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사람처럼 사지 절단술을 통해 감염을 예방하는 개미

 


(Carpenter ants perform amputations as a preventive measure. Their motto is: Better safe than sorry when it comes to potential infections. Credit: Bart Zijlstra)

항생제나 현대적인 소독 방법도 없던 시절, 외상이나 골절로 인해 피부 및 근육이 파괴되면 감염이 일어나면서 세균이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패혈증(Sepsis)이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감염된 부위(사지)를 포기하는 대신 몸 전체를 살리기 위해 사지 절단술을 시행했습니다. 과거에는 팔다리를 자르는 사지 절단술이 가장 중요한 외과 술기였고 전쟁터처럼 다수의 외상 환자가 나오는 환경에서 대규모로 사지 절단술이 시행됐습니다.

19세기까지 항생제와 소독제는 물론 마취제도 없던 시절이라 사지 절단술을 빠르고 정확하게 시행해서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도 혈관을 잘 묶어서 출혈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게 잔인해 보이지만, 이렇게 해서 감염을 막으면 생명은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사회적 곤충인 개미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볼 수 있습니다. 개미는 여섯 개의 다리 중 몇 개는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냥 잘린 다리는 감염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예 깨끗하게 잘라서 감염을 예방해야 살 수 있습니다. 이는 개미 입장에서는 개체 뿐 아니라 군집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한 마리의 감염된 개미가 다른 개체까지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미들은 다친 동료에 대해 큰 턱으로 과감한 사지 절단술을 시행합니다.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동물생태학 및 열대생물학과 에미 뇌터 연구 그룹 책임자인 에릭 프랑크 박사(Dr. Erik Frank, head of an Emmy Noether research group at the Chair of Animal Ecology and Tropical Biology at the University of Würzburg)가 이끄는 연구팀은 나무에 굴을 파는 목수 개미 (Carpenter ants, 학명 Camponotus fellah)의 치료 행동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동물에게 상처는 단순히 개체 개인의 문제를 넘어, 감염이 발생할 경우 군집 전체에 위협이 됩니다. 인간은 전문 간호 인력이 이 역할을 수행하지만, 개미와 같은 사회적 곤충은 과연 특정한 역할을 맡은 '전문가(Specialized workers)'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인지가 이 연구의 핵심 질문이었습니다. 즉, 의료진 개미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아무 개미나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본 것입니다.

연구팀은 완전 자동화된 추적 시스템을 사용하여 개미 110마리로 구성된 6개의 개미 군집을 조사했습니다. 자동화된 추적 시스템 덕분에 연구팀은 수 주에 걸쳐 각 개미의 움직임과 수십만 건에 달하는 상호작용, 그리고 상처 치료 과정까지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상처를 돌보는 개미들은 특정한 '의료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특별한 시기에 있는 개미들이 이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유충 돌봄 단계에서 먹이 찾기단계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있는 일꾼 개미들이었습니다. 이 단계의 개미들은 둥지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며 활동 범위가 매우 넓고 활동량이 많아 둥지 곳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상처 입은 개체를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일개미들은 나이에 따라 이런 특정 역할들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따른 역할 분담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단순히 전환기 상태에 있다고 해서 모두 의료진 개미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처를 돌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의외의 요인은 친밀도 지수(Affinity Index)였습니다. 연구팀의 분석에 따르면 상처 입기 전, 두 개체가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정도나 평소 서로 얼마나 자주 마주쳤는지, 더듬이로 서로를 만지는 등 사회적 상호작용이 얼마나 있었는지가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결론적으로 평소에 자주 마주치고 소통했던 개체일수록 상처 입은 동료를 돌볼 확률과 시간이 훨씬 높았습니다.

이는 내가 친한 친구만 치료하는 의외의 행동이라기 보단 사지 절단이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행동이므로 정확히 내가 잘 아는 개체에 대해서만 응급 처치를 시행하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평소 자주 접촉해서 어떤 상황인지 잘 아는 개체가 아니라면 어디를 다쳤는지 대충 짐작해 절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단 내 동료가 확실히 맞고 다리를 다쳐 심각한 상태를 확인하면, 개미는 감염을 막기 위해 다리를 물어뜯어 감염을 예방하는 예방적 절단하고 항균 물질로 상처를 처리합니다. 이 방식은 감염으로부터 군집을 보호하고, 부상자의 생존율을 두 배로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사회적 생물이 의료 처치 같은 복잡한 과업을 수행할 때, 특정 역할이 정해진 분업이 아니라, 개체 간의 사회적 구조와 상호작용으로 행동을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중앙 통제나 전문 직업 없이도 사회적 친밀도와 활동 패턴만으로도 사회적 면역(Social immunity)이라는 고도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거대한 군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개미처럼 작은 뇌를 지닌 생물이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온갖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경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6-07-colony-ant-wound-transitional-workers.html

