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우주 이야기 212 - 127 억살 먹은 행성 PSR B1620-26 b



 흔히 므두셀라 (
Methuselah) 행성이라고 불리는 PSR B1620-26 b 가장 독특한 외계 행성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일단 이 행성은 무려 12400 광년이라는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보다 더 특이한 점은 그 추정 나이가 127 억년으로 거의 우주 탄생 초기에 발생한 행성이라는 점입니다. 


 (주 : 혹시 이전 포스트를 기억하시는 분은 우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별 HD 140283 을 둘러싼 논쟁을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이 별 역시 성경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므두셀라 별이라고 불리는데 행성이 아니라 별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http://jjy0501.blogspot.kr/2013/03/145.html 참조)   


 이런 점도 특별하지만 독특한 것은 나이와 거리만이 아닙니다. PSR B1620-26 b 는 두개의 별 주변을 도는 circumbinary 행성이기도 한데 더 특이한 점은 두 별 가운데 하나는 펄서이고 다른 하나는 백색 왜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모성 자체가 살아있는 별이 아니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를 삼성계 시스템의 일부로 봐서 PSR B1620-26 c 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실 공식적으로 널리 불리는 명칭은 PSR B1620-26 b 입니다.



(PSR B1620-26 b 에서 바라몬 모성 PSR B1620-26 A (펄서) 와 동반성인 백색 왜성 WD B1620-26 혹은 PSR B1620-26 B 의 상상도. Illustration Credit: NASA and G. Bacon (STScI)  )


 PSR B1620-26 는 M4 혹은 NGC 6121 라고 불리는 구상 성단의 일원으로 초당 100 회 정도 자전하는 펄서입니다. 다시 말해 중성자성이라는 이야기인데 중성자별 + 백색왜성 + 목성형 외계 행성으로 구성된 기묘한 시스템이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복잡한 가설들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중성자별이 형성되는 환경을 생각해 보면 태양질량의 8 - 25 배 정도 되는 별이 마지막 단계에서 Type II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후 남은 물질이 중성자 별을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 행성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사실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극도로 드문 일이긴 하지만 중성자별 주위의 행성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가설이 존재합니다. 그 가설 중 하나는 다른 별 주변을 도는 행성을 납치하는 것입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중성자별 + 백색왜성 + 목성형 행성 (PSR B1620-26 b 는 대략 목성 질량의 2.5 ± 1 배 정도 되는 것으로 보임. 평균 공전 궤도는 23 AU 정도이며 공전 주기는 100 년 정도) 의 독특한 시스템을 완성시키기 위해 매우 드물지만 독특한 일련의 이벤트들이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일단 태양과 비슷한 별 주변에서 목성형 행성이 형성됩니다. 그후 이 별은 별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구상 성단 내부를 여행하다가 재수 없게도 중성자별 + 그 동반성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 중성자별 + 동반성은 본래 있던 별을 시스템에서 밀어내고 자신이 이 시스템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이 때 밀려난 쪽은 동반성 쪽이고 본래 있던 시스템에 중성자 별이 들어와 쌍성계를 이룰 수도 있음) 결국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중성자별의 동반성이 백색 왜성이 되고 이들은 시스템의 가운데서 빠른 속도로 서로 공전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주변을 목성형 행성이 공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 참조) 



PSR B1620-26 시스템의 형성 메카니즘  Credit : NASA/A. Field (STScl) )


 우리 속담에 오래 살다 보니 별일 다 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확실히 이 외계 행성은 살다살다 별 희안한 일도 다 겪은 셈입니다. 만약 우리 태양 주변에 중성자별과 동반성이 처들어와 태양을 교체해 버린다면 우리가 느끼게 될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물론 이 경우에는 지구가 궤도가 크게 바뀌거나 튕겨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황당함만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말이죠. 위의 므두셀라 행성은 그래도 모항성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구는 태양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어 이런 변화에 쉽게 휩쓸릴 가능성이 높음)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별이 더 황당한 일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상성단 내를 이동 중인 모성 덕분에 10 억년 이내에 이 시스템은 또 다시 다른 별과 아주 인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경우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일은 세개의 동반성 가운데 가장 가벼운 PSR B1620-26 b 이 튕겨나가면서 나머지 별이 안정적인 쌍성계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PSR B1620-26 b 는 미래에 떠돌이 행성 (Rogue planet 혹은 Intersteller planet) 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 이유는 별들이 빽빽하게 모인 구상성단에 속해 있으면서 오래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득 드는 생각은 이 구상성단 내에는 100 억 년 이상 나이를 먹은 별의별 사연을 가진 외계 행성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오래 살면 이런 저런 일을 겪을 수 있듯이 행성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 까요.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