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잃으면 청각이 예민해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들리는 것에 집중하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겠죠. 이런 일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눈이 퇴화된 동물이 후각이나 청각이 예민해지는 것은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일부 흰개미에서도 그렇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흰개미는 개미와 이름이 비슷하고 사회성 곤충이라는 것도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바퀴목에 속하는 곤충입니다. 공생하는 장내 세균의 도움을 받아 셀룰로오스와 헤미셀롤루오스를 분해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종종 주택이나 가구에도 피해를 주긴 하지만, 썩은 나무를 분해해서 지구 생태계 순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곤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부 개미는 이 흰개미를 마이오세(2300-530만년 전)부터 식량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흰개미 역시 만만치 않게 집단을 형성하고 병정 흰개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미와 맞붙으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집단 난투극이 벌어집니다.
아무튼 흰개미 입장에서는 어차피 개미를 먹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겨도 본전인 싸움입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개미를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과학자들은 눈도 퇴화된 흰개미가 어떻게 개미를 회피하는지 궁금해왔습니다.
시드니 대학의 세바스찬 오베스트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이 작은 생물체가 개미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전에는 흰개미가 화학물질을 감지해서 (즉 후각) 개미의 존재를 알아챈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에게 아주 예민한 청각이 있었던 셈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흰개미들은 개미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진동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개미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진동이 얼마나 작은지 생각하면 이들이 가진 예만한 진동 감지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흰개미 (Coptotermes acinaciformis) 들이 그들의 포식자인 개미 (Iridomyrmex purpureus) 보다 100배나 조용하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먼저 알아채고 피하는 것은 물론 개미가 흰개미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은닉하는 것이죠.
흰개미는 나무를 파먹는 해충처럼 생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놀라운 곤충 가운데 하나입니다. 앞으로도 흰개미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입니다.
참고
Sebastian Oberst et al. Cryptic termites avoid predatory ants by eavesdropping on vibrational cues from their footsteps, Ecology Letters (2017). DOI: 10.1111/ele.1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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