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acific field cricket and Hawaiian parasitic fly next to each other. Credit: the University of Denver and St. Olaf College)
포식자와 피식자, 숙주와 기생충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며 경쟁합니다. 이런 진화적 군비 경쟁은 세대가 짧은 생물에서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과학자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항생제 내성을 빠르게 진화시키는 내성균이나 살충제에 대해 내성을 진화시키는 해충입니다.
덴버 대학의 아론 위클 (Aaron W. Wikle)과 동료들은 하와이에 살고 있는 귀뚜라미와 기생성 파리의 진화적 경쟁을 보고했습니다. 태평양 필드 귀뚜라미 (Pacific field cricket) 수컷은 다른 귀뚜라미 수컷처럼 짝짓기를 위해 특유의 귀뚜라미 소리를 냅니다. 하지만 이는 포식자의 귀에도 들리는 매우 위험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귀뚜라미보다 작지만, 그래도 치명적인 기생성 파리 (학명 Ormia ochracea) 암컷의 귀를 사로잡습니다. 기생 파리 암컷은 수컷에 알을 낳는데 결국 안에서 자라나다가 숙주를 죽이고 태어나 새로운 세대를 이어나갑니다. 당연히 이 기생 파리는 예민한 청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기생 파리는 본래 하와이에 살던 종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침범한 외래종으로 초반엔 귀뚜라미의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날개에 변형이 일어나 우는 소리가 약간 다른 귀뚜라미가 태어났습니다. 이 우연한 변이는 당연히 생존에 매우 유리하기 때문에 빠르게 퍼쳐 나갔습니다. 하지만 연구팀은 이 소리에 다시 적응한 기생 파리가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숙주의 진화에 기생충 역시 빠르게 진화해 대응한 것입니다. 한 세대가 짧고 개체 수가 많은 곤충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빠른 진화가 놀라운 것과는 별개로 귀뚜라미 입장에서는 정말 끔찍한 기생충이 아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고
https://phys.org/news/2025-02-hawaiian-parasitic-flies-host-crickets.html
Aaron W. Wikle et al, Neural and behavioral evolution in an eavesdropper with a rapidly evolving host, Current Biology (2025). DOI: 10.1016/j.cub.2025.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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