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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만년전의 얼음을 찾아서



 그린란드와 남극 대륙, 그리고 산악 빙하가 발달한 지역에서 과학자들은 지난 세기부터 꾸준히 빙핵 (Ice Core) 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깊이 있는 얼음일수록 과거의 얼음이고 여기에는 당시 기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대의 얼음 속에 갖힌 공기에서 당시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알 수 있고 이는 당시의 기후를 추정하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한마디로 빙핵은 과거 지구의 기후와 이벤트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자연이 만드는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극 처럼 수천 m 두께의 빙하가 발달한 곳에서는 40 만년 이상된 빙핵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과거의 지구 기후를 간접적으로 알아 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빙핵은 빙하 깊숙히 파이프를 박아서 여기서 원통 모양의 얼음을 꺼내는 방식으로 채취합니다. 



(빙핵 샘플, 파이프 아래 있는 얼음 기둥이 빙핵.  photo by Lonnie Thompson, Byrd Polar Research Center, Ohio State University. Cropping by Audrius Meskauskas. PD-USGov-DOC-NOAA (Lonnie Thompson), PD (Audrius Meskauskas)  ) 


 일반적으로 두꺼운 빙하의 아래 있는 얼음은 무게에 의해 압축되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갈 수록 빙핵의 나이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보스토크 (Vostok) 기지의 빙핵의 경우 100 미터 깊이에서는 미터당 300 년 이면 1934 미터 깊이에서는 미터당 5000 년 정도로 압축됩니다. 각각의 빙핵을 검사하면 나이테 같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매년 같은 정도로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주로 눈이 내리는 시기와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시기가 반복되면서 연령층 (annual layer) 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를 확인하기 힘든 경우도 있어 정확한 연령 추정이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19 cm 길이의 GISP2 ice core 로 1855 미터 깊이의 것. 각각의 화살표가 여름철에 형성된 연령층  "19 cm long section of GISP 2 ice core from 1855 m showing annual layer structure illuminated from below by a fiber optic source. Section contains 11 annual layers with summer layers (arrowed) sandwiched between darker winter layers."  public domain )   



(유명한 빙핵 채취 지역인 보스토크 기지 팀 사진. 1990 년에 찍은 사진이라 구소련 기가 보이는 점이 이색적. 과학자들이 들고 있는 것이 빙핵. Todd Sowers, LDEO, Columbia University, Palisades, New York



(보스토크 빙핵 데이터로 얻어진 온도 (파란색), CO2 (녹색), 먼지 (붉은색) 데이터로 지난 40 만년간의 지구 기후를 추정할 수 있음.  Graph of CO2 (Green graph), temperature (Blue graph), and dust concentration (Red graph) measured from the Vostok, Antarctica ice core as reported by Petit et al., 1999. Higher dust levels are believed to be caused by cold, dry periods. ) 


 스위스의 베른 대학 (University of Bern in Switzerland) 피셔 교수 (Hubertus Fischer, an experimental climate physics professor) 를 비롯한 연구팀은 십여년 간의 연구 끝에 Dome Concordia (Dome C)  라는 장소에서 무려 3.2 km 깊이의 빙핵을 드릴링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들이 발견한 가장 오래된 빙핵은 무려 80 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로 귀중한 자료긴 하지만 연구팀은 150 만년 된 더 오래된 빙핵을 찾고 있습니다.


 고기후학자들이 여기에 주목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료가 다소 부족했던 홍적세 중기 (Mid Pleistocene) 의 90 만년에서 120 만년 사이의 공백을 채워줄 빙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빙핵 연구는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 변동이 지구 기후 변동과 같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역학 관계에 대해서 더 자세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서는 빙핵 자료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구 기온은 항상 변화 해왔고 특히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더 급격한 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예상하기 위해 과거의 데이터 분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80 만년은 다소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아무튼 3.2 km 의 얼음을 남극 한복판에서 10 여년간 시추했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집념의 연구라고 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역시 연구는 대충 편하게 해서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게 진리 같습니다. 



(주요 남극 빙핵 채취 장소. Dome C 에서 80 만년 전의 빙핵을 채취함 Antarctic locations (in bright blue) where 1.5 million years old ice could exist. The figure is modified from Van Liefferinge and Pattyn (Climate of the Past, 2013). (Credit: Van Liefferinge and Pattyn) ) 


 피셔 교수와 그의 연구팀,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은 더 오래된 빙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면에 가까운 빙핵일 수록 결국 지구 내부에서 나오는 열인 지열에 의해 녹아 버리기 때문에 귀중한 데이터와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여기에 빙하가 움직이는 것 역시 연령층 확인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Dome C 근방 어딘가에 더 깊이 드릴을 뚫을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2.4 - 3 km 깊이 어딘가에 이들이 진정 원하는 자료가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대단해 보입니다. 남극 한복판에서 오랬동안 얼음을 캐내기 위해 노력했던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전세계의 수많은 기후 학자들이 미래 지구 기후를 예측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입니다. 미래의 지구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 것이 단순히 과학적 주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이들에 노력에 감사와 존경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네요.  



 참고 




Journal Reference:
  1. H. Fischer, J. Severinghaus, E. Brook, E. Wolff, M. Albert, O. Alemany, R. Arthern, C. Bentley, D. Blankenship, J. Chappellaz, T. Creyts, D. Dahl-Jensen, M. Dinn, M. Frezzotti, S. Fujita, H. Gallee, R. Hindmarsh, D. Hudspeth, G. Jugie, K. Kawamura, V. Lipenkov, H. Miller, R. Mulvaney, F. Pattyn, C. Ritz, J. Schwander, D. Steinhage, T. van Ommen, F. Wilhelms. Where to find 1.5 million yr old ice for the IPICS "Oldest Ice" ice core. Climate of the Past Discussions, 2013; 9 (3): 2771 DOI: 10.5194/cpd-9-277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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