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pa Nui palm seed endocarp chewed by a rat. Credit: Sebastian Englert Museum in Hunt and Lipo 2025)
거대 석상인 모아이로 유명한 이스터 섬 (Easter Island) 혹은 원주민 언어로 라파 누이 (Rapa Nui) 섬은 한때 울창한 야자수 숲이 있던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도착한 후 산림이 파괴되었고 농업 생산량도 감소한 것이 거대한 석상을 건설했던 원시 문명의 붕괴 이유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이런 주장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인 문명의 붕괴 (Collapse)를 통해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과학자들은 이스터 섬의 숲이 붕괴되고 인구가 감소한 이유가 사람들이 나무를 많이 베어낸 탓이 아닐 가능성을 찾아냈습니다. 애리조나 대학의 테리 헌트 박사와 버밍햄 대학의 칼 리포 박사 (Dr. Terry Hunt from the University of Arizona and Dr. Carl Lipo from the University of Birmingham)는 인간 자체보다 인간이 데려온 쥐에 주목했습니다.
연구팀은 폴리네시안 쥐 (Polynesian rats (Rattus exulans))가 다른 포식자나 천적이 없는 이스터 섬에 상륙할 경우 얼마나 빨리 증식할 수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한쌍의 폴리네시안 쥐가 1120만 마리로 불어나는데 불과 47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물론 이 쥐들이 야자나무를 갉아 먹지는 않지만, 이스터 섬에서 자생하는 라파 누이 야자나무 (Rapa Nui palm trees (Paschalococos disperta))의 열매는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이 나무는 매우 작은 숫의 열매를 맺는데 그 안에는 떠내려간 새로운 땅에서 번식할 때 필요한 영양분이 풍부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열매 껍데기기 단단하긴 해도 쥐가 갉아먹지 못할 정도로 단단하지는 못합니다. (사진)
결국 1500만 그루에 이르던 라파 나우 야자나무 열매의 95%는 쥐에게 먹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후손을 남기지 못한 야자 나무 역시 자취를 감춰 유럽인이 이 섬에 도착했을 때는 약간의 나무들만 듬성듬성 살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물론 1600년대 이후 인간에 의한 개간도 영향을 미치긴 했으나 실제 숲이 붕괴된 것은 인간의 개간보다 앞서 쥐가 상륙하고 나서인 1200-1650년 사이의 일로 보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태평양의 다른 섬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하와이의 오아후 섬 역시 인간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시기인 1300년 이전인 1100-1200년 사이 고유종 나무들이 사라졌습니다. 역시 쥐가 상륙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니호아 (Nihoa) 같은 일부 섬에서는 인간에 의한 정착과 농작이 이뤄졌지만, 그럼에도 산림이 붕괴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쥐가 상륙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은 인간이 환경 붕괴의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래 침입종은 세계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좁은 섬에서의 외래 침입종은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쥐가 문제면 고양이를 같이 데려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고양이 역시 토종 조류나 파충류에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외래 침입종입니다. 따라서 남은 생태계라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외래종 유입을 엄격히 제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5-11-rapa-nui-catastrophic-deforestation-invasive.html
Terry L. Hunt et al, Reassessing the role of Polynesian rats (Rattus exulans) in Rapa Nui (Easter Island) deforestation: Faunal evidence and ecological modeling,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2025). DOI: 10.1016/j.jas.2025.106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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