여해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생충 치료의 결과는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기생충이 염증을 억제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

연구팀은 장내 미생물 환경에 큰 영향을 주는 식이섬유가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모델 생물로는 기생충, 장내 미생물, 면역 체계 간의 상호작용 연구에 흔히 사용되는 쥐촌충 (Hymenolepis diminuta )을 사용했습니다 . 이 기생충은 병원성이 없으며 항염증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연구 결과 식이 섬유가 풍부한 식단을 섭취하면 촌충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숙주에게 항염증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식이섬유 섭취가 부족하면 촌충은 포유류의 동면과 유사한 에너지 절약 상태에 들어가며, 항염증 효과도 사라졌습니다.

​

섬유질 함량이 낮은 식단을 섭취한 쥐의 쥐촌충은 크기가 몇 배나 작았고, 성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으며, 알을 낳지도 않았습니다. 유전자 분석 결과, 발생, 신진대사 및 생식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에 광범위한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물론 식단 변화는 숙주의 장내 미생물군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은 건강한 장 환경과 관련된 박테리아의 증식을 촉진한 반면, 서구식 식단은 미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관련된 박테리아의 증식을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숙주의 면역 반응에도 반영될 뿐 아니라 기생충인 쥐촌충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장내 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분해해 숙주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데, 기생충 역시 이 영양분에 의존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 셈입니다.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기생충은 기본적으로 숙주의 영양분을 가로채기 때문에 숙주의 장내 미생물이 제공하는 영양분에도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아무튼 이번 발견이 기생충 치료법에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

​

참고

​

https://medicalxpress.com/news/2026-03-gut-microbiome-fiber-tapeworms.html

​

Milan Jirků et al, Developmental plasticity enables an intestinal tapeworm to adapt to dietary stress, Nature Communications (2026). DOI: 10.1038/s41467-026-69475-0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에서 제한적인 효과만을 확인한 렘데시비르

   현재 렘데시비르는 인공 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 등 중증 코로나 19 환자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공급이 부족해서 갑자가 중증 코로나 19 환자가 늘어날 경우 수급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 (경증이나 무증상은 당연히 치료가 필요없거나 대증 요법 정도) 사용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에 급한 연구는 아니지만, 나중에 수급량이 많아지고 가격이 낮아질 때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연구 결과입니다.   렘데시비르 제조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다아애나 브레이너드 박사 ( Dr. Diana Brainard of Gilead Sciences )는 병원에 입원이 필요했던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 584명을 렘데시비르 5일, 10일 투여 실험군과 위약을 투여한 대조군으로 나눠 임상 경과, 사망 등 중요한 합병증 발생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조사했습니다. 연구 대상자의 40% 이상은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이 있었으며 평균 연령은 57세였습니다.   연구 결과 대조군의 2%, 5일 투여군의 2%, 10일 투여군의 1%가 사망했으나 사망자 수가 4명, 3명, 2명 정도로 통계적 차이를 판단하기에는 사망자 수가 적어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연구팀은 5일 투여군에서 임상 경과가 다소 호전되는 것을 판단했으나 10일 투여군에서는 통계적 차이를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에서 렘데시비르 투여는 확실한 임상적 이득이 없었습니다.     5일 투여량만 해도 가격이 3120달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등도 환자에서 렘데시비르 투여는 설령 공급이 원활하다고 해도 적절한 치료법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공급이 불안해 중증 환자 투여 물량 확보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 연구는 렘데시비르보다 효과가 뛰어나면서 저렴한 차세대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필요성을 다시 보여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178Tb/s - 광섬유 통신 신기록 수립

  ( Lidia Galdino, lead researcher on the study. Credit: James Tye / UCL )  현재 가정에 들어오는 초고속 광통신은 10Gb/s 정도가 가장 빠른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광섬유를 통해서 보낼 수 있는 정보량은 이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기술 가운데서는 이미 1Tb/s 이상이 속도를 지닌 것들이 많아 미래에는 테라 인터넷 시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 가운데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UCL)의 리디아 갈디노( Lidia Galdino )가 이끄는 연구팀이 178Tb/s라는 신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입니다.   광섬유 통신을 위한 주파수는 4.5THz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신기술은 9THz 벽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연구팀은 16.8THz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주파수가 높을 수록 더 많은 정보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6.8THz의 주파수로도 178Tb/s의 데이터 전송 속도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연구팀은  Geometric Shaping (GS) 방식으로 레이저 신호의 페이즈, 밝기, 편광 수준을 조절해 여러 신호가 서로 간섭 없이 전달되게 만들어 이런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항상 그렇듯이 바로 상용화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광섬유는 장거리 정보 전송이 가능해야 할 뿐 아니라 오류 없이 장시간 작동이 가능해야 합니다. 자꾸 에러가 생기거나 고장난다면 아무리 속도가 빨라도 무용지물입니다. 이 단계를 극복하고 경제성까지 갖춰 실용화 되는 경우는 사실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Tb 급 대역폭을 지닌 광통신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테라바이트 급 정보도 순식간에 전송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은 분명합니다. 과거 전화선을 이용한 56K 모뎀에서 지금의 광섬유 기반 초고속 인터넷이 온 것처럼 속도는 계속 빨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 감염 위험성이 큰 동물은?

  ( A new genomic study ranks the potential of the SARS-CoV-2 spike protein to bind to the ACE2 receptor site in 410 vertebrate animals. Old World primates and great apes, which have identical amino acids at the binding site as humans, are predicted to have a very high propensity for binding ACE2 and are likely susceptible to SARS-CoV-2 infection. Credit: Matt Verdolivo/UC Davis )    코로나 19를 일으키는  SARS-CoV-2는 사스 및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박쥐를 자연 숙주로 삼는 베타 코로나바이러스 계통입니다. 따라서 본래 박쥐에 살던 바이러스가 중간 단계를 거쳐 사람으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SARS-CoV-2 역시 사람에만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종을 넘어 다른 포유류나 조류, 혹은 척추동물에 감염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경로인 ACE2 수용체는 다른 척추동물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SARS-CoV-2와 ACE2 수용체의 결합 수준은 동물마다 큰 차이가 있어 감염 위험도는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UC Davis)의 조안나 다마스 (Joana Damas)와 그 동료들은 410종의 척추동물에서 ACE2 수용체 유전자를 조사해 코로나 19 감염 위험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ACE2 수용체 전체가 아니라 25개의 아미노산 배열이 특히 결합력에 큰 영향을 미쳐 감염 가능성을 결정합니다.   연구 결과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사람과 가까운 침팬치, 고릴라, 보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