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액상 과당에 대한 포스트에서 재미있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바로 과당과 포도당이 포만감이나 식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이죠.
그런데 사실은 이 부분에서 저도 설명을 잘못 했습니다. 과당이 포도당에 비해 포만감을 빨리 주지 않기 때문에 과식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인데 마치 과당은 전혀 포만감을 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설명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당의 종류에 따른 식욕 및 포만감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예를 들면 포도당 100%를 섭취하면 상대적으로 포만감이 빨리 들어 과식을 할 위험이 줄어드는 것일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단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포도당, 과당, 설탕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제 신간인 '과학으로 먹는 3대 영양소'에 있는 내용과 일부 겹치지만, 다른 내용도 같이 추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포도당은 C6H12O6의 분자식을 가진 육탄당입니다. 포도당은 생명체에서 에너지 대사의 기본 물질로 포도당을 분해해서 2개의 피루브 산으로 만든 후 TCA 사이클로 가서 ATP를 생성하는 과정은 생화학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배우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에너지 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육탄당은 포도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먹는 우유와 모유에 들어있는 젖당은 포도당과 갈락토스 한 개씩으로 이뤄진 이당류이며 우리 흔히 먹는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한 개씩 들이었는 이당류입니다. 사실 과당이나 갈락토스 모두 분자식은 C6H12O6 입니다. 다만 구조가 좀 달라서 포도당을 분해하는 기본 과정인 해당과정에서 약간 변형을 거쳐 에너지원으로 이용합니다.
포도당은 화석 연료로 따지면 석유와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입니다. 사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에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다만 포도당 단당류가 아니라 여러 개의 포도당이 연결된 녹말 (전분)의 형태인 것이죠. 소화효소가 이를 분해해 포도당으로 만듭니다.
포도당이나 글루코오스라고 하니까 뭔가 특별한 물질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밥이 주식인 한국인에서 전체 열량 섭취의 2/3에서 3/4이 포도당으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 아니라도 보통 인간이 섭취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포도당이죠. 그런 만큼 우리의 몸은 포도당을 기준으로 반응이 일어납니다.
대표적으로 한 가지 사례를 들면 혈당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혈중 포도당(글루코오스) 농도를 혈당이라고 합니다. 포도당은 우리의 모든 세포에서 사용될 뿐 아니라 뇌에서 사용되는 주요 에너지원이라 항상 적절한 수준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혈액 속의 아미노산이나 지방 (보통은 지단백의 형태로 수송합니다)가 낮아져도 바로 죽지는 않지만, 혈당이 너무 낮으면 저혈당 쇼크로 의식을 잃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고 보통은 당뇨환자가 식사를 거르는 경우 등에 저혈당 쇼크에 빠지게 되죠.
이런 만큼 우리 몸에서 혈당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은 인슐린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혈당을 올리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동시에 과당과는 달리 포도당은 장에서 능동 수송을 통해 아주 빠르게 흡수됩니다. 그리고 포도당이 없는 경우 아미노산과 지방산을 원료로 간에서 포도당을 만들어 어떻게든 혈당 농도를 유지하려 합니다. 따라서 인체의 메카니즘을 고려할 때 인간이 근본적으로 당뇨가 생기기 쉽다는 점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과당이 포도당 보다 포만감을 적게 준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체의 식욕 및 대사 과정은 더 복잡하게 작용합니다.
일단 길게 보면 포도당 흡수 -> 혈당 증가 -> 인슐린 분비 증가 -> 렙틴 증가/그렐린 감소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렙틴은 포만 중추(Satiefy center)를 자극해 포만감을 일으키고 그렐린 공복감을 자극하는 호르몬이기 때문에 결국 포도당 농도가 높으면 식욕이 떨어지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일을 당뇨환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는 당뇨 환자의 경우 식욕이 떨어져서 식사를 불규칙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로 인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당뇨 환자일수록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반면 과당의 경우 인슐린 분비를 직접 자극하지 않습니다. 포도당과 달리 혈중 과당 농도가 0이 되도 우리 몸은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굳이 반응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액상 과당을 많이 먹으면 포만감 없이 계속 먹게 되어 큰 문제가 된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합니다. 우선 액상 과당의 경우 이름과는 달리 과당 + 포도당이 주 성분이라 실제론 설탕과 별 차이가 없는 물질입니다. 더구나 과당도 그 구조가 포도당과 별로 다른 게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당이 부족하면 과당이 간에서 포도당으로 쉽게 전환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 과당 6인산이 포도당 6인산이 된 후 포도당이 될 수도 있고 포도당을 고분자로 전환시켜 글리코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더구나 인간이 포만감을 느끼는 과정은 인슐린/렙틴/그렐린 등 몇 개의 호르몬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기전이 작용합니다. 이전에 미 임상영양학회지에 실린 흥미로운 리뷰에서는 50g 이상의 설탕을 식전 20-60분 전에 섭취하는 경우 실제로 식욕을 떨어뜨려 식사를 적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를 과당이나 포도당으로 변경했을 경우 생각보다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포도당과 과당 용액은 30분 까지는 식욕에 미치는 영향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포도당의 빠른 흡수와 혈당 변화를 고려하면 식욕이 혈당 하나만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식욕 저하 효과는 흡수가 느린 과당이 더 길게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액상 과당은 설탕과 별 차이가 없는 물질이기 때문에 애시당초 이런 논쟁이 필요없는 물질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언급했고 그리고 지금 설명하는 내용은 바로 액상 과당이 42/55% 과당 (나머지 대부분은 포도당) 이라서 사실 식욕에 미치는 영향이 설탕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액상 과당이 설탕보다 더 위험하다는 근거는 부족합니다. 이런 이유로 첨가당 혹은 총 당류 기준으로 섭취 권장량을 정하고 있으며 과당, 젖당, 설탕, 포도당 등 특정 당류의 권고 섭취량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참고
Anderson GH, Woodend D. Consumption of sugars and the regulation of short-term satiety and food intake. Am J Clin Nutr. 2003 Oct;78(4):843S-84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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