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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도원결의 (拉麵 桃園結義) ?



 사람마다 기호 차이는 있겠지만 라면은 한국에서 아주 흔한 국민 식품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도 꽤 많이 먹어왔는데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라면 가격을 생각하면 한가지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라면값이 신기하게 오르기만 하고 내리지는 않는데 한 업체가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따라서 가격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비록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제 기억으로는 어떤 회사도 가격을 유지하거나 혹은 오히려 가격을 낮춰 점유율을 올리려는 노력을 했던 경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시장경제 안의 계획 경제 처럼 가격 인상은 거의 동시에 그리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대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게 한국의 라면 가격이었습니다. 한번도 업체간의 가격 경쟁이 일어나는 경우를 본적이 없는 것 같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 중 하나는 사실 한국 라면 시장이 한 업체의 점유율이 70% 에 달하는 반 독점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 입니다. 나머지 업체들은 가격 인하로 경쟁을 하기 보단 그냥 선두 업체의 가격인상을 따라가는 것이 이익이라는 설명이었죠. 그래도 맛있는 라면 한 종류 만이라도 잘 개발해서 염가에 뿌리면 2 위 이하 업체가 점유율도 높이고 소비자도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반란' 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라면 값은 약속이나 한 듯이 대동소이 했습니다. 뭔가 업체끼리 도원결의 (桃園結義) 라도 한 듯이 서로 의리를 지킨 것이죠. 한 업체가 인상하면 다른 업체도 따라했습니다.  



(삼국지연의 金陵萬卷樓刊本 에 나오는 도원결의 장면   public domain)


 그런데 사실 라면 회사들 끼리 '의형제' 를 맺고 한날 한시에 죽기로 한 유관장 삼형제의 맹세처럼 가격 인상의 시기와 폭을 정했던 일이 공정위에 의해 적발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4 형제인데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 야쿠르트 4 개 회사가 지난 2001년 5월부터 7월까지 단행된 가격인상부터 2010년 2월 가격조정까지 거의 9 년에 걸쳐 총 6 차례에 걸쳐 가격을 담합했던 내용이 공정위에 의해 적발된 것이죠.  


 2012 년 3월 22일 공정위 발표에 의하면 이들은 총 1천35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는데, 이 중 농심이 1천77억6천500만원, 삼양식품 116억1천400만원, 오뚜기 97억5천900만원, 한국야쿠르트 62억7천600만원 씩 부과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 업체에는 담합·정보교환 금지명령이 내려집니다. 법에 정해진 대로 정당하게 제품과 가격으로 시장에서 경쟁하라는 의미죠. 


 공정위에 의하면 시장 점유율이 가장 큰 농심이 먼저 가격인상의 시기와 폭을 결정하면 이를 나머지 업체에 통보해서 참여를 유도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교환한 정보는 가격인상 계획과 인상내역, 인상일자부터 가격 인상 제품의생산일자, 출고일자, 구가지원 기간 (기존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기간) 등으로 여기에 불응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상호 견제를 통한 불이익을 줬다는 게 공정위의 발표 내용입니다. 공정위는 여기에 사용된 이메일 340 여건을 비롯해 각종 자료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들에게 과징금을 부과했고 거의 1 년 순이익에 맞먹는 과징금 폭탄을 맞게 된 업체들은 법원에 항소했습니다.  


 2013 년 11월 8일 서울고법 행정2부(이강원 부장판사) 는 농심과 오뚜기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등 취소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 판정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삼양식품은 순순히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협조한 덕에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 가 적용되어 과징금을 면제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 야쿠르트는 선고가 추후에 있을 예정) 업체들은 다시 항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1000 억원이 넘는 엄청난 과징금이 법원에서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처럼 기업이나 집단도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도 필요하고 상부 상조도 해야겠죠. 하지만 가격을 서로 조정해서 담합하는 행위는 합법적인 협력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사실 법으로 금지하는 행위고 위반시 막대한 과징금을 물게 되어 있는 행위인 것이죠. 업체들은 결백을 주장하지만 (삼양식품은 예외) 아무리 생각해도 사전 정보 교환 없이 이뤄졌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환상의 팀워크를 보인 가격인상이였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게 사필귀정 같은데 불현듯 드는 생각은 과연 이것이 라면 값만의 문제일까 ? 하는 의문입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죠. 


(주 : 拉麵 은 우리식으로 발음하면 납면이고 중국식으로는 라미엔이라고 하는데 라면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고 함)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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