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8일에서 19일 사이 워싱턴 DC 에서 열린 G20 재무 장관 회의는 사실 한국의 기대와는 좀 다르게 끝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기대했던 것은 최근 거침없는 양적완화와 엔저를 유도하는 일본에 대해서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를 희망했던 것인데 G20 재무 장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경쟁적 평가절하를 자제하고, 환율을 경쟁적 목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 "장기간 지속되는 양적 완화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에 유념할 것" 이라는 원칙론적 언급을 한 후 최근 일본의 통화 정책에 대해서는 '디플레이션을 타도하고 내수 확대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이를 용인하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한 것입니다.
이후 엔화 환율은 더 하락해서 100 엔당 1 달러 선을 근접하고 있습니다. 약세 통화인 원화와 비교해서도 1 년 사이도 안되 100 엔당 1500 원선에서 지금은 1100 원선까지 가치가 떨어져 거의 폭락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는 과거 집권기와는 달리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강한 양적 완화 정책을 밀어 붙일 것으로 생각되어 달러당 100 엔이 넘는 것은 거의 기정 사실로 생각되고 있으며 당분간 엔저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1 년간 엔화 (100 엔당 원화 가치) 환율 변화 Source : 네이버 금융)
작년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집권하면서 적극적인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엔화 가치는 하락 추세를 보이는 중이었습니다. 이미 일본 은행이 국채 매입등으로 양적 완화를 시행하고 있었던 중에 아베 총리의 집권과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의 등장은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이 일본의 과감한 양적 완화에 불을 붙였다는 반응을 이끌어 내며 엔화 가치를 더 끌어 내렸습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양적 완화가 과연 장기적으로는 어떤 효과를 낼 지 지금 장담할 순 없지만 일단 지금까지의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과연 양적 완화가 효과를 볼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http://blog.naver.com/jjy0501/100174204848 참조) 과는 좀 다르게 일단 일본 경제가 오랜 디플레를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베 총리를 비롯한 공격적 양적 완화 정책 지지자들도 일본 경제가 본격적으로 디플레를 벗어나 2% 이상의 인플레 - 혹은 3-4 % 정도의 명목 성장률 달성 - 에는 2 년 정도는 걸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최근에 아베 총리는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실제로는 2-3 년 정도라고 밝혀 2 년 이상 양적 완화가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2011 년 일본 경제는 지진등의 여파로 -1% 대의 실질 경제 성장률을 이룩했지만 2012 년에는 다소 반등해서 1.9% 실질 GDP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사실 2012 년 경제 성장률은 한국과 거의 대동 소이했다고 할 수 있죠. 다만 2013 년에는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IMF 는 올 1 월 일본의 실질 성장률을 1.2% 로 전망했던 것을 4월에 1.6% 로 수정했습니다. 다른 선진국과 세계 경제 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것은 양적 완화와 엔저의 효과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 됩니다.
다만 공격적인 양적 완화가 정말 잃는 것보다 얻는게 더 많을 지는 역시 수년 정도 지나봐야 검증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양적 완화는 결국 통화량을 늘려 인플레를 유발하므로 저축보다는 소비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디플레와 엔고로 인해 돈의 가치가 계속 오를 때는 엔화를 가지고 있는 편이 이득일 수 있지만 반대의 상황에서는 미래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대비해 지금 돈을 쓰는 것이 좀 더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죠. 결국 소비를 촉진하고 내수를 진작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엔저로 인해 일본 기업들이 수출에 있어 상당한 메리트를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단 양적완화와 더불어 일본 경제가 갑자기 살아나지는 않고 있지만 적어도 엔저로 인해 일본 수출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여지는 커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달리 하면 자동차, 철강, 기계, IT등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 올해 1 분기 판매 성장률이 현대차는 작년 동기 대비 0%, 기아차는 8% 감소를 보이는 반면 도요타는 9%, 혼다는 5% 정도 판매를 늘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철강의 경우 올해 1 분기 -10.6% 로 수출 증가율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록 그 이유가 복합적이지만 포스코/현대 제철등은 수출 비중이 40% 수준으로 엔저 영향을 아주 안받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반면 이미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한 전자 계열은 아직은 큰 영향이 없다는 반응입니다.
엔저가 한국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일부 일본과 경합을 벌이는 산업에서는 영향이 없다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의 공격적인 양적 완화와 엔저에 대해서 환율 전쟁의 우려를 들어 반대해 왔습니다. 사실 다른 국가들까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환율 전쟁에 나서면 모두가 손해보는 상황도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G20 재무 장관 회의는 미국, 중국, 독일 등 주요 경제 강국들이 일본의 양적 완화를 지금 수준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승인하는 효과를 낳아 달러당 엔화 환율이 100 - 110 를 오갈 것으로 예측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엔저와 양적 완화가 아무 댓가 없이 일본 경제를 일으키는 순기능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입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진 만큼 수입 물가가 상승하게 되는데 원전사고로 인해 석탄과 천연 가스등 발전용 연료 수입은 물론 일본 역시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엔저 = 장기적인 물가 상승의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양적 완화로 인한 인플레 압력도 함께 할 수 있는데 2% 라는 목표를 훨씬 넘어서는 물가 상승률이 현실화되면 노령 인구와 연금 생활자가 많은 일본의 특징상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장기적으로 물가가 상승하게 되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 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낮은 금리에 의존해온 일본 정부의 엄청난 부채가 새로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이 부채가 그렇게 많은데도 견디는 이유는 금리가 저렴한 것도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금리가 올라가는 만큼 국채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독이든 사과 같은 양적 완화에 대한 지지 여론이 꽤 강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20 년 이상 지속된 지긋지긋한 디플레를 해소하지 못하고 이대로 시간만 지나게 되면 앞으로 일본에는 더 미래가 없기 때문이겠죠. 아베 총리는 이제 7월에 선거를 앞두고 있고 이 선거에서 다시 승리하면 일본의 양적 완화와 엔저는 당분간 확고한 정책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목표로 하는 지는 지금 알기 힘들지만 달러당 110 엔 이상은 일본에도 상당히 부담이 크기 때문에 100 - 110 엔 사이를 예측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다만 환율의 미래는 예측이 쉽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장담하기는 힘든 일이죠. 원화의 경우에도 올해 중반에는 1050 - 1100 원 사이를 예측하는 의견이 있어왔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현재는 달러당 1100 원대 초반입니다. 기축 통화인 엔화는 말할 것도 없고 변동성이 심한 원화의 경우 미래 변동폭을 예측하기가 꽤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겠지만 현재 상태에서 큰 변화가 없다면 엔저는 당분간 올해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디까지 갈지는 알기 힘들겠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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