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드기는 피를 빨아먹는 해충으로 모기처럼 피만 빨아먹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까지 옮겨 인간에게는 혐오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포유류의 피를 빨아먹는 진드기의 놀라운 능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사실 포유류의 피에는 피를 순식간에 응고시켜 출혈을 막는 혈소판과 여러 가지 응고 인자들이 존재합니다. 또 이물질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면역 시스템이 존재해 진드기를 공격합니다. 진드기는 이런 면역 시스템과 혈액 응고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물질을 침 속에 지니고 있어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시드니 대학의 리차드 페인 교수(Professor Richard Payne in the School of Chemistry)와 그의 대학원생인 샬럿 프랭크 (Charlotte Franck)는 진드기의 침에서 면역 억제 물질인 에바신스 (evasins)를 분리했습니다. 에바신스는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작은 사이토카인(Cytokine)인 케모카인 (chemokine)과 결합해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면역 억제제로써 가능성이 있는 물질입니다.
우리는 흔히 면역 반응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면역 반응은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잘못된 면역 반응 때문에 생기는 질병도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에서 발생하는 사이토카인 폭풍이 그런 사례입니다. 연구팀은 에바신스가 이런 과도한 면역 반응을 억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드기의 침에서 나온 천연 물질을 그대로 약물로 사용할 순 없기 때문에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연구팀은 에바신스에 황을 붙여 황화 에바신스 sulfated evasin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이 새로운 화합물은 동물 모델에서 폐의 섬유화와 장염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실제 약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며 대부분의 신물질이 임상 시험 단계에서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부작용으로 인해 개발이 중단됩니다. 하지만 이런 후보 물질을 여럿 발견할수록 신약을 개발할 가능성도 같이 커지는 것입니다.
진드기의 침에는 사실 여러 가지 물질이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는 혈액 응고를 방지하거나 통증을 차단해 숙주가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물질들이 있습니다. 이들 역시 새로운 신약 개발의 후보 물질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약 개발과는 상관없이 진드기는 인간에게 해로운 해충이며 여러 가지 질병을 옮길 수 있으니 재평가가 시급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진드기에서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화제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Semisynthesis of an evasin from tick saliva reveals a critical role of tyrosine sulfation for chemokine binding and inhibi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0). DOI: 10.1073/pnas.200060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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