Ebi Antony George et al, Social and spatial affinity drive wound care in ant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6). DOI: 10.1073/pnas.2614400123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100 테슬라급 자기장 도달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에서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인간이 개발한 가장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장치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자기력선의 밀도를 나타내기 위해 단위 면적당 자기력선의 수를 표시하는 단위인 테슬라 (T) 가 있습니다. (1T = 1Wb/㎡  웨버 (Wb) 는 자속의 단위)   의료용으로 사용되는 초전도체를 이용한 MRI 의 경우 1.5 - 3 테슬라급의 강력한 자기장으로 인체 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지만 과학 연구용으로 이보다 더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등장한 90 테슬라급 자기장에 이어 이번에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는 100 테슬라급인 100.75 T 를 실현 했다고 합니다.   이를 구현한 것은 18000 파운드 (8.16 톤 정도) 의 코일과 여기에 에너지를 공급할 1200 메가줄 (Megajoule) 급 모터 제네레이터등의 설비입니다.  (   The 1,200-megajoule motor generator that powers the magnetic pulse.  )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Quantum Phase transitions and new ultra high field magnetic states Electronic Structure determination Topologically protected states of matter  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수 T 급 MRI 만 해도 자기장의 힘이 엄청난데 100 T 라니 엄청난 자기장이네요. 이는 지구 자기장 세기보다 200만배 강력한 (물론 좁은 범위에서 작용하는 자기장이라 지구 전체...

고대 양서류 이야기 (2) - 악어를 닮은 거대 양서류들

  페름기에는 다양한 양막류가 진화해서 앞서 소개한 육상형 템노스폰딜리는 점차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하지만 양서류는 본래 자신의 서식지인 물과 습지에서 여전히 번성을 누렸습니다. 당시에는 악어류 같은 대형 양서형 파충류도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생태학적 지위는 여전히 양서류의 몫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 책인 포식자에서 비교적 간단히 다뤘는데, 오늘은 여기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책 정보: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347200 Yes 24:  http://www.yes24.com/24/goods/58772859 11번가:  http://books.11st.co.kr/product/SellerProductDetail.tmall?method=getSellerProductDetail&prdNo=1977867160 알라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4877825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0447988&orderClick=LAG&Kc= 인터파크 :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prdNo=279593764&sc.saNo=003002003&bid1=search_auto&bid2=detail&bid3=prd_img&bid4=001 영풍문고:  http://www.ypbooks.co.kr/book.yp?bookcd=100843205&gubun=NV ...

이빨이 다시 진화한 개구리

  ( CT scans of Gastrotheca guentheri skulls revealed what appeared to be identical rows of teeth on both the upper and lower jaws, which researchers later confirmed through dissection. Credit: Florida Museum/Daniel Paluh )  개구리는 2억년 전 진화 과정에서 이빨을 잃어버리고 큰 턱과 혀를 이용해 곤충 같은 작은 먹이를 잡아 먹는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파충류나 포유류 같은 다른 사지류와의 경쟁에서 밀려 양서류가 쇠퇴하고 멸종하던 시기에도 개구리는 여전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빨이 없는 덕분에 큰 혀를 발사하기 편해졌을지는 모르지만, 이빨이 없으면 종종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씹는 대신 삼키기 때문에 음식을 씹을 수 없다는 점은 문제되지 않지만, 필사적으로 달아나려는 먹이를 잡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부 개구리는 이빨 같이 보이는 엄니 (fang)을 지니고 있으나 이는 사라진 이빨이 다시 난 것이 아니라 다른 부분이 진화한 것입니다.   이는 돌로의 법칙 ( Dollo's Law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화 과정에서 퇴화한 부분이 다시 생겨나지 않으며 대신 필요하면 다른 부분이 진화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가미가 사라진 사지 동물은 다시 물에 들어온다고 해도 아가미가 다시 생기진 않습니다. 대신 고래처럼 폐가 커져서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법칙엔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 남미에서 발견된 멸종 위기 개구리 중 하나인 구엔터 유대류 개구리 ( Gastrotheca guentheri, Guenther's marsupial frog, dentate marsupial frog)는 완전한 형태의 이빨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대류 개구리라는 명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