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역대 가장 짧은 길이의 유전자를 지닌 공생 박테리아



 (The distribution of the ancient symbionts Sulcia and Vidania across planthopper phylogeny, and the organization of symbionts within host tissues. Credit: Nature Communications (2026). DOI: 10.1038/s41467-026-69238-x)

​

가장 작은 박테리아도 사실 상당히 복잡한 자연의 화학 공장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생명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다양한 단백질과 다른 물질이 필요한 만큼 박테리아 역시 수많은 단백질의 설계도를 DNA에 담아 후손에게 물려줍니다. 세균이 지닌 DNA 염기쌍의 숫자는 인간 같은 다세포 진핵생물보다 매우 작지만 그래도 50만 개에서 1000만 개 정도로 절대 짧지만은 않습니다. 단순한 대장균도 460만 개의 염기쌍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일부 세균들은 극단적으로 유전자 숫자를 줄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례는 다른 숙주 세포에 들어가 사는 경우 흔하게 발생합니다. 기생이든 공생이든 간에 숙주에 많은 것을 의존하다보니 유전자를 다 보존할 필요가 없고 크기를 줄이는 게 오히려 생존에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

과학자들은 이런 사례 가운데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곤충에 사는 세포내 공생 (Endosymbiotic) 박테리아에서 발견했습니다. 폴란드 야기에우워 대학의 안나 미찰리크(Anna Michalik, Jagiellonian University, Kraków, Poland)와 동료들은 매미충 혹은 멸구류 (planthoppers)에 서식하는 세포 내 공생 미생물을 연구했습니다.

​

곤충에서는 미생물과의 공생 관계가 흔합니다. 특히 멸구나 매미와 같은 즙액을 빨아먹는 곤충들에게는 이 미생물이 생존에 필수적입니다. 식물의 즙액에는 특정 아미노산이나 비타민이 일반적으로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공급할 수 있는 공생 미생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런 공생 미생물 역시 숙주인 곤충에 많은 것을 의지하면서 점차 유전자를 잃어서 서서히 독립된 세포와 세포 소기관의 경계에 접근한 존재들이 있습니다. 술시아(Sulcia)와 비다니아(Vidania)는 2억 6천만 년 이상 멸구와 공진화해 온 세포 내 공생 미생물로 멸구 복부 내의 특수한 세포에서 서식합니다.

​

연구팀은 149종의 멸구에서 채취한 131개의 공생체 게놈(술시아 63개, 비다니아 67개)을 시퀀싱하고 비교한 결과, 술시아와 비다니아의 게놈 크기가 매우 작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비다니아는 역대 가장 작은 세균 게놈의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

술시아 게놈의 크기는 137,729 bp (base pair, 염기쌍)에서 180,379 bp 사이였고, 비다니아는 50,141 bp에서 136,554 bp 사이에 불과했습니다. 다시 말해 유전자의 염기쌍이 5만 개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사실상 살아 있는 독립된 세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유전자 소실에서도 수렴 진화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연구팀은 비다니아속 균주 VFSACSP1(50,141 bp)과 VFMALBOS(52,460 bp)의 초소형 게놈이 독립적으로 진화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두 균주는 아미노산 중 페닐알라닌 생합성에 필요한 정보는 보존한 반면, 다른 6가지 아미노산의 생합성 경로는 소실됐습니다. 결국 다른 숙주에서도 같은 결론을 얻은 셈입니다.

​

이렇게 유전자 소실이 크게 일어난 이유는 수억 년에 걸쳐 곤충의 세포 내에서 진화하면서 소실된 유전자를 외부에서 공급받을 기회가 사라지면서 멀쩡한 유전자가 점점 줄어들고 숙주에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많은 기능들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들은 세균이 세포 소기관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생명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어쩌면 우리 몸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다른 세포 소기관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의 일부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

참고

​

https://phys.org/news/2026-02-symbiotic-bacteria-planthoppers-smallest-organelle.html

​

Anna Michalik et al, Convergent extreme reductive evolution in ancient planthopper symbioses, Nature Communications (2026). DOI: 10.1038/s41467-026-69238-x

​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에서 제한적인 효과만을 확인한 렘데시비르

   현재 렘데시비르는 인공 호흡기 치료가 필요한 환자 등 중증 코로나 19 환자의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공급이 부족해서 갑자가 중증 코로나 19 환자가 늘어날 경우 수급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 (경증이나 무증상은 당연히 치료가 필요없거나 대증 요법 정도) 사용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에 급한 연구는 아니지만, 나중에 수급량이 많아지고 가격이 낮아질 때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연구 결과입니다.   렘데시비르 제조사인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다아애나 브레이너드 박사 ( Dr. Diana Brainard of Gilead Sciences )는 병원에 입원이 필요했던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 584명을 렘데시비르 5일, 10일 투여 실험군과 위약을 투여한 대조군으로 나눠 임상 경과, 사망 등 중요한 합병증 발생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조사했습니다. 연구 대상자의 40% 이상은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이 있었으며 평균 연령은 57세였습니다.   연구 결과 대조군의 2%, 5일 투여군의 2%, 10일 투여군의 1%가 사망했으나 사망자 수가 4명, 3명, 2명 정도로 통계적 차이를 판단하기에는 사망자 수가 적어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습니다. 연구팀은 5일 투여군에서 임상 경과가 다소 호전되는 것을 판단했으나 10일 투여군에서는 통계적 차이를 검증할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등도 코로나 19 환자에서 렘데시비르 투여는 확실한 임상적 이득이 없었습니다.     5일 투여량만 해도 가격이 3120달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등도 환자에서 렘데시비르 투여는 설령 공급이 원활하다고 해도 적절한 치료법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공급이 불안해 중증 환자 투여 물량 확보가 아쉬운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번 연구는 렘데시비르보다 효과가 뛰어나면서 저렴한 차세대 항바이러스 치료제의 필요성을 다시 보여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어 비늘을 흉내낸 항공기 스킨 - 에어로샤크

  (출처: 루프트한자 그룹) ​ ​ 몇년 전 소개드린 바 있는 에어로샤크(AeroSHARK)가 유럽 항공 안전국(EASA)으로부터 에어버스 A330-300에 탑재해도 좋다는 승인을 받아 적용 범위를 확장하게 됐습니다. 상어의 비늘을 모방해서 항력을 낮추는 에어로샤크는 가벼운 필름 형태로 부착해서 항공기의 연료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이전 포스트: https://blog.naver.com/jjy0501/222658782756 ​ 항공기를 잡아당기는 항력 (drag)은 항공기의 연료 소모를 증가시키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여객기의 알루미늄 합금 동체는 만져보면 매끄럽게 느껴지지만, 사실 표면은 미세하게 거친 상태입니다. 비행기가 시속 890km의 속도로 대기를 뚫고 나아갈 때 얇은 공기층이 동체에 달라붙는데, 표면과 이 공기층 사이에는 약 1밀리미터 두께의 아주 작은 틈이 있습니다. 점성 하층이라고 불리는 이 틈은 소용돌이가 무질서하게 뒤섞인 공기 덩어리입니다. ​ 이 얇은 난류층은 표면 마찰 항력을 발생시킵니다. 이는 전체 공기역학적 항력의 약 50%를 차지하며, 성능과 비행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그런데 사실 상어는 수억 년 전부터 기발한 방법으로 물속에서 항력을 낮춰왔습니다. 상어는 작고 이빨처럼 생긴 비늘인 피부치상돌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어의 몸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이 작은 돌기들은 물이 상어의 몸 위로 흐를 때, 미세한 소용돌이가 피부에 직접 닿지 않도록 막습니다. 이렇게 하면 난류가 억제되어 상어가 빠르고 부드럽게 헤엄칠 수 있게 됩니다. ​ ​ 에어로사크는 자연의 디자인을 모방하여 유사한 효과를 냅니다. 이는 상어 이빨 능선의 기하학적 구조와 높이, 간격을 흉내낸 50마이크로미터 크기의 홈이 새겨진 인공 고분자 필름입니다. 이 얇은 필름을 비행기 동체에 붙으면 비행당 연료 소비량과 배출량을 1% 줄일 수 있으며, 날개와 꼬리날개에도 붙인 경우 최대 2%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 디스커버 항공은 자사의 에어버스 ...

벽돌 속에 전기를 저장하는 코팅

  ( Red brick device developed by chemists at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lights up a green light-emitting diode. The photo shows the core-shell architecture of a nanofibrillar PEDOT-coated brick electrode. Credit: D'Arcy laboratory, Department of Chemistry,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  신재생 에너지 확대와 에너지를 24시간 차질 없이 공급해야 하는 기업과 기관 (예를 들어 병원, 금용기관, 중요 산업 시스템 및 기타 갑자기 시스템을 중지할 수 없는 분야)이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 저장 장치 (ESS)의 수요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풍력과 태양광처럼 에너지 생산량 변동이 심한 에너지원이 보급되면서 값싸고 안전하게 대량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의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워싱턴 대학 줄리오 다르시 ( Julio D'Arcy )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평범한 벽돌에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연구팀의 접근법은 전기가 통하는 폴리머 소재인  PEDOT를 코팅해 벽돌 자체를 슈퍼 커패시터 (콘덴서)로 만드는 것입니다. 화학 배터리 대신 슈퍼 커패시터에 전기를 저장하는 연구는 일찍부터 있어왔지만, 흔한 벽돌 소재의 슈퍼 커패시터는 참신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벽돌에 에너지를 저장하려는 시도 역시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개 열을 저장하는 방식이었고 전기 자체를 저장하는 방식은 새로운 시도입니다.   이전 포스트:  https://blog.naver.com/jjy0501/221592595133  연구팀에 따르면 일반적인 크기의 벽돌에 PEDOT 소재를 코팅할 경우 최대 10분 정도 LED